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첫 번째 국정감사(국감)가 다음 달 12∼31일 진행된다. 정기국회의 꽃인 국감은 입법부가 행정부의 국정 수행과 예산 집행에 대해 벌이는 감사다. 상시 국감 체제인 선진국과는 달리, 우리나라의 경우 ‘헌법’(제61조)과 ‘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법률’에 권한 및 기간을 명시했다.
문제는 국감이 특정 기간에 한정되다 보니 입법부의 ‘호통치기·묻지마 식 폭로’, 피감기관의 ‘소나기만 피하자는 식’의 악순환을 되풀이한다는 점이다. 대기업 총수들에 대한 무더기 증인 출석과 자기 정파의 반대편을 향한 보복성 증인 채택 등이 대표적이다.
◆丁의장 “갑질 안 돼”··· 10년 새 3배가량 증가
24일 국회에 따르면 제17대 국회 때 연평균 51.75명이던 민간 기업인에 대한 국감 출석은 18대 국회 77명, 19대 국회 124명으로 크게 증가했다. 20대 국회 첫해에는 150명에 달했다. 10여년 사이 3배가량 증가한 수치다. 국감 비용은 평균 12억∼13억원 수준이다. 비효율 국감의 극치다.
앞서 정세균 국회의장이 지난 6일 국회 상임위원장단과의 회동에서 “이번 국정감사에서 증인을 과도하게 채택하는 등 갑질을 해서는 안 된다”고 요청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정 의장의 요청에도 올해 국감의 민간기업 총수 부르기는 역대 최고치를 경신할 것으로 보인다.
국회 정무위는 지난 20일 여야 간사협의를 통해 원내교섭단체별 증인 신청 한도를 40명으로 합의했다. 정무위에서만 최대 160명까지 증인 신청을 할 수 있다는 얘기다.
올해 처음 도입하는 ‘국감 증인 신청 실명제’로 앞다퉈 증인 명단을 공개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일종의 홍보효과를 노린 것이다. 정무위 소속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정몽구 현대차 회장, 채이배 국민의당 의원은 삼성그룹과 KT·다음카카오·NC소프트·국민은행·현대차그룹·네이버·금호아시아나그룹 등의 관계자(증인 이름 비공개)를 증인 채택하겠다고 각각 밝혔다. 대기업 총수를 향한 사실상의 ‘선전포고’인 셈이다.
◆사상 최대 규모 전망··· 재계 ‘초비상’
지난 14일에는 정무위 야당 소속 의원실이 작성한 명단까지 유출됐다. 이 명단에는 정몽구 회장을 비롯해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본무 LG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허창수 GS그룹 회장 △이명희 신세계 회장 등이 포함됐다.
기재위의 경우 여당 의원들은 박근혜 정부의 면세점 선정 비리 진상조사를 위한 관세청 및 관련 기업 총수, 야당은 소득주도 성장론을 추궁하기 위해 청와대 인사를 부를 계획이다. 궐련형 전자담배 논란의 중심에 선 한국필립모리스 관계자를 증인 채택하는 방안도 협의 중이다.
환노위도 마찬가지다. 민주당은 디젤 차량 배출가스 문제로 윤갑한 현대자동차 사장, 최종식 쌍용자동차 사장, 박동훈 르노삼성자동차 사장 등을 증인 신청했다. 권오준 포스코 사장과 우유철 현대제철 사장 등도 출석 대상이다. 자유한국당 등은 정일영 인천공항공사 대표(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문제), 국민의당은 김장겸 MBC 사장(부당노동행위), 정의당은 이명박 전 대통령(4대강 관련)의 출석을 각각 요구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에서는 중소기업 동반성장과 관련한 대기업 총수 및 중국시장에서 전면 철수한 이마트와 롯데마트 관계자, 인사 비리 논란에 휩싸인 전 강원랜드 사장 등이 출석 대상이다.
보건복지부는 김혜숙 유한킴벌리 상무이사 등 관련 업계 8명과 '햄버거병' 발병 논란에 선 조주연 한국맥도날드 대표이사,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는 이해진 네이버·김범수 다음카카오 이사회 의장 등을 각각 부를 것으로 보인다.
최진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날 본지와의 통화에서 “묻지마식 증인 채택은 구태 중 구태”라며 “제도적 장치는 물론, 호통만 치다가 끝나는 국감 문화를 개선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