롯데가 중국시장에서 철수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언론의 보도내용에 근거해서 살펴보면, 한국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따른 중국 정부의 보복은 모두 롯데로 귀결됐다. 그리고 결국 롯데는 중국의 사드 보복에 버티지 못하고 무너졌다.
올 초 사드 사태가 발생하고 공석이나 사석에서 가장 많이 들은 이야기 중 하나는 “사드 때문에…”였다. 정치적 상징성을 가지고 있는 사드의 한국 배치는 결국 한·중 간 정치, 외교 관계를 악화시켰다.
눈치 보고 있던 민간 교류도 뒤를 이어 줄줄이 취소됐다. 이쯤 되니 뭐든 안 되면 사드 탓이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사드는 한·중 관계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사드 사태는 정치·외교에 있어서 한·중 관계뿐만 아니라 중국의 유커(遊客)에 의존하던 한국 관광, 중국 13억명의 소비자에 의존하던 한국경제도 뒤흔들고 있다.
사드 배치가 한국 사회에 이런 큰 파장을 불러일으킬 줄 몰랐을까? 중국 정부의 반응은 딱 예상했던 그대로였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한국 사회가 느끼는 파장의 정도가 생각보다 크다는 것이다. 중국의 의례적 정치 행위에 한국의 기업들이 쓰러지고 한 국가의 경제가 들썩이고 있는 현 상황을 과연 사드 탓만으로 설명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필자는 사드 사태가 발생한 올해 우연히 시간차를 두고 중국과 교류하는 한국인, 한국과 교류하는 중국인을 만나면서 재미있는 사실을 알게 됐다. 사드로 인해 중국 주재 한국기업들이 중국 정부로부터 불공정한 규제를 당한다는 언론보도와는 조금 다른 내용이었다.
물론 많은 중국 주재 한국 기업들이 사드로 인해 피해를 보는 것은 일정 부분 사실이다. 큰 소리로 말하진 못 하지만, 사드 사태로 인해 시장질서가 정상화되기를 내심 바라는 모양새다.
사드 사태 이후, 통관 시 전수조사가 엄격해 졌다. 또 이유 없이 정상통관이 되지 않거나, 통관 기간이 길어져 우리기업의 피해가 크다는 것이 지금껏 우리가 접해왔던 정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기업은 심리적 불안감 이외에 중국의 행정절차상에 문제가 발생했던 적은 없다고 했다. 같은 중국 주재 한국기업이고 같은 업종인데 사드 사태는 어떤 기업에는 중국 정부의 혹독한 규제로, 또 다른 기업에는 단순 정치적 제재로 돌아오는 것이다.
2000년대 후반 중국에서는 일련의 식품안전 사고가 잇따라 발생했다. 당시 중국 식품에 대한 불신과 한류의 영향으로 대중(對中) 식품수출은 한국의 효자 종목으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비공식통계에 따르면, 여전히 절반이 넘는 식품이 불법 통관을 통해서 중국 시장에 진입하고 있다. 중국에서 통관 거부되는 가공식품이 10개 중 6개가 된다는 통계도 나오고 있다.
실제 사드 사태 발생 초기인 3, 4월에는 그동안 불법 통관했던 물량들이 전혀 중국 세관을 통과하지 못했다. 이것이 언론을 통해 사드 보복 조치로 중국 정부가 한국 제품을 이유 없이 통관시키지 않는다고 왜곡 보도됐을 가능성이 있다. 이는 우리가 그동안 중국과의 거래를 얼마나 비정상적으로 해왔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한국 사람들 사이에서는 합법적으로 수입을 하고 싶어도 불법으로 들어오는 물품들이 이미 시장에서 유통되고 있고, 오히려 합법만 고집하면 손해를 보는 실정이라며 한탄하기도 한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한국제품이 불법 통관돼 유통되는 일이 근절되기를 은근히 바라는 분위기도 있다.
그렇다면 롯데가 정말 사드의 피해자인가를 냉철하게 판단해 볼 필요가 있다.
어쩌면 롯데의 중국 철수 결정은 중국 시장에서 우리 기업의 위상과 미래를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과거 중국과의 교역에서 자본력이나 소비력 등에서 중국을 이기지 못하지만 우리에게는 뛰어난 기술력이라는 자부심이 있었다. 우리의 문화를 사랑해 주는 중국인들도 많았다.
그동안 중국은 모든 면에서 뛰어나게 성장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중국에 대항할 수 있는 실력과 경쟁력을 얼마나 키웠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앞으로 중국의 규제 관리는 점점 더 엄격해질 것이다. 이는 국가가 성장함에 따라 질서를 잡기 위한 자구책의 일환으로 해석된다.
중국이 경제상장만을 보고 달려가는 동안 눈감아주던 비정상적 행위들을 이제는 정상화시키는 작업을 시작한 것이다. 중국의 변화에 뒷걸음질 칠 것인가, 아니면 적응할 것인가는 중국이 아니라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사드는 분명 악재임이 틀림이 없다. 눈앞에 닥친 어려움은 항상 우리를 성찰하게 한다. 사드 탓을 할 것이 아니라, 당면한 문제를 극복하지 못 하는 내부적 원인을 먼저 진단하고 실력과 경쟁력을 겸비해야 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