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이 인간을 본격적으로 대체하기 시작하면 우리 주변의 평범한 일자리부터 사라지기 시작할 것이다. 일부 학자들은 중간급 기술이 인공지능으로 대체될 가능성이 가장 크기 때문에 중산층의 몰락마저 예상하고 있다.
이처럼 기존 사회안전망의 개선 필요성이 점차 커지고 조기 대선 또한 다가오면서 최근 정치권을 중심으로 기본소득제에 대한 논의가 다시 일었다. 기본소득제는 국가가 모든 국민에게 소득 수준과는 상관없이 동일한 금액의 소득을 지원하는 제도다. 쉽게 말해 나도, 독자 여러분도, 독거노인도, 대통령도, 그리고 대기업 총수도 모두 국가로부터 동일한 금액을 지원받는 제도이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돈을 준다니 손해 볼 것이 없는 것 같지만 좀 더 깊이 생각하면 심각한 고민을 해야 할 부분이 많다.
우선 어느 정도의 돈을 주어야 안정적인 생활이 가능할지 여부이다. 일을 할 수 없어 소득이 전혀 없는 4인 가구를 생각해보자. 대략 1인당 연간 500만원, 가구 전체로는 연간 2000만원을 지원한다면 풍족하지는 않지만 최소한의 안정적인 삶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2016년 가계동향조사 자료를 살펴보면 15세 이상 전체 인구는 대략 3712만명이다. 1인당 연간 500만원씩 지원한다면 1년에 대략 186조원이 필요하다. 2016년 정부 예산 중 보건·복지·고용에 할당된 예산이 약 123조원이니 이 예산의 약 1.5배가 필요하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수치이다. 더구나 저출산·고령화로 인해 2030년이면 15~64세 인구 1.7명이 노인과 어린이 1명을 부양해야 하는 사회가 도래할 것이기 때문에 지금부터 복지예산을 마구 늘릴 수는 더욱 없다.
필자는 얼마 전 안심소득제와 관련된 연구를 수행하였다. 안심소득제란 가구원 규모를 감안해서 가구별로 최소한의 안정적인 삶을 유지할 수 있는 기준 소득을 정하고 실제 소득이 기준 소득보다 낮을 경우 그 차이의 40%를 지원하는 제도이다. 예를 들어, 4인 가구의 기준소득을 5000만원이라 정하자. 일을 할 수 없어 소득이 전혀 없다면 기준소득 5000만원과 실제 소득 0원의 차이인 5000만원의 40%, 즉 2000만원을 지원한다. 다행히 일을 조금이나마 할 수 있어 연 소득이 1000만원이 되면 기준소득과 실제 소득 차이 4000만원의 40%인 1600만원을 지원받아 가구소득은 2600만원이 된다.
일을 할 경우 추가로 얻은 소득의 60%, 위 예에서는 1000만원의 60%인 600만원만큼의 소득이 더 증가하니 복지시스템에 의존해 경제활동을 거부하는 사례도 줄어든다. 더 중요한 점은 가난한 사람에게 더 많은 지원을 하기 때문에 소득 격차가 줄어든다는 점이다.
지니계수는 소득불균등을 나타내는 지수로 0이면 모든 사람들의 소득이 똑같은 경우이고 1이면 사회 전체 소득을 한 사람이 독차지하는 경우이다. 즉, 지니계수가 높을수록 소득불균등은 심한 것이다. 2016년 가계동향조사 자료를 기준으로 지니계수를 계산하면 0.344이다. 그런데 현재 소득재분배 시스템을 거치면 지니계수는 0.298로 하락한다. 여기에 약 25조원의 예산을 투입해 안심소득제를 시행하게 되면 지니계수는 0.259까지 하락한다. 소득불균등을 상당히 완화시킨다. 하지만 동일한 예산을 소득수준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에게 골고루 나눠주는 기본소득제를 실시하게 되면 지니계수는 0.294에 그친다. 25조원을 추가로 투입해도 현재 소득재분배 시스템과 큰 차이가 없는 것이다.
위 사례를 보면 답은 명확해진다. 현재 우리 경제 상황을 감안하면 기본소득제 시행은 불가능하다. 대신, 가난한 사람을 정확히 구별하고 그들에게 소득 수준을 감안하여 지원하는 것이 주어진 예산 하에서 소득불균등을 완화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다. 대선 기간 동안 엄청난 포퓰리즘 공약이 나올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다. 눈을 크게 뜨고 공약(空約) 중에서 정말 필요한 공약(公約)을 가려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