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경제구조 바꿀 적기…구조개혁·신산업 발굴 집중해야"
(세종=연합뉴스) 정책팀 = 19대 대통령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당선되면서 대통령 탄핵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전후해 벌어졌던 정치적 불확실성이 걷혔다.
더 큰 문제는 경제다. 당장 국민의 먹고 사는 문제, 저성장으로 눈에 띄게 활력이 떨어진 우리 경제의 반등을 어떻게 이끌어낼지를 놓고 새 정부에 대한 기대와 걱정이 교차한다.
당초 우려와 달리 최근 우리 경제가 수출과 투자 중심으로 회복세에 접어든 점은 새 정부의 어깨를 가볍게 하는 요소다.
그러나 소비와 고용 등 내수는 여전히 부진하다. 구조조정과 가계부채, 미국의 보호무역주의와 중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에 대한 보복 등 대내외 불확실성에 대한 해법을 찾기도 쉽지 않다.
전문가들은 새 정부가 최근의 경기 회복 불씨를 키우는 한편, 출범 초기에는 단기적인 경기 부양보다는 구조개혁과 신산업 발굴 등 중장기 과제에 집중해야 한다는 조언을 내놨다.
◇ 수출·투자 주도 경기 개선세 내수 전반에 확산해야
한국은행 발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0.9%(전분기 대비)로 작년 4분기 0.5%(잠정치)보다 0.4%포인트(p) 확대됐다.
이는 지난해 2분기(0.9%) 이후 3분기 만에 가장 높은 것으로 금융시장의 전망치(0.7∼0.8%)를 뛰어넘는 수준이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1분기 성장률 0.9%는 당초 예상치를 웃돈 수치"라며 "예상보다 경기회복세가 빠르다. 수출과 설비투자가 호조를 보인 영향이 크다"고 분석했다.
실제 지난 4월 수출액(잠정치)은 전년 같은 달 대비 24.2% 증가한 510억 달러로 2014년 10월(516억 달러) 이후 역대 2위를 기록했다. 수출은 지난해 11월 이후 6개월 연속 증가하면서 경기 회복을 이끌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최근 '경제동향 5월호'에서 "건축부문의 호조세로 건설투자가 높은 증가율을 유지했고 반도체 부문을 중심으로 대외수요가 회복되면서 설비투자와 수출도 비교적 큰 폭으로 확대됐다"고 진단했다.
문제는 이 같은 경기 회복세가 공고하지 않다는 점이다.
수출과 투자 증가세와 달리 소비를 의미하는 소매판매액은 3월 1.6%(전년 동월비) 증가하는데 그쳐 아직 본격적인 회복과는 거리가 멀었다.
기계류 수입액, 건설수주 등 일부 선행지수도 둔화하면서 향후 투자 증가세가 다소 축소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결국 문재인 정부 앞에는 최근의 수출과 투자 증가세를 이어가면서 경기 회복의 온기가 소비 등 경제 전반으로 확산하도록 하는 과제가 떨어진 셈이다.
대우조선해양 등 조선산업을 비롯한 산업 구조조정, 가계부채 급증, 소득 양극화, 인구 고령화 등의 대내 리스크는 물론 미국 트럼프 정부의 보호무역주의, 사드 배치에 따른 중국의 경제보복 등 대외 불확실성에 대한 해법도 찾아야 한다.
◇ '최고의 복지' 일자리 확대 공약 달성 여부 주목
최근 각종 지표 개선에도 체감 경기 개선이 이뤄지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고용시장에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3월 취업자 증가 수는 46만6천명으로 2015년 12월 이후 최대를 기록했다.
문제는 일자리의 질이다. 상대적으로 안정적이고 질 좋은 일자리를 제공했던 제조업 취업자 지표는 여전히 좋지 않다.
3월 제조업 취업자 수는 1년 전보다 8만3천명 줄면서 지난해 7월 이후 계속해서 내리막길을 걸었다.
반면 자영업자 수는 늘고 있다. 올해 1분기(1∼3월) 자영업자는 553만8천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17만명 늘어났다.
같은 기간 전체 취업자가 36만명 증가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새로 생긴 일자리 둘 중 하나는 자영업에 편중된 셈이다.
과거와 달리 경제가 성장하더라도 일자리는 그만큼 늘어나지 않는 구조적인 문제도 있다.
한국은행과 통계청, 노동연구원에 따르면 실질 국내총생산(GDP) 10억원당 취업자 수를 뜻하는 취업계수는 작년 17.4명으로 사상 최저 수준이었다.
경기가 좋아진다고 하더라도 늘어나는 일자리의 절대 수가 적고 그 질도 좋지 않다는 의미다.
한국 경제의 허리인 20∼30대 청년 실업난은 하루 이틀 이야기가 아니다.
4월 청년층(15∼29세) 실업률은 11.3%로 1년 전보다 0.5%포인트 낮아졌지만 여전히 10%를 웃돌았고, 1분기 20∼39세 취업 무경험 실업자는 관련 통계 작성을 시작한 이래 가장 많은 9만5천명에 달했다.
사회에 첫 발걸음을 내딛으려는 청년들이 일하고 싶어도 일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런 일자리 여건은 '소득 주도 성장'을 제시한 문 당선인이 해결해야 할 선결 과제 중 하나다.
일자리 확대로 소득이 늘어나야 소비가 증가하고, 이는 다시 기업 투자 확대와 일자리 증대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문 당선인이 임기 내 공공부문을 중심으로 총 81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라고 이미 공약했다.
일자리 문제 해법의 일환으로 당선 즉시 10조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 방침도 밝혔다.
그러나 추경 편성의 효과는 차지하고라도 편성 자체까지 길은 험난할 것으로 전망된다.
대규모 재해 발생, 경기침체·대량실업 등의 추경 편성 법적 요건과 현재 상황이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는데다 여소야대라는 국회 지형상 야권의 반발도 예상되기 때문이다.
최악의 경우 경제 문제가 정치 상황에 발목 잡혀 최근 살아나는 경기가 다시 꺾일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 전문가들 "경제구조 바꿀 적기…구조개혁·신산업 발굴 집중해야"
전문가들은 새 경제팀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수출과 투자 중심의 온기를 내수 등 경제 전반으로 확산시키데 있다고 입을 모았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하반기에는 우리 경제 성장률이 다소 낮아질 전망"이라며 "새 경제팀은 내수 진작을 위한 정책 수단을 고민하는 한편 경제주체들의 심리 부양에도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새 정부가 내건 추경 편성 자체는 당장 필요하지 않다는 의견이 많았다.
한국경제학회장을 맡고 있는 구정모 강원대 경제무역학부 교수는 "경기가 단기적으로 회복세를 보이기 때문에 한 두 달 전보다 추경 편성과 관련한 긴박성은 떨어졌다"고 지적했다.
신 수석연구위원 역시 "경기가 부진에서 헤어나오고 있고 대규모 자연재해가 있는 것도 아니다"면서 "추경을 꼭 하려면 청년 실업이나 구조조정 등으로 추경이 필요하다는 점을 국민들께 잘 설득해야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재정 면에서는 추경까지는 필요 없다고 하더라도 최대한 재정 보강을 하는 노력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경제가 최악의 상황을 모면한 만큼 단기 부양 수단을 동원하기보다 구조개혁, 신산업 발굴과 같은 중장기 과제에 집중해야 할 때라는 조언도 나왔다.
구 교수는 "엄밀히 말하면 지금은 위기 상황이라기보다 위기가 오는 소리가 들리는 상황"이라고 경제 상황을 진단하면서 "단기적인 대증요법보다 중장기적인 성장 모멘텀 확충에 모든 정책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조언했다.
홍석철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역시 "우리 경제의 구조적인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지금까지의 문제가 더욱 심각해질 우려가 있다"며 "새 정부가 들어설 때가 경제구조를 바꿀 적기"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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