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석규의 대몽골 시간여행-5] 한(漢)나라는 왜 조공을 바쳤나? ②

2017-07-26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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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배석규 칼럼니스트]


▶ 묵특-기원전 시대 칭기스칸
이제 흉노의 영웅 묵특(冒顿)의 얘기를 시작해 보자.
사마천이 묵특의 이야기를 펼쳐나가는 과정을 보면 마치 한편의 영화를 보는 듯 드라마틱하고 흥미가 넘친다.
 

[사진 = 몽골비사(칭기스칸 시대 몽골 역사서)]

묵특이 초원을 통일하고 흉노를 강력한 유목제국으로 만들어 중국을 장악하는 과정을 보면 그에게 영웅이라는 이름을 붙여도 부족할 것이 없어 보인다.
묵특은 기원전 시대의 칭기스칸이었다.

그러나 칭기스칸과 다른 특징을 지닌 초원의 영웅이었다.
기원전 2백년 이전시대 흉노의 선우는 두만(頭曼)이었다. 그 두만을 죽이고 선우의 자리에 오른 것이 그의 아들 묵특이다.

묵특이 아버지를 죽이고 선우의 자리에 오른 일은 명적(鳴鏑), 즉 우는 화살의 일화로 알려져 있다.
두만이 선우 자리에 있던 때는 중국의 진시황이 중원을 통일한 그 시점이다.

지금부터 2천 2백여 년 전의 일로 진시황이 만리장성을 쌓은 것도 바로 이 흉노 때문이었다.
당시 흉노는 진시황의 군대에 밀려나 후흐호트 부근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 사지(死地)로 몰았던 아버지에 대한 복수
묵특은 두만의 적자로 태어나 황태자 자리에 있었다.
그런데 두만이 묵특의 모친이 아닌 다른 연씨에게서 자식을 낳으면서 그를 총애해 묵특 대신 황태자 자리에 앉혔다.

대신 묵특은 당시 흉노의 적인 월지(月氏)에 인질로 보냈다. 월지는 지금의 중앙아시아 폐리가나에 자리하고 있었다.
묵특을 인질로 보내 월지를 안심시킨 뒤 두만은 월지를 급습했다. 아들을 죽여도 좋다는 신호나 마찬가지였다.
아들을 죽여서라도 월지를 장악하려 했던 것이다.

월지는 묵특을 죽이려했지만 그는 천신만고 끝에 도망쳐 나와 돌아왔다.
두만은 이를 가상히 여겨 그에게 만인대의 기병군단을 거느리도록 했다.

묵특은 자기를 사지로 몰아넣었던 아버지를 그냥 두지 않았다.
명적의 일화는 여기서부터 생겨났다.

▶ 명적(鳴鏑:우는 화살)의 일화
묵특은 우는 화살 명적을 만들어 1만 명의 기병을 훈련시켰다.
자신이 화살을 쏘면 다른 모든 병사들이 자신이 쏘는 목표물에 동시에 화살을 쏘도록 명령하고 이에 따르지 않는 자는 모두 참수하겠다고 했다.

처음에는 사냥터에서 짐승에게 화살을 쏘았다.
대부분의 병사들이 사냥감에는 활을 날려서 목이 달아난 병사들은 별로 없었다.
다음에는 자신이 아끼는 말에다 명적을 쏘았다. 주저하며 활을 쏘지 않는 병사들은 참수됐다.

이번에는 그의 애첩에게 화살을 쏘았다.
두려워 활을 쏘지 않는 부하들은 이번에도 모두 목이 달아났다.
이제 명적을 쏘는 곳으로 함께 화살을 날리지 않는 병사가 없게 됐다.

묵특은 아버지 두만을 처리할 준비가 다 됐다고 생각했다.
얼마 후 묵특은 사냥을 함께 나간 아버지 두만에게 명적을 쏘았다.
부하들 모두가 주저 없이 두만에게 활을 쏘았다. 두만이 고슴도치가 돼 죽은 것은 물론이다.

바로 파블로프(Pavlov)의 개와 같은 조건반사의 효과를 이용한 것이다.
그는 아버지를 죽이기 위해 자신의 애마도 애첩도 희생시킨 냉정한 인물이었다.
그렇게 묵특은 스스로 두 번째 선우 자리에 올랐다.

▶ 상황 판단 빠른 전략가
냉혹하고 잔혹한 인물이지만 묵특은 상황판단이 빠른 전략가이기도 했다.
그 것은 선우 자리에 오른 뒤 첫 번째로 부딪친 동호(東胡)와의 문제를 처리하는 과정에서도 나타난다.

동호는 흉노의 동쪽에 자리한 강성한 나라였다.
묵특이 아버지를 죽이고 선우의 자리에 올랐다는 것을 안 동호는 사신을 보내 두만 선우가 살아 있을 때 타던 천리마를 달라고 했다.
신하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묵특은 천리마를 동호로 보냈다.

묵특이 자신을 두려워한다고 생각한 동호는 이번에는 연씨 중의 한 명을 보내라고 요청해 왔다.
신하들이 분개하며 반대했지만 묵특은 “여자 한 사람이 어찌 백성과 나라보다 소중하겠느냐”며 총애하던 연씨 중 한 명을 보냈다.

동호왕은 더욱 교만해져 동호와 흉노 사이의 버려진 땅을 자신들이 갖겠다고 윽박질러왔다.
버려진 땅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여긴 일부 신하가 땅을 줘도 상관없다고 하자 묵특은 “토지는 국가의 근본이다”라고 화를 내며 그 신하의 목을 베어 버렸다.
그리고는 동쪽으로 달려가 동호를 습격했다.

▶ 초원 통일, 한(漢)과 한판 승부
흉노를 업신여기고 아무런 대비도 하지 않았던 동호가 쉽게 무너진 것은 물론이다.
동호는 겨우 한 마리의 말과 한 명의 여자를 빼앗고 나라 전체를 들어다 받친 꼴이 됐다.

이 때 달아나 몽골의 선비산(鮮卑山)으로 들어간 무리를 선비족이라 하며 이들이 역사에 다시 이름을 내미는 것은 3백년 후의 일이다.
묵특은 이어 서쪽의 월지를 장악하고 진나라에게 빼앗겼던 오르도스 일대의 땅을 모두 되찾는 등 북아시아의 패권을 거의 움켜쥐었다.

이 때 중국은 진시황이 죽고 유방과 항우가 패권을 다투고 있었다.
중원에서 한(漢)과 초(楚)가 장기판처럼 장군 멍군하고 다투고 있는 사이 묵특은 탁월한 통솔력과 능력을 발휘해 흉노를 강하게 만들어 놓았다.

기원전 203년 항우가 해하 전투에서 패하면서 중국은 유방의 한나라에 의해 통일됐다.
이때는 이미 한과 흉노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상황이 됐다.
묵특과 한나라 고조 유방의 한판 승부는 이 때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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