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박선미 기자 = 오는 17일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구속된 지 3개월째를 맞는 가운데, 삼성은 과도기를 겪고 있다. 호실적에 주가는 뛰는데 이 부회장의 경영 공백이 장기화되면서 인사나 투자 등 각 사 체제에 대한 대비는 못한다. 사업상으로는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이면에는 기강해이 등 조직 후퇴에 대한 우려도 크다.
◆계열사별 독자행보 잇따라
첫 테이프를 끊은 곳은 최대 계열사인 삼성전자다. 삼성전자는 지난 11일~12일 세트와 DS(부품) 부문 임원 96명을 승진시키는 인사를 단행했다. 2015년 말 정기 인사 때 승진한 135명에 비해 39명이 줄어든 수준이다.
1분기 역대 두 번째로 많은 9조9000억원을 벌어들였지만 '승진 잔치'는 없었다. 소폭의 임원승진은 이 부회장의 구속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비상 모드였던 경영을 정상화하기 위해 조치는 했지만, 그룹 총수가 부재 중인 상황인 만큼 대규모 승진은 부담스러웠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삼성전자의 자회사인 삼성디스플레이도 전무 이하 11명의 승진 인사를 발표했다. 다른 계열사에서도 조만간 임원 인사를 시행할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전자는 인사와 더불어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대응책도 내놨다.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사업부를 신설하기로 했다. 파운드리는 생산라인 없이 반도체 설계만을 하는 팹리스 기업들로부터 설계도면을 받아 반도체를 생산해 넘겨주는 것이다. 자율주행차·인공지능·사물인터넷 구현에 핵심이 될 반도체 사업을 쪼개서 키우겠다는 계획이다.
변화는 다른 계열사에도 감지된다. 금융계열사의 경우, 자율 경영의 취지대로 출근시각을 조정했다. 고객과 거래처 일과와 맞추기 위해서다. 삼성생명·화재·카드 등 임원들은 3월 중순부터 출근 시간을 오전 6시 30분에서 8∼9시로 조정했다.
삼성전자나 삼성디스플레이 등 주력사들이 삼성 계열사만 고집하지 않고 외부 업체들과 경쟁시켜 납품사 선정을 검토하는 사례도 하나씩 나타난다.
삼성 관계자는 "(이 부회장이 부재한) 석 달 동안 작게나마 변화가 나타난다"며 "계열사 자율경영이 강화되는 단계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기강해이·미래사업 우려 더 커졌다
그러나 긍정적인 변화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삼성 내부에서는 '기강이 해이해졌다'는 우려도 동시에 나온다. 가장 큰 예가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공시불이행이다.
자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가 금융감독원에 감사보고서를 제출한 사실을 뒤늦게 공시한 실수 탓에 한국증권거래소는 지난달 삼성바이오로직스를 불성실 공시 법인으로 지정했다.
지난 1일 31명의 사상자를 낸 삼성중공업 크레인 충돌 사고 역시 마찬가지다. 박대영 삼성중공업 사장이 "사고 원인을 철저히 밝히고 이에 따른 책임을 다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관리의 소홀함 지적은 끊이지 않았다.
또 다른 삼성 관계자는 "옛날 같으면 벌어지지 않았을 일이 이 부회장 구속 후 발생한다"며 "사업상으로는 문제가 없지만 조직 내 긴장감은 떨어진 게 사실이다"고 우려했다.
사장단 인사가 무기한 미뤄져 완전한 경영 정상화는 멀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삼성전자는 사장단 인사에 대해 "구체적으로 검토된 게 없다"는 입장만 내놓고 있다.
삼성의 M&A와 투자에 대한 리스크도 여전하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은 그간 데일리 오퍼레이션(일상 업무)은 부사장급에게 맡기고 이 부회장과 사장단이 3~5년 후 먹거리를 고민해왔다"며 "공백이 장기화될수록 호실적은 기대하기 힘들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