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의 중국몽(夢)과 일대일로(一帶一路) 그리고 동아시아 ⓶]

2017-06-22 11:30

시중쉰(왼쪽)과 시진핑 [사진=시중쉰 화보전기(習仲勛畵傳) ]

아주경제 이정주 기자 = 지난 2007년 혜성처럼 등장한 시진핑 주석의 저력은 오랜 기간에 걸친 하방(下放, 당·정부·군 간부의 관료주의를 방지하고 지식인들의 사상 무장을 명분으로 일정 기간 산골 벽지나 공장으로 보내 노동에 종사하게 했던 운동)시절에 단련됐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했다. 마오쩌둥(毛澤東)의 총애를 받던 시중쉰(習仲勳·시진핑의 부친)이 반역 논란으로 인고의 세월을 보낸 것이 아들에겐 전화위복이 된 셈이다. 시진핑은 중국 인민들의 삶을 직접 체험하면서 동시에 중국 권력의 주축인 태자당의 일원으로서 정치적 입지를 다져나갔다.

◆부친인 시중쉰 실각과 고난의 세월

시진핑의 부친 시중쉰은 10대의 나이에 공산혁명에 뛰어들 정도로 두각을 나타냈다. 일본의 동아시아 침략 전쟁이 한창인 가운데 그는 무력한 중국의 현실을 자각하고 적극적인 운동을 벌였다. 학생운동으로 투옥된 상황에서 공산당에 가입한 시중쉰은 후일 중국 혁명 영웅으로 불린 류즈단(劉志丹)을 만나 본격적인 혁명의 길을 걷게 된다.

시중쉰은 21살 때 산간변구(陝甘邊區) 소비에트 정부 주석에 오르며 공산당 시베이지구(西北) 권력 서열 3위로 우뚝 서게 된다. 지방에서 활약하던 시중쉰은 1952년 공산당 중앙선전부 부장 겸 정무원 문화교육위원회 부주임에 임명된다. 마오쩌둥은 중국의 공산혁명을 성공한 이후 지방권력의 팽창을 본격적으로 견제 움직임을 보였다. 이에 지방 유력인들을 중앙의 요직으로 끌어들이는 과정에서 시중쉰도 베이징으로 소환된다. 시진핑은 시중쉰이 베이징으로 입성한 후 1년 뒤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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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시중쉰의 정치인생의 최대 위기인 '류즈단 사건'이 발생한다. 시중쉰은 자신의 과거 상사인 류즈단의 제수가 쓴 소설을 출판하기 위해 공을 들였는데,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이 반역을 도모한 가오강과 흡사하다는 이유로 궁지에 몰린 것이다. 반대파에서는 시중쉰이 소설을 이용해 가오강의 명예를 회복시키려 했다는 혐의를 적용해 모든 직책에서 그를 해임했다. 이후 시중쉰은 16년 간의 하방생활을 보낼 수 밖에 없었다.

시중쉰에 대한 정치적 박해는 대약진운동 등이 실패하면서 입지가 흔들리던 마오쩌둥이 주도권 회복을 위해 이용했다는 게 중론이다. 감옥과 공장 등을 전전했던 시중쉰은 문화대혁명이 끝난 후 베이징에 돌아올 수 있었다.

시중쉰의 묘소 [사진=연합뉴스]

◆하방생활에서 익힌 실용주의와 청렴

시중쉰의 낙마로 인해 시진핑 또한 유년기를 지방에서 고난의 세월을 보냈다. 시진핑은 7년 간 량자허에서 하방생활을 보내면서도 각고의 노력 끝에 청화대에 입학한다.

1969년 섬북 농촌에서 7년을 보낸 시진핑의 첫 번째 직함은 공산당 지부 서기였다. 그는 토굴집에서 기거하면서 농약가루를 뿌려가며 벼룩을 퇴치하는 등 밑바닥 삶을 경험했다. 또 석탄캐기와 인분 나르기, 제방 축조 등 노동으로 점철된 일상을 보냈다. 그 와중에도 시진핑은 학업에 대한 의지를 불태우며 1975년 청화대에 합격한다.

특유의 실용주의와 청렴한 자기관리도 부친인 시중쉰이 남긴 유산이다. 시중쉰은 늘 ‘일을 할 때는 실사구시(實事求是), 사람을 대할 때는 후도관용(厚道寬容)’이란 말을 입버릇처럼 강조했다. 실용적인 자세로 일을 하고, 후덕한 자세로 타인에게 관용을 베풀면 성공한 인생을 살 수 있다는 조언이었다.

또 어린 시절 시진핑의 누나가 신었던 꽃신에 검은 칠을 더해 자신이 물려받아 신을 정도로 생활에서 청렴을 배웠다. 당시 경험 덕분에 고도 성장기의 중국 연안지역에서 오랜 기간 지방관리를 맡았지만 부패와 금전적 비리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하방 시절 지방에서 수년간 내공을 다진 시진핑은 공산당 중앙의 정책에 호응하는 정무감각도 보였다. 중앙당에서 성장을 강조할 경우에는 성장을, 조화에 방점에 찍힌 경우에는 조화에 힘을 싣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유연하면서도 균형을 유지하는 이같은 정무 능력은 계략과 음모에 의해 숱한 고난을 겪은 부친의 인생을 옆에서 지켜보며 단련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