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그러하듯 사람은 지독한 운명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희생한다.
따뜻한 가족의 품, 사랑하는 연인, 건강한 육체 자신의 삶에서 가장 반짝이는 보석을 세상에 내놓는다.
처절한 외로움을 선택하기도 하고 자신을 가학적으로 몰아세우는 삶을 살기도 한다.
괴로운 세상에서 제 한 몸 곧게 세우고 싶었던 사람들은 결국 가장 소중한 것을 잃는다.
소설 속 두 소녀가 잃은 것은 젊음과 열망이었다. 슬픔을 제 인생으로 받아들인 쇼코는 아주 밝은 소녀인 듯 보였으나 아주 천천히 자신을 죽이고 있었고 무뚝뚝한 할아버지와 감정이 무딘 어머니 사이에서도 자신이고 싶었던 소유는 어설픈 영화와 끝내지 못한 시나리오 몇 편으로 남는다.
하지만 쇼코와 소유, 소설 속 두 인물에게 이입한 독자들은 이야기 말미에 슬픔이 아닌 다른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자신이 가진 슬픔을 무던히도 표현하고 싶었던 소유는 재능의 끝을 만났지만 자신을 믿는 할아버지를 보게 되고 고향을 떠나야만 괴로움을 벗을 수 있다 믿었던 쇼코는 끝없이 스스로를 죽이던 마음의 병을 이겨낸다.
운명을 거스르기 위해 발버둥 친 것이 나의 가장 반짝이는 보석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결국 나의 선택이 절망과 고통을 가져왔음을 알아 챈 순간 쇼코의 미소는 아주 담담하게 또 잔인하게 독자의 마음을 파고든다. 그것이 바로 위로가 추모가 되는 순간이었다.
대학생이 된 소유가 쇼코를 찾아왔을 때 느낀 감정은 연민에 가까운 마음이었을 것이다. 자신이 선택한 삶을 살고 있다는 자부심. 소유는 쇼코를 보며 죽어버린 그의 젊음을 연민했다. 그 연민은 너는 나와 함께 할 수 없음을 나는 반짝이는 보석을 절대 뺏기지 않을 것이라는 의지가 담겨 있었다.
하지만 이 마음이 쇼코와 같이 자신의 삶을 그대로 받아들인 사람들에게 얼마나 슬픔일지 생각해보았다. 그러자 눈물에 젖어들던 마음이 바짝 말라붙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서러운 마음과 먹먹한 기분을 잠재울 수 없었다. 고향을 벗어나지 못 한 것이 아니라 그 반짝이는 보석만이 자신의 전부임을 쇼코는 알고 있었을까? 소유는 되묻고 싶었을 것이다.
‘오래 살아가는 일이란, 사랑하는 사람들을 먼저 보내고 오래도록 남겨지는 일이니까. 그런 일들을 겪고도 다시 일어나 밥을 먹고 홀로 길을 걸어 나가야 하는 일이니까.’
반짝이던 보석, 사랑하는 할아버지를 떠나보낸 소유는 처절히 괴로울 것이다. 그의 외로움과 고독함을 위로해주지 못해서, 그를 보는 순간마다 괴로워 피해버린 소유는 할아버지가 떠난 후에야 자신의 전부인 꿈을 놓을 수 있었다. 그렇게 소유는 반짝이는 보석을 세상에 내놓으며 제 몸을 곧게 세우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고 하나의 관계가 끝날 때마다 나는 누가 떠나는 쪽이고 누가 남겨지는 쪽인지 생각했다. 어떤 경우 나는 떠났고, 어떤 경우 남겨졌지만 정말 소중한 관계가 부서졌을 때는 누가 떠나고 누가 남겨지는 쪽인지 알 수 없었다.’
할아버지가 남겨둔 것은 소유였고 소유가 떠난 것은 할아버지였다.
나의 세계가 열망으로 가득 차 있을 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오직 한 줄기 빛만이 나를 구원해줄 것이라 믿을 때 반짝이는 보석을 얼마나 멀리 두고 왔는지 알 수 없다. 반짝이는 보석을 놓치지 않고 가슴에 품는 것이 더 기쁨이라는 것을 그 때는 알지 못했다.
마음을 잃은 수많은 쇼코 앞에서 연민으로 떠들어 대던 나는 순간 숨이 막혔다. 눈물마저 오만했으며 연민마저 치졸했던 그 순간들. 날카롭고 두꺼운 날이 마음을 후비는 결말이었다.
가장 반짝이고 소중한 보석을 잃은 나는 쇼코가 지은 희미한 미소에 나를 나대로 깨치며 희생한 것이 나의 아버지라는 생각에 절망했다. 그리고 괴로움에 뺨을 후려치면서 울었다. 소유에게 ‘그렇게 네 뜻대로 사는 것 멋있다.’ 말하던 할아버지와 결국 내게 마지막으로 남긴 말씀이 ‘하고 싶은걸 해. 안 그러면 후회를 해!’ 이었던 아버지가 떠올랐다.
하지만 미루지 말고 당장 움직여야했다 자책하며 자학 하는 게 가장 쉬운 일이었다. 나는 벽에 머리라도 찧겠다. 차라도 달려들 수 도 있겠다. 감정이 격해지는 걸 느끼며 이미 돌아가신 아버지를 붙들고 자기 파괴를 했다. 가장 반짝이는 보석을 이제야 알아본 죄 값. 자기혐오를 씻을 수 없었다. 스스로가 너무나도 혐오스러운 내게 쇼코가 보여준 미소는 추모였다.
제 한 몸 곧게 세우기 위해선 반짝이는 것을 내 놓는 거야.
남겨진 건 아버지였고, 떠난 것 역시 아버지였다.
남겨진 건 나였고, 떠난 것 역시 나였다.
책 쇼코의 미소가 남긴 것은 희미하게 웃으며 추모하는 쇼코의 미소. 쇼코는 나의 마음에 하얀 국화꽃을 놓아주고 돌아섰다. 그리고 이 시대의 소유와 쇼코에게 빛나는 보석이 무엇인지 말해주었다.
/글=김진아 작가 #버터플라이 #청년기자단 #김정인의청년들 #지켄트북스 #청년작가그룹 #지켄트 #프롬북스넷 #추천도서 #북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