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발표에 반발하며 중국 정부가 보복 조치의 일환으로 시작된 이른바 ‘한한령(限韓令)’을 발동한 지 어언 1년이 지났다.
그동안 국내 언론 및 정부와 학계의 논의는 주로 한한령에 따른 한국의 피해 사례와 규모를 중심으로 전개됐다.
중국의 보복에 대한 우리의 대응 방안은 조금 과장하자면 그야말로 속수무책이었다. 그렇다면 중국 정부가 선택한 한한령이란 카드는 정말 효과적인 보복 수단이었을까?
한한령이 특별한 이유는 중국 정부의 보복 조치가 무엇보다 ‘문화(산업)’ 영역에서 집중적으로 전개됐다는 점이다.
한한령은 과거 중국 정부가 국제적 갈등에 직면했을 때 취했던 일반적인 방식은 아니었다.
예를 들면 2008년 프랑스, 2012년 일본, 그리고 2016년 몽골과 마찰을 빚었을 때 중국 정부는 해당 국가를 상대로 다양한 보복 조치를 감행하면서도 적어도 문화 영역만큼은 건드리지 않았다.
특히 민간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다양한 문화적 교류는 국가 간 긴장 관계 속에서도 유지됐고, 오히려 결정적인 순간에는 국가 간의 갈등 해소에 돌파구를 마련해 주기도 했다. 그렇다면 왜 유독 한국에 대해서만은 ‘문화’를 핵심적인 보복 수단으로 선택했을까? 그리고 중국 정부는 이를 통해 무엇을 얻었을까?
사실 ‘문화’는 21세기 중국의 국가 발전 전략 수립에 핵심적인 요소로 부상했다. 2011년 중국 정부가 ‘사회주의 문화강국 건설’을 새로운 국가 비전으로 선포한 것은 지난 개혁·개방 30년 동안 경제 발전에만 주력했던 국가 발전 전략에 대한 일대 전환의 신호로 간주됐다.
그 가운데 대외적 문화 전략을 보면 중국 정부의 정책 기조는 크게 두 가지로 나타났다. 하나는 문화정체성과 관련된 이른바 ‘문화안보론’이고, 다른 하나는 소프트파워 강화를 통한 국력의 신장과 관련된 것이었다.
문화를 국가안보 차원에서 거론한다는 것은 중국 정부가 심각한 문화적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소프트파워 강화와 관련해서 중국 정부가 시급히 해결하고자 했던 과제는 무엇보다 국가이미지 개선과 관련된 것이었다.
중국은 2010년 이후 소위 ‘G2’로 부상했지만,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국가이미지는 이에 상응하지 못했고, 심지어 중국이 선진국으로 진입하는데 심각한 장애요소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이 두 가지의 정책 기조는 외국 문화상품의 중국 내 진입에 대한 대내적 방어 기제로, 다른 한편으로는 중국문화의 대외적 확장이라는 목표를 지향하면서 상호 보완적 매커니즘을 구성했다.
우선 문화안보론의 측면에서 한한령은 지난 1년 동안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2017년 한국문화산업교류재단의 조사에 따르면, 한한령에도 불구하고 한류콘텐츠에 대한 중국인들의 관심은 크게 줄지 않았다.
한국 드라마와 영화 검색 추이도 이전과 거의 동일한 수준을 보였고, 공식적인 매체가 봉쇄되자 오히려 불법 유통 경로가 급속도로 확산되는 경향을 보이기도 했다. 더구나 한류의 확산이 중국의 문화정체성을 심각하게 위협한다는 논리 역시 설득력을 갖기 어려웠다.
사실 인터넷을 중심으로 전 세계가 네트워크화된 21세기에 특정 국가의 문화를 원천적으로 봉쇄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다.
문화경제적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다. 중국의 보복 조치가 한류콘텐츠에 집중된 만큼 한국의 관련 업계가 가장 많은 타격을 받을 것임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좀 더 거시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한류콘텐츠의 대중국 수출액 가운데 한한령의 직격탄을 맞은 방송(5%), 음악공연(7%), 영화(1%) 등은 여론 효과는 높을지 몰라도 경제적 비중은 그리 크지 않은 것들이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한한령으로 인한 한국 콘텐츠산업의 손실액을 약 87억원으로 추산했는데, 2015년 한류콘텐츠의 대중국 수출액이 약 1조7000억원였던 것을 감안하면 경제적 손실은 그리 큰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한한령에도 불구하고 2016년 말 한국의 콘텐츠산업 수출액이 전년대비 8.3%가 성장했으며, 2017년에도 8.5%가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소프트파워의 측면에서는 한한령은 최악의 결과를 초래했다.
올 초 아산정책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 국민들의 중국에 대한 호감도는 과거 북한을 제외하고 호감도 최하위를 기록했던 일본보다도 낮아졌고, 중국에 대한 신뢰도는 1년 전 39.7%에서 18.8%로 하락했다.
중국은 결과적으로 모든 면에서 한한령을 통해 별다른 효과를 가져오지 못했다. 한한령을 통해 본 중국의 대외적 문화 전략은 묘한 딜레마에 봉착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중국은 여전히 문화를 직접적인 국가 이익과의 관계 속에서 인식하고 있다. 외국문화의 진입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중국문화의 해외진출을 공격적으로 독려하는 것은 국제사회에서 또 하나의 ‘패권’으로 인식될 수 있는 소지가 있는 것이다.
문화가 소프트파워의 중요한 자원으로 간주되는 것은 ‘힘(power)’을 행사하는 방식의 차이에 있다. 문화는 강제나 유인과 같은 하드파워의 방식이 아니라 상대로 하여금 내가 원하는 바를 원하도록 끌어들이는 소프트파워의 방식을 가장 효과적으로 실현하는 수단이다.
그러나 한한령은 문화를 하드파워의 수단으로 사용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사람의 마음을 얻는 데는 실패했다.
그런 의미에서 한한령은 초강대국으로 부상한 중국이 선택할 수 있는 적절한 정책 수단은 아니었다.
한한령이 언제쯤 해소될지 예측하기는 어렵다. 어쩌면 중국 정부는 한한령이 남겨 놓은 ‘숙제’를 해결하는데 훨씬 많은 시간과 비용을 지불해야 할지도 모른다. 문화는 결국 사람의 마음과 관련된 것이며, 그것은 쉽게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그동안 국내 언론 및 정부와 학계의 논의는 주로 한한령에 따른 한국의 피해 사례와 규모를 중심으로 전개됐다.
중국의 보복에 대한 우리의 대응 방안은 조금 과장하자면 그야말로 속수무책이었다. 그렇다면 중국 정부가 선택한 한한령이란 카드는 정말 효과적인 보복 수단이었을까?
한한령이 특별한 이유는 중국 정부의 보복 조치가 무엇보다 ‘문화(산업)’ 영역에서 집중적으로 전개됐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2008년 프랑스, 2012년 일본, 그리고 2016년 몽골과 마찰을 빚었을 때 중국 정부는 해당 국가를 상대로 다양한 보복 조치를 감행하면서도 적어도 문화 영역만큼은 건드리지 않았다.
특히 민간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다양한 문화적 교류는 국가 간 긴장 관계 속에서도 유지됐고, 오히려 결정적인 순간에는 국가 간의 갈등 해소에 돌파구를 마련해 주기도 했다. 그렇다면 왜 유독 한국에 대해서만은 ‘문화’를 핵심적인 보복 수단으로 선택했을까? 그리고 중국 정부는 이를 통해 무엇을 얻었을까?
사실 ‘문화’는 21세기 중국의 국가 발전 전략 수립에 핵심적인 요소로 부상했다. 2011년 중국 정부가 ‘사회주의 문화강국 건설’을 새로운 국가 비전으로 선포한 것은 지난 개혁·개방 30년 동안 경제 발전에만 주력했던 국가 발전 전략에 대한 일대 전환의 신호로 간주됐다.
그 가운데 대외적 문화 전략을 보면 중국 정부의 정책 기조는 크게 두 가지로 나타났다. 하나는 문화정체성과 관련된 이른바 ‘문화안보론’이고, 다른 하나는 소프트파워 강화를 통한 국력의 신장과 관련된 것이었다.
문화를 국가안보 차원에서 거론한다는 것은 중국 정부가 심각한 문화적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소프트파워 강화와 관련해서 중국 정부가 시급히 해결하고자 했던 과제는 무엇보다 국가이미지 개선과 관련된 것이었다.
중국은 2010년 이후 소위 ‘G2’로 부상했지만,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국가이미지는 이에 상응하지 못했고, 심지어 중국이 선진국으로 진입하는데 심각한 장애요소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이 두 가지의 정책 기조는 외국 문화상품의 중국 내 진입에 대한 대내적 방어 기제로, 다른 한편으로는 중국문화의 대외적 확장이라는 목표를 지향하면서 상호 보완적 매커니즘을 구성했다.
우선 문화안보론의 측면에서 한한령은 지난 1년 동안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2017년 한국문화산업교류재단의 조사에 따르면, 한한령에도 불구하고 한류콘텐츠에 대한 중국인들의 관심은 크게 줄지 않았다.
한국 드라마와 영화 검색 추이도 이전과 거의 동일한 수준을 보였고, 공식적인 매체가 봉쇄되자 오히려 불법 유통 경로가 급속도로 확산되는 경향을 보이기도 했다. 더구나 한류의 확산이 중국의 문화정체성을 심각하게 위협한다는 논리 역시 설득력을 갖기 어려웠다.
사실 인터넷을 중심으로 전 세계가 네트워크화된 21세기에 특정 국가의 문화를 원천적으로 봉쇄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다.
문화경제적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다. 중국의 보복 조치가 한류콘텐츠에 집중된 만큼 한국의 관련 업계가 가장 많은 타격을 받을 것임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좀 더 거시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한류콘텐츠의 대중국 수출액 가운데 한한령의 직격탄을 맞은 방송(5%), 음악공연(7%), 영화(1%) 등은 여론 효과는 높을지 몰라도 경제적 비중은 그리 크지 않은 것들이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한한령으로 인한 한국 콘텐츠산업의 손실액을 약 87억원으로 추산했는데, 2015년 한류콘텐츠의 대중국 수출액이 약 1조7000억원였던 것을 감안하면 경제적 손실은 그리 큰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한한령에도 불구하고 2016년 말 한국의 콘텐츠산업 수출액이 전년대비 8.3%가 성장했으며, 2017년에도 8.5%가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소프트파워의 측면에서는 한한령은 최악의 결과를 초래했다.
올 초 아산정책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 국민들의 중국에 대한 호감도는 과거 북한을 제외하고 호감도 최하위를 기록했던 일본보다도 낮아졌고, 중국에 대한 신뢰도는 1년 전 39.7%에서 18.8%로 하락했다.
중국은 결과적으로 모든 면에서 한한령을 통해 별다른 효과를 가져오지 못했다. 한한령을 통해 본 중국의 대외적 문화 전략은 묘한 딜레마에 봉착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중국은 여전히 문화를 직접적인 국가 이익과의 관계 속에서 인식하고 있다. 외국문화의 진입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중국문화의 해외진출을 공격적으로 독려하는 것은 국제사회에서 또 하나의 ‘패권’으로 인식될 수 있는 소지가 있는 것이다.
문화가 소프트파워의 중요한 자원으로 간주되는 것은 ‘힘(power)’을 행사하는 방식의 차이에 있다. 문화는 강제나 유인과 같은 하드파워의 방식이 아니라 상대로 하여금 내가 원하는 바를 원하도록 끌어들이는 소프트파워의 방식을 가장 효과적으로 실현하는 수단이다.
그러나 한한령은 문화를 하드파워의 수단으로 사용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사람의 마음을 얻는 데는 실패했다.
그런 의미에서 한한령은 초강대국으로 부상한 중국이 선택할 수 있는 적절한 정책 수단은 아니었다.
한한령이 언제쯤 해소될지 예측하기는 어렵다. 어쩌면 중국 정부는 한한령이 남겨 놓은 ‘숙제’를 해결하는데 훨씬 많은 시간과 비용을 지불해야 할지도 모른다. 문화는 결국 사람의 마음과 관련된 것이며, 그것은 쉽게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