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 중앙은행들은 경기 부양을 위해 저금리와 양적완화를 통해 시장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 부었다. 속도는 다르지만 마침내 경제가 회복되고 있다는 신호가 확인되면서 서서히 긴축으로 전환했거나 조만간 전환이 예상됐다. 그러나 낮은 인플레이션이 이들의 긴축 행보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 파이낸셜타임즈(FT), 니혼게이자이 등 외신에 따르면 최근 미국, 일본, 유럽 등 세계 주요 중앙은행들은 부진한 인플레이션을 일제히 지적하고 나섰다.
유럽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ECB는 정책 성명에서 경제 악화 시 양적완화의 추가 확대 가능성을 언급함 테이퍼링에 경계심을 나타냈다. 마리오 드라기 총재 역시 유로존 경제 성장세가 개선되고 있지만 소비자 물가 상승으로 연결되지 않고 있음을 지적했다. WSJ은 ECB가 양적완화를 2018년이나 그 이후까지 고수할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올해 두 차례 금리인상을 단행한 미국 연준도 지지부진한 인플레 추이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재닛 옐런 연준 의장은 이달 12일 미국 하원 증언에서 향후 2~3년 안에 미국 인플레이션이 2%까지 완만하게 오를 것이라고 예상하면서도, 인플레가 목표치에 도달이 어려울 경우 정책 조정에 기꺼이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달 14일 발표된 미국의 6월 물가 상승률은 전년 대비 1.6% 상승하면서 연준 목표치를 2%에 못 미쳤다. FT의 사전 전망치인 1.7%도 하회했다.
세계 중앙은행들은 수년 동안 전례없는 규모의 통화부양책을 실시하면서 경제 회복과 함께 물가도 함께 뛸 것으로 믿어 의심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기대는 무너졌고 신뢰도 흔들리고 있다. 저유가, 아마존 같은 온라인 업체와의 저가 경쟁, 자동화 등에 따른 기업들의 비용 절감, 여전히 저조한 소비 심리 등이 원인으로 꼽히지만 중앙은행들도 뚜렷한 이유를 찾아 해결하는 데 애를 먹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반 소비자들로선 물가가 오르지 않는 것을 원할지 모르겠지만 이 경우 기업 이윤이 정체되어 투자가 줄고 임금 상승률이 낮아지며 경제 활력이 위축되는 악순환에 갇히게 된다. 중앙은행들이 인플레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 통화 부양책을 지속하겠다고 선언한 이유다.
시장에도 긴축 전망을 축소하는 모습이다. 연준은 연내 1회 추가 금리인상을 예고했지만 CME그룹에 따르면 연방기금금리 선물시장은 12월 금리인상 가능성을 43% 정도로 낮게 평가하고 있다. 다만 오랫동안 ECB의 정책 전환 신호에 촉각을 세우던 유로 투자자들은 드러기 총재의 기자회견 이후에도 올 가을 ECB의 양적완화 조정 계획이 나올 것이라는 기대감을 꺾지 않으면서 유로는 달러 대비 2년 반래 최고치까지 찍기도 했다. 트럼프 친성장 정책 기대감이 낮아진 데 따른 달러 하락도 유로 상승을 부채질했다.
한편 계속되는 대규모 양적완화가 초래할 위험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JP모간의 제이미 다이먼 회장은 “중앙은행들이 전례 없는 규모의 양적완화를 펼쳤다”면서 “긴축에 따른 파장도 전례 없는 수준에 이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