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대립군’ 김무열, 꽃이 되다

2017-06-08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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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대립군'에서 곡수 역을 맡은 배우 김무열[사진=이십세기폭스 코리아(주) 제공]

아주경제 최송희 기자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 그는 나에게로 와 / 꽃이 되었다.

영화 ‘대립군’(감독 정윤철)은 임진왜란 당시 ‘파천’(播遷)한 아버지 선조를 대신해 왕세자로 책봉되어 ‘분조’(分朝)를 이끌게 된 ‘광해’(여진구 분)와 생계를 위해 남의 군역을 대신 치르던 ‘대립군’(代立軍)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배우 김무열(35)이 연기한 곡 수는 김춘수의 ‘꽃’을 연상케 하는 인물이다. 대립군 중 활쏘기에 가장 능하고 전쟁에 도가 튼 야망 넘치는 남자지만 동료들과 토우를 가족처럼 살뜰히 챙긴다. 전쟁 중 분조 행렬에 합류해야 하는 상황도 못마땅할뿐더러 마뜩잖은 왕 때문에 동료들이 죽어 나가자 분노하기도 한다. 그러나 광해가 그의 이름을 불렀을 때, 곡수는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뜬다.

“곡수가 광해에게 칼을 겨누는 장면이 있죠. 왕 목에 칼을 댄다는 건 죽음을 불사하겠다는 거잖아요? 저의 몸부림이 광해에게 작게나마 영향을 미쳤으리라 생각해요. 제가 곡수에 대해 깊이 생각한 건 이 장면을 찍었을 때였어요. 광해가 곡수의 이름을 불러주고, 곡 수는 크게 동요하죠. 사실 이름을 불러준 게 큰일이 아닌데도. 지도자에게 바라는 점은 그리 크지 않은 것 같아요.”

영화 '대립군'에서 곡수 역을 맡은 배우 김무열[사진=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제공]


어쩌면 곡 수는 민초의 대변인 같은 존재다. 왕의 부덕함에 열을 내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진정성을 단박에 알아챈다. 김무열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곡수를 연기하며 “우리가 지도자에게 바라는 것이 크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내 이름을 알아주는 것 즉 소통에 대한 문제”라고 정의했다.

“일말의 기대가 생기는 거죠. 그러므로 하이라이트 장면에서 ‘제발 나와달라’며 읍소를 하기도 한 거고요. 곡수와 제가 얼마나 닮아있냐고요? 글쎄요.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그런 욱하는 모습을 가지지 않았을까요? 하하하. 어쩔 수 없는 상황인 데다가 그만큼 상황이 처절했으니까요. 저는 곡수를 연기하면서 100% 공감했고 납득도 갔어요. 그런 울분이나 심경은 다른 대립군 모두 마찬가지였을 것 같아요.”

영화 ‘작전’을 지나 ‘최종병기 활’, ‘은교’, ‘연평해전’에 이르기까지. 배우 김무열은 다양한 성격의 인물들을 연기해왔다. ‘대립군’ 곡수 같은 경우,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도전적인 캐릭터로 기억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강인함과 도전적 성격에 대해 질문했다.

“아마 분장의 힘이 아닐까요? 하하하. 바로 직전에 연극 ‘얼음’에서 욕쟁이 형사 역을 맡았어요. 터프한 역할이었는데 그 모습을 보고 정윤철 감독님께서 캐스팅 제의를 해주셨거든요. 그래서 그 형사 역에서 영감을 얻어 곡수를 만들어갔어요. 원래 곡수는 더 유머러스한 캐릭터였거든요. 본인이 의도한 게 아니라 상황에서 오는 코미디가 있었죠. 여자도 좋아하고…. 하하하. 그런데 영화 톤을 보니 생존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지옥에서 살아나가려고 발버둥 치는 상황 속에 그런 유머 코드를 가지고 오기가 힘들더라고요. 촬영을 하면서 방향을 바꿔나갔어요.”

김무열은 곡수에 대한 많은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곡수가 입버릇처럼 달고다니는 ‘X부럴’이라는 욕설도 그의 아이디어였다. “대놓고 웃기지 않더라도 유머러스함을 잃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대사를 적용하려 했고 정윤철 감독도 이에 동의했다.

“대사 끝에 욕을 안 넣으니까 어색하더라고요. 그래서 ‘말끝마다 넣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었죠. 결국, 전쟁 중이라고 해도 사람이 사는 곳이니까. 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생기는 필연적인 웃음 코드가 있잖아요? 그걸 녹여내고 싶었죠.”

영화 '대립군'에서 곡수 역을 맡은 배우 김무열[사진=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제공]


곡수의 또 다른 활약상은 민초들의 마음을 울린 노래 신이었다. 모두가 지친 상황 속, 광해는 곡수에게 노래 한 곡을 청하고 곡수는 마음을 담아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이에 광해 역시 “백성들에게 줄 수 있는 게 이것뿐”이라며 직접 자리에서 일어나 춤을 추기 시작한다.

“그 장면을 찍기 전날에 노래를 결정했어요. 저랑 (여)진구랑 모텔방에서 밤을 새워가면서 준비를 했죠. 마치 한석봉과 어머니처럼…. 하하하. 걱정을 많이 했어요. 원래는 더 판타지적인 느낌의 마무리였는데 현장에 가보니 생각지 못한 느낌이 만들어졌어요. 곡수의 노래, 광해의 춤이 만나고 민초들의 표정이 보이는데 더 울컥하는 느낌이 있었죠. 지금 현실과도 닮지 않았나요?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있었어요. 그런 공감, 소통에 있어서 목말라 있었던 것 같아요.”

김무열이 ‘대립군’을, 곡수를 만들어가는 과정은 뜻밖에 또는 예상치 못한 순간들이었다. “즉석에서 만들어지는 감정이 많았나 보다”고 운을 떼자, 그는 “신기한 체험”이라고 대답했다.

“몇몇 장면들의 경우에는 즉석에서 배우 미팅이 잡히고 대사 수정이 이뤄졌어요. 농담으로 ‘각색에 우리 이름도 올려달라’고 할 정도였죠. 감사하게도 감독님께서 우리의 의견을 수렴해주셨어요. 가장 신기한 체험이었던 건 절벽 위 성까지 몰린 광해와 백성들을 보며 ‘나오시오. 제발 나오시오’ 하고 울부짖는 장면이었는데요. 마침 그날이 4차 촛불 집회 날이었어요. 감정을 잡을 시간도 필요치 않았어요. 그냥 막 올라오더라고요. 어떤 여자 스태프들은 (촬영이 시작되자) 울기도 했어요.”

김무열의 말마따나 ‘대립군’ 속 일련의 사건들은 2017년을 사는 국민에게도 낯설지 않다. 지난해 벌어진 국정농단사태와 리더의 부재 등은 ‘대립군’이 겪는 일들과 그리 멀지 않기 때문이다. ‘대립군’이 주는 현대적 메시지, 관객에게 던지고 싶은 질문은 무엇일까?

“결국 ‘대립군’은 희망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어요. 극 중 인물들은 어딘가를 향해 나아가는 의지를 보여주고 또 어딘가에 있는 희망을 찾으려 하죠. 많은 분이 보시고 공감할 거로 생각해요. 힘든 시간을 함께한 분들께 이 작품을 통해 작게나마 위로, 응원의 메시지를 던질 수 있지 않을까요?”

영화 '대립군'에서 곡수 역을 맡은 배우 김무열[사진=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제공]


작품을 떠나 배우 김무열 또는 인간 김무열의 고민은 무엇일까? 지금 그를 관통하고 있는 키워드를 물었다.

“잊혀 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죠. 얼마 전 뮤지컬 ‘쓰릴미’를 공연했어요. 10년 전에 첫 공연을 했었는데 그때의 감정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더라고요. 그리고 더불어 ‘이제 더 이상 이 공연을 못 하겠구나’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시간이라는 게 지나가는 순간 관통된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떠올랐다는 게 결국 잊고 있었다는 이야기잖아요? 내가 중요하게 여기고 사랑하는 일마저도 소비하고 있지 않나. 잊고 살지 않았나? 생각이 들었어요. 대립군의 경우도 우리가 너무 모르고 지내지 않았나 싶기도 하고요.”

잊고 지내는 소소한 감각을 다시 깨우기 위해, 김무열은 꾸준히 작품 활동에 매진할 예정이다. 오는 8~9월 영화 ‘머니 벨’ 개봉을 앞두고 있고, 장항준 감독의 ‘기억의 밤’에도 합류한다.

“영화로 (관객들을) 자주 만나게 될 것 같아요. ‘머니 벨’이나 ‘기억의 밤’이 올해 쭉 개봉하게 됐거든요. 영화로 자주 인사를 드릴 것 같고 연말이나 내년 초에는 좋은 공연이 있다면 참여하고 싶어요. 특히 공연의 경우에는 ‘대립군’처럼 맞닿아있는 작품을 해보고 싶어요. 광화문 블랙씨어터에서 뮤지컬 배우들이 재능 기부를 할 때 개인적으로 부끄러움을 느꼈어요. ‘난 여기에서 뭘 하고 있지?’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정치 성향을 떠나 제가 할 수 있는 영역에서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게 제가 할 수 있는 몫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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