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현혜란 기자 = "이야, 이거 돈 벌기 쉬운데…"
서울 강동구에서 배달 등 각종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하던 A(20)씨는 어느 날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엉뚱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보이스피싱 조직의 인출·송금책을 하면서 피해자로부터 받아낸 돈을 중간에 빼돌리는 방법이다. 범행을 진두지휘하는 총책이 경찰에 자신을 신고할 수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A씨는 곧바로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겼다. 우선 인터넷으로 찾은 보이스피싱 조직에 연락해 중국 최대 모바일메신저인 위챗(微信)을 통한 '아르바이트'를 하고 싶다고 했다.
이 조직 총책의 지시를 받은 A씨는 지난달 중순 송파구 마천동에 있는 현금자동입출금기(ATM)에서 체크카드로 192만원을 인출했다. 그리고 곧바로 잠적했다.
며칠 뒤 A씨는 고등학교 선배인 B(22)씨, 친구 C(20)씨와 술을 마시다 자신의 '무용담'을 들려줬다. 솔깃해진 B씨와 C씨는 범행을 함께하기로 했다.
우선 예행연습을 해보기로 했다. 다른 보이스피싱 조직에 가입해 지난달 21일 여의도역에서 피해자를 만나 금융감독원 직원임을 사칭해 4천만원을 받아내는 등 총 6천630만원을 뜯어냈다.
이 돈에서 수수료인 10%를 뺀 나머지를 총책의 계좌로 보냈다.
자신감을 얻은 이들은 판을 키우기로 했다. 명령이 떨어지면 바로 움직일 수 있도록 B씨가 평소 알고 지내던 후배 2명을 더 불러들였고, 기동성을 높이고자 렌터카까지 빌렸다.
보이스피싱 조직은 보통 인출·송금책이 서로 모르는 점조직 형태로 활동하기 마련인데 이들은 조직 총책 모르게 별개의 '인출팀'을 구성한 것이다.
윗선의 연락을 받은 이들은 지난달 27일 인천 부평역에서 택배로 수령한 체크카드로 인출한 698만원을 총책에게 보내지 않고 그대로 챙겼다.
하지만 이들의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식 범행은 오래가지 않았다. 다른 보이스피싱 일당을 추적하던 중 이들의 범행에 관한 첩보를 입수한 경찰에 덜미를 잡혔다.
서울 강동경찰서는 A씨와 B씨를 사기 혐의로 구속하고, 나머지 세 명을 불구속 입건해 최근 검찰에 기소 의견으로 송치했다고 1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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