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현장] '바터'로 몰아주기 규제 비웃는 증권사

2017-05-0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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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경제 서동욱 기자= 중소 증권사 두 곳이 얼마 전 생보사 후순위채 발행을 대표 주관했다. 이례적인 일이다. 후순위채는 일반 무보증 회사채보다 주관업무 강도나 위험이 크다. 대형 증권사가 주로 맡아 온 이유다. 두 중소 증권사는 주관 수수료도 안 받아 눈길을 모았다. 인수 수수료는 받았지만, 시세보다 훨씬 쌌다.

이유는 물물교환(바터)이다. 현재 증권사는 계열사 회사채 발행을 주관할 수 없다. 가장 많은 물량을 인수해도 안 된다. 일감 몰아주기를 차단하기 위한 것으로, '동양 사태' 이후 규제가 강화됐다.

증권업계는 바터로 피해가고 있다. 공정거래법상 대기업집단에 속한 증권사가 바터를 가장 많이 이용한다. 바터는 꾸준히 욕을 먹어 왔다. 하지만 증권업계는 요지부동이다. 예를 들어 A그룹 비금융사가 채권을 발행한다고 치자. 주관 업무를 A그룹이 아닌 B그룹 증권사에 넘겨준다. 다시 B그룹 비금융사가 채권을 판다. 이번에 일감을 받는 곳은 반대로 A그룹 증권사다. 증권사끼리 편법적으로 일감 몰아주기를 돕고 있는 셈이다. 수수료를 깎아주는 이유도 여기에서 발생한다. A그룹이 일감을 10개 주면서 10원을 줬다면, B그룹은 일거리를 20개 줘도 10원만 내면 된다.

통계로만 보면 증권업계는 내부거래 청정지대다. 기업정보업체인 CEO스코어는 30대 그룹 증권사 이사회 안건을 분석해 자료를 냈다. 내부거래 승인은 2016년 한 해에 15건밖에 없었다. 삼성증권이 11건, 한화투자증권은 2건, 미래에셋대우와 SK증권이 각각 1건씩이다. 증권사 수로 치면 4곳뿐이다. 나머지 증권사는 내부거래와 무관한 것처럼 여겨질 수 있다. 물론 바터 때문에 이렇게 보일 뿐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바터는 오랜 관행"이라며 "분명 잘못이지만, 여전히 알음알음으로 횡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비대기업집단 증권사는 바터에 끼기 어렵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경쟁해야 한다. 바터는 전화나 문자 메시지, 구두로 이뤄져 적발하기 힘들다. 금융위원회나 금융감독원이 눈을 더 크게 떠야 한다. 공정거래위원회도 마찬가지다. 일감 몰아주기 규제가 사문화돼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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