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문은주 기자 = 본격적인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협상을 앞둔 가운데 유럽연합(EU) 측이 영국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승부수로 띄웠던 조기 총선의 실패로 정치적 위기에 몰린 테레사 메이 영국 총리는 대외적으로는 브렉시트 협상까지 감당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 영국 압박 시작한 EU..."19일 협상 개시 목표 지켜야"
당초 브렉시트 협상은 19일(이하 현지시간) 개시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조기 총선 이후 영국 국정이 표류하면서 협상 개시가 지연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집권 보수당이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로 북아일랜드 민주연합당(DUP)과의 연정을 추진하면서 브렉시트 협상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야당인 노동당은 물론 보수당 내부에서조차 기존 하드 브렉시트(EU와 완전 결별) 전략을 재고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 것도 그런 관측에 힘을 실었다.
BBC에 따르면 EU 협상단 측이 협상 개시를 촉구하는 데는 리스본 조약 50조가 발동된 지 벌써 3개월이 지난 만큼 협상 시간을 단축하려는 뜻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리스본 조약 50조에 따르면 EU를 탈퇴하려는 국가가 탈퇴 의사를 공식화한 시점부터 최초 협상 기한이 2년으로 설정된다. 27개 EU 회원국의 동의를 얻으면 협상 기한을 연장할 수 있지만 일단 1차 협상 기간이 2019년 3월 28일까지 정해진 만큼 협상 장기화를 막으려면 협상 개시를 서둘러야 한다는 것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등 주요 EU 당사국들이 조속한 협상 개시를 거듭 요구하자 메이 총리는 "브렉시트 협상 일정은 예정 그대로 진행될 것"이라고 응수했다. 그러나 연정에 따른 소수정부 구성 협상이 지체될 수 있다는 점, DUP와의 이해 관계에 놓여 있는 아일랜드공화국의 반발이 있는 점 등은 변수가 될 전망이다.
◆ 소프트 브렉시트 기대 나왔지만...영국 "일단 하드 브렉시트 고수"
EU 협상단 측은 이미 양보 없는 협상을 예고했다. 영국이 EU를 탈퇴하더라도 나머지 27개국 회원국이 타격을 받지 말아야 한다는 뜻에 따른 것이다. 이에 따라 협상은 △ 영국의 EU 분담금(약 600억 유로) 지급 촉구 △ EU의 관세 부담 낮추는 무역 협정 마련 △ EU 국민의 '이동의 자유' 확보 등을 골자로 주도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에는 기존 런던에 있던 '유로화 거래 청산소'를 다른 유럽 대륙으로 이전하는 계획을 구체화했다고 CNBC가 보도했다. 영국이 하드 브렉시트(EU와 완전 결별)를 주장하는 만큼 영국의 EU 탈퇴 이후 파장을 최소화하기 위한 것이다. 유로화 거래 청산 작업은 주식과 파생상품 등의 거래 과정에서 매수자나 매도자 중 한쪽이 파산하더라도 거래를 보장하는 제도다. 그동안 런던에서는 전 세계 유로화 파생상품의 4분의 3이 거래돼, 하루 거래 규모가 8500억 유로(약 1072조 5810억 원)에 달했다.
시장에서는 소프트 브렉시트에 대한 기대감도 번졌으나 메이 총리는 기존 방침을 고수할 것으로 보인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 등 현지 언론들은 "메이 총리의 최근 행보를 보면 국내외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EU 단일시장 철수, 관세 동맹 탈퇴 등 기존 입장을 고수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한편 하드 브렉시트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독일 등 EU 국가의 국적을 취득하는 영국인 수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독일 통계당국에 따르면 지난해 독일 국적을 취득한 영국인 수는 2865명으로, 전년 대비 3.6배에 급증했다. 이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가장 많은 수치로, 브렉시트 이후 EU 역내에서의 자유로운 이동과 취업이 제한될 것이라는 우려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