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박상훈 기자 ="근대성의 잘잘못이나 오류를 따지기 전에 근대성 자체를 상대화하는 게 필요해요. 거리를 두고 보는 것, 그 속에 매몰돼서 보지 않고 빠져 나와서 근대성 자체를 낯설게 보지 않으면 새로운 사회나 예술에 대한 상상이 어렵겠죠."
한국의 동시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로서 냉전, 남북갈등, 민속신앙, 역사의 재구성 등의 주제로 한국의 근현대사를 되짚어 보는 작업을 선보여온 작가 박찬경(52)이 5년 만에 국내에서 개인전을 연다.
대표작으로는 세월호 사건을 비롯해 한국 근현대사 격변의 역사들을 환기하며, 무명의 희생자를 애도하는 3채널 비디오·오디오 작업 '시민의 숲'(2016)과 한국의 제도권 미술이 지니는 자생적 미술사 서술의 한계를 창조적 판형들의 예시를 통해 제안하는 '작은 미술사'(2014~2017) 그리고 이 두 작품의 후속 작업을 슬라이드 프로젝션으로 소개하는 '승가사 가는 길'(2017) 등이 있다.
'시민의 숲'은 오윤(1946~1986)의 미완성 그림 '원귀도'와 김수영(1921~1968)의 시 '거대한 뿌리'(1964)에서 착안한 작품으로, 이 두 작품에 대한 작가의 응답이자 한국 근현대에 대한 비유다. 동학농민운동, 한국전쟁, 광주민주화운동 등을 비롯해 최근 발생한 세월호 참사에 이르기까지 비극적이고 혼란스러운 한국의 현대사 속에서 이름 없이 희생된 무명의 사람들에 대한 애도를 주제로 했다.
작가는 짧게는 3년 길게는 한 세기가 훌쩍 지났음에도 위로받지 못하고 떠돌아다니는 영혼들을 위해 그 동안 제대로 치러지지 못한 애도의 장을 마련한다. 전시 제목처럼 관람객은 작품을 감상하며 작가가 준비한 의식에 동참해 그들의 '안녕'을 함께 기원하게 된다. 박찬경은 "우리는 여전히 식민적인 문화에서 살고 있으며, 지금까지 극복되지 못한 근대성의 한계가 총체적으로 드러난 결과가 세월호 참사"라고 말한다.
'작은 미술사'는 한국과 아시아의 식민적인 미술제도에 대한 착잡하고도 해학적인 이야기다. 그는 연대기적 서술과 동서양을 구분하는 미술사 대신에 수평과 수직, 숭고미학, 미술관, 미술과 글, 동아시아 문화와 정치 등을 횡단하며 동서고금의 주요 미술작품을 주관적인 관점과 방식으로 재배열한다. 작품은 '허술하고 문제가 있고 미약하지만 그것을 정설로 제시하는 게 아닌, 주관적이고 이단적인 형태로 각자 쓰는 게 재미있는 미술사 아닌가?'라는 그의 질문을 고스란히 담았다.
이번 전시에서 처음으로 선보이는 신작 '승가사 가는 길'은 북한산 승가사에 가는 길을 슬라이드 필름으로 촬영한 것으로, '키치'와 '화엄'을 오가는 한국적 감상주의에 대한 사진 이야기다. 박찬경은 이외에도 이번 전시를 위해 새롭게 제작한 오브제 작업 '밝은 별', '칠성도'를 선보이는데, 이는 오늘날 '전통문화'라는 말 속에서 왜곡돼 이해되는 '전통'의 실재에 다가서려 한다.
한편 박찬경은 지난 2004년 에르메스 코리아 미술상을 받은 데 이어 자신의 형인 영화감독 박찬욱과 공동 연출을 맡은 '파란만장'으로 2011년 베를린 국제영화제 단편영화부문에서 황금곰상을 받았다. 주요 소장처로는 국립현대미술관, KADIST예술재단, 프랑스 낭트 미술관, 삼성미술관 리움, 서울시립미술관, 경기도미술관, 아트선재센터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