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출범 후 정부조직 개편 결과에 따라 기존 산업통상자원부 산하에서 부처로 승격되는 중소벤처기업부로 이전돼야 한다는 요구 때문이다.
외교부로 이전될 것으로 예상했던 산자부내 통상 부문이 존치 되는 것으로 마무리 되면서 소문은 잠잠해 졌으나, 중소기업 관계자들은 여전히 한국생산기술연구원(기술지원)·기술신용보증기금(기술금융) 등과 함께 산자부 산하 중소기업 지원 핵심 기관인 코트라(무역 투자 지원)의 이전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어 불씨는 남아있는 상태다.
현재 중소기업청 산하에 중소기업진흥공단 등 유관기관들을 존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코트라 이전을 희망하는 것은 그만큼 코트라가 정부 내에서의 위상이 작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2016년말 기준 1043명(임원·정규직·무기계약직)이 근무하고 있는 코트라는 국내에 본사와 11개지원단 및 2개 사무소, 해외에 10개 지역본부, 127개 해외무역관(86개국)을 운영하고 있다. 설립 당시 벤치마킹 모델이었던 일본무역진흥회(JETRO, 해외 55개국 74개 사무소)와 이탈리아무역공사(ICE, 87개국 117 지사) 보다 많은 해외 네트워크를 구축, 전 세계적으로도 가장 큰 무역지원기관으로 성장했다. 이들 해외 기관들은 코트라를 방문해 중소기업 지원 사업을 배워갈 만큼 경험과 노하우를 보유하고 있다.
코트라 관계자는 “무역관 수와 더불어 직원들이 오랜 시간 공을 들여 현지에 구축한 인적 네트워크가 큰 자산이다”라면서 “준정부기관이라는 이점을 살려 현지 정부와 기업들과 친분을 쌓아 놓은 덕분에 우리 기업들의 현지 진출을 보다 쉽고 빠르게 지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코트라를 중소기업 해외시장 진출 지원 기관으로만 여긴다면, 이는 코트라의 성격을 절반 수준에서만 이해한 것이다. 코트라가 지닌 진정한 강점은 전 세계 무역관에서 매일 수집하는 막대한 정보들이다. 지금이야 대다수 국가와 수교가 이뤄져 대사관·영사관이 현지에 세워졌고, 삼성전자와 LG전자 등의 기업들도 더 많은 자체 해외 네트워크를 운용하고 있으나 과거에는 코트라의 해외망이 최고였다.
1962년 설립 후 코트라는 △국교 정상화 이전의 일본 △비동맹 중립노선을 표방했지만 사회주의 색채를 강하게 띠며 북한과 밀접한 관계에 있던 아시아·아프리카 29개국으로 구성된 ‘아·아(亞.阿)그룹’ △헝가리와의 ‘양파무역’으로 촉발된 동구권 교역 △‘철의 장막’ 소련 △‘죽의 장막’ 중공 △마지막 미지의 시장 쿠바 등의 국가들과 정식 외교관계를 수립하기 전 먼저 현지에 무역관을 개설해 우리 기업의 수출을 지원했다. 특히 동남아·아프리카, 동구권과 소련, 중국 등의 국가에서는 한국의 진출을 막으려는 북한측과도 충돌했다. 실제로 몇몇 코트라 직원들은 북한측으로 피랍될 위기에 처한 적도 있다.
더불어 현지에 진출한 우리 기업 주재원을 대신해 영사 업무도 맡는 등 사실상 ‘준 외교관’의 역할을 떠맡았다. 2003년대 초반 발발한 미-이라크 전쟁 당시 교민과 기업이 철수한 이라크 바그다드 무역관 직원들은 위험을 무릎 쓰고 남아 현지 정세에 목말라 하는 국민들을 위해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이렇듯 몸으로 뛰며 습득한 정보들은 국내 수출기업들은 물론 정부에게도 해외실정을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인터넷의 발달로 예전만큼은 아니라고 해도, 코트라가 전하는 정보는 여전히 국내 기업들에게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다.
◆코트라 빼앗으려는 외통부와 재경부
그런데, 이러한 코트라가 다른 정부 부처들 사이에서는 질투의 대상이었다는 후문이다.
상공부(산자부의 전신)은 코트라의 해외정보를 사실상 독점해 청와대와 정부 각 부처, 기업들에게 전달했다. 해외시장 정보 습득 순위에서 밀린 타 부처 공무원들은 부러움과 불만을 함께 느꼈다는 것이다. 외교부의 전신 외무부도, 소속 외교관들이 대사관에 나가 정보를 취합한다고 하지만 산업에 대한 지식이 상대적으로 낮다보니 정보수집 면에서는 코트라 무역관 직원들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전직 코트라 관계자는 “외교관들은 아무래도 정무적인 업무에 집중하다 보니 상대국 정부 고위 관계자들로부터 통상 현안 정보는 빨리 받는다고 해도 산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어떻게 우리 기업에게 영향을 미칠지 파악을 잘 못했다”면서 “그럴 때마다 무역관 직원들이 설명해주고 대처 방안을 함께 모색하곤 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