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종영한 JTBC 금토드라마 ‘품위있는 그녀’(극본 백미경·연출 김윤철)는 욕망의 군상 속 두 여인의 엇갈린 삶을 그린 작품. 이번 작품에서 정상훈은 대기업 전무이사이자 우아진(김희선 분)의 남편 안재석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미워하려야 미워할 수 없는 매력. 정상훈은 오로지 자신만의 매력으로 캐릭터의 빈 곳을 채워나갔다. “벼락같은 인기에 어리둥절하다”고 말하는 그이지만 그의 인기는 벼락이 아닌 오랜 시간 차곡차곡 쌓아온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다음은 아주경제와 정상훈의 일문일답이다
드디어 드라마가 끝났다
정상훈이 생각하는 흥행 요인은 무엇인가?
- 재미있지 않나. 백미경 작가님의 필력과 김윤철PD님의 영화 같은 연출 덕 아닐까? 슬로우신 격정적 장면 등 영화적인 표현이 많았다. 그 덕에 막장드라마라는 소리 없이 퀄리티 높은 결과물이 나온 것 같다. 미국 드라마 ‘위기의 주부들’과 비교해주시더라.
좋은 결과를 얻었지만 작품 선택 전에는 고민도 컸을 것 같다
- 당연하다. 양꼬치 앤 칭따오로 호감가는 이미지를 얻었고 CF도 많이 찍고 있는 상황에서 괜히 국민 밉상으로 찍힐까 봐. 주변에서는 반신반의했었다. 하지만 저는 대본을 보는 순간 모든 불안이 종식됐다. 잘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작가와 감독이 안재석 캐릭터에 애정이 많은 것 같더라
- 백 작가님께서 제게 ‘나는 재석이가 마음이 가. 재석이가 딱 나 같아. 이럴 수 있잖아’라고 하시더라. 워낙 많은 생각을 하시는 분이니까. 애착이 간다는 이야기에 힘을 얻었다. 감독님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분들은 애드리브가 많이 없었는데 저는 (애드리브를 할 수 있게) 많이 열어주셨다.
그 덕에 애드리브가 폭발했겠다
- 그렇다. 하하하. 걱정돼서 감독님께 눌러달라고 부탁했다. 예능에서 하던 게 드라마에서도 나올까 봐. 덕분에 여유 있게 할 수 있었다. 주연이 참 좋더라. 조연일 땐 신이 적으니까 짧은 시간 너무 많은 걸 보여주려고 했었다면 주연이 되고 나니 여유롭게 신들을 소화해 힘을 빼고 연기할 수 있었다. 하하하. 외우는 맛도 있고! 기분이 좋았다.
재석은 비상식적 인물이다. 그를 이해하기까지 힘든 시간이었을 것 같은데
- 이해는 안 가지만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재벌이라는 캐릭터도 낯설고. 정말 낯설다! 제가 아는 사람 중 가장 잘 사는 사람은 (김)생민 형 정도인데. 하하하. 재벌의 성격이라든가 그런 걸 떠나서 재석이 가진 욕망을 살펴보려고 했다. 양손으로 사과 두 개를 잡고 또 욕심이 나서 입에 사과를 무는 그런 마음이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우아진 같은 아내를 두고 바람을 피우는 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반응이었는데
- 저도 그렇다. 이해가 안 가더라. 우아하고 상냥하고 나만 사랑해주는 완벽한 사람인데. 어떻게 이런 여자를 두고 바람을 피울까? 그래서 저는 이렇게 분석했다. 우아진은 압도적으로 나를 케어해주고 다룰 줄 아는 여자고 그의 손길 아래 안재석의 자아는 없다. 그러다가 처음으로 핸들링할 수 있는 여자 윤성희를 만나게 됐는데 그게 너무 좋은 거지. 거기에 매력을 느끼지 않았을까 싶다.
밉상 캐릭터인데 이상하게 정이 간다는 반응도 있었다
- 하하하. 저도 그랬다. 가끔 드라마를 보면서 ‘오, 안재석이 말하니까 그럴 듯한데?’라고 생각이 되더라. 연기를 어떤 식으로 잡느냐가 중요했다. 그냥 불륜남으로 끝날 수 있었지만, 연기에 약간 어눌한 모습을 섞어서 답답하고 애잔한 인물로 보이게 했다. 제가 잘 하는 코미디를 더한 거다. 아무리 설득 안 되더라도 웃으면 어느 정도 받아들이게 되지 않나.
드라마가 실제 인물을 바탕으로 했다고 하던데. 언질이 있었나?
- 없었다. 막연히 대본을 보면서 ‘어디서 인터뷰를 해오셨을까? 정말 그럴듯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나중에 어떤 사건을 모티브로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정말 충격받았다. ‘이런 일이 진짜 있다고?’ 놀라운 마음이었다. 그런데 얼마 전 예능프로그램 ‘안녕하세요’ 촬영 후 이런 놀라운 일들을 마음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짜고 하는 건 줄 알았는데 진짜 그런 분들이 있더라. 이후부터는 이런 일도 있을 수 있겠다 받아들이는 편이다.
김희선과의 연기 호흡은 어땠나?
- 드라마를 보면서 내내 카톡을 보냈다. ‘너무 잘했다’고 칭찬을 많이 했다. 특히 제가 정말 응원하는 신이 있었다. 재석과 아진이 법원 앞에서 나누는 대화였다. 재석이 ‘난 당신이랑 살고싶어’라고 하자, 아진이 ‘난 당신 같은 남자 싫어’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그런데 (아진의) 눈빛이 용서인 거다. 카톡으로 ‘희선아 이거 눈빛이 용서인데? 감정이 진짜 울컥한 데?’하고 보냈다. 연민이 느껴지더라. 연기할 때 상대방이 정말 중요한데 희선이 덕분에 날개를 달고 연기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품위있는 그녀’야 말로 주변 반응이 가장 뜨거운 작품이었을 것 같다
- 아주머니들은 ‘왜 아진이를 놔두고 그런 짓을 했냐!’고 하신다. 다른 악역들이 당한다는 ‘등짝 맞기’ 같은 건 없었다. 왜냐면 저는 항상 아내, 아이들과 함께 다니거든. 하하하. 마트에 가도 항상 아이를 안고 어르고 달래고 있으니 다가오질 못하신다. 너무 자연스럽게 캐릭터와 저의 생활이 분리됐다.
그간 상대를 빛내주는 역할을 많이 했다. 주연을 맡으며 달라진 점이 있었나?
- 없었다. 여전히 상대방을 빛내고 호흡을 맞추는 게 중요하다. 돌아보면 박 실장(박진우 분) 같은 캐릭터는 그간 제가 가장 많이 해왔던 역할이었다. 박 실장을 보면 내 모습이 투영됐다. 그래서 더 잘 맞았고 함께 시너지를 잘 낸 것 같다. ‘형, 이렇게 (연기를) 줘 봐’ 하면 딱 뭔지 알아차리는 게 재밌었다. 짧지만 저의 연기 지론이 있다면 상대방을 감동시켜라 하는 것이다. 상대를 감동시키면 진짜가 쏟아져 나온다.
드라마를 본 아내의 반응은?
- 그냥 재밌네 정도였다. 하하하. 저는 일과를 아주 세세하게 털어놓는다. 특히 작품에 있어서. 오늘은 윤성희와 키스신이 있었고 감독님께서 어떤 키스신을 요구했다고까지 말한다. 그래야 나중에 드라마를 보고 뒤통수를 안 맞으니까. 얼렁뚱땅 얘기하면 나중에 더 상처받는다. 미리 말을 해놔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것 같다. 거기다 우리는 단단한 사이라서 제 캐릭터나 연기에 흔들리지 않는다.
안재석과는 반대로 정말 가정적인 남편인데
- 아내가 고생을 정말 많이 했다. 항상 보답하고 싶다. 그리고 아이가 세 명이나 있어서 저를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다. 안전장치랄까? 도덕적으로 하지 말아야 할 것들에 있어서 완벽히 제어된다. 나는 애가 셋이고 한순간에 손가락을 빨게 될 수도 있으니 어떤 일에도 신중을 기하자고 다짐한다.
국민 불륜남으로 떠오르게 되었는데 전국 불륜남들에게 한마디 하자면?
- 지금도 바람을 피우는 남성들에게. 모든 사람이 모를지언정 당신은 알고 있잖아요? 당신이 아이들을 그리고 아내를 볼 때 얼마나 껄끄럽겠어요. 아이를 사랑한다면 지금이라도 아내를 이해해주세요. 하하하.
다음은 어떤 작품으로 만나게 될까?
- 지금 개봉한 영화 ‘로마의 휴일’이나 11월 개봉 예정인 ‘게이트’까지 지금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영화 ‘게이트’의 경우에는 악역을 연기한다. 저라는 배우의 연기 폭이 다양하다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