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칼럼] 리라와 라일락 그리고 4차 산업혁명

2017-04-21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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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일락은 우리 꽃인 수수꽃다리의 개량

[성제훈 농촌진흥청 연구관 ]


“베사메 베사메무초/고요한 그날 밤 리라꽃 지던 밤에/베사메 베사메무초/리라꽃 향기를 나에게 전해다오.”
스페인 작곡가가 만든 멕시코 대중음악에 현동주 님이 노랫말을 붙이고, 현인 선생이 구성지게 부른 ‘베사메 무초’에 나오는 노랫말이다.

여기에 나오는 ‘리라꽃’은 요즘 한창 자태를 뽐내고 있는 ‘라일락꽃’을 가리키는 프랑스어이다. 프랑스어로 ‘리라(lilas)’는 라일락 또는 자홍색을 뜻하며, 영어로는 우리가 잘 아는 라일락(lilac)이다.

라일락은 빼어난 모양새, 매혹적인 향으로 봄날을 찬양하는 자리 말고도 식물자원의 중요성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1947년 미군정청 소속 식물 채집가 엘윈 M. 미더(Elwin M. Meader)가 북한산 백운대에서 얻은 수수꽃다리 종자를 미국으로 가져가 키를 작게하고, 꽃 색깔을 보라색으로 개량한 것이 지금 세계 시장을 휩쓸고 있는 라일락이다. 우리가 수수꽃다리를 잘 다듬어 세계적인 상품으로 만들었다면 라일락이 아니라 ‘수수꽃다리’라는 멋진 이름으로 세계 꽃 시장을 주름잡고 있을 것이다.

외국에서 장미, 카네이션, 튤립을 사다 잘 키워 세계 시장에 내다 파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나라 들꽃을 잘 다듬어 세계적인 꽃으로 만드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우리 꽃 속에는 우리 삶과 문화가 들어 있기에 우리 꽃을 세계 시장에 팔면 우리 문화를 파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라일락의 본래 이름인 수수꽃다리는 네 갈래로 갈라져 원추꽃차례로 달린 꽃받침과 꽃부리가 마치 수수 모양과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우리가 붙인 우리나라 들꽃의 이름은 이렇게 멋있다. 해바라기는 해를 바라보고 방향을 튼다고 해서 붙인 이름으로 선플라워보다 멋지다. 클로버보다는 손목에 꽃시계를 만들 수 있는 시계풀이 예쁘고, 코스모스보다는 가을바람에 살랑대는 살사리가 더 곱다.

솜다리꽃을 에델바이스라고 부르고, 붓꽃을 아이리스라고 하며, 담쟁이덩굴을 아이비라고 해야 교양있는 사람으로 보이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베사메 무초에 나오는 리라꽃이 라일락의 프랑스 말이고, 라일락이 원래는 우리 꽃 수수꽃다리였다는 것을 알고 가슴아파 하는 것이 더 교양있어 보인다. 비록 라일락은 뺏겼지만, 남아 있는 들꽃이라도 잘 지킬 일이다.

요즘 여기저기서 4차 산업혁명을 이야기한다. 빅데이터를 활용한 인공지능이 우리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모양이다. 흐르는 물결을 거스를 수 없다면 그 물결을 타고 같이 흘러가야 한다. 농업에도 4차 산업혁명을 받아들이자.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로 무장한 4차 산업혁명이기에 소중한 생명을 다루는 농업에 더 잘 어울릴 것이다.

한 예로, 아침잠을 깨우는 시끄러운 벨 소리 대신, 꿈속까지 전달되는 은은한 꽃향기를 내품으며 아침 기상을 알리는 벨을 만들 수도 있다. 그것도 주인의 감정이나 그날 일정을 보고 마음을 가라앉히거나 들뜨게 하는 향을 발산할 수도 있다.

주인이 출근하면 혼자서 물을 보충하고, 스스로 빛이 잘 드는 곳으로 찾아가기도 할 것이다. 주인이 없는 동안 이웃집 화분과 소통하며 어떻게 하면 내 주인이 반할만한 귀여운 짓(?)을 할지 고민도 할 것이다.

예쁜 짓을 골라하는 꽃을 보며 칭찬해주면, 더 많은 칭찬을 받기 위해 꽃과 화분은 더욱더 노력(?)할 것이다. 그러한 모든 과정이 빅데이터로 저장되어 점점더 주인의 마음을 알아주는 똑똑한 화분이 될 것이다. 이렇게 농업에도 4차 산업혁명을 접목할 수 있다.

비록 수수꽃다리는 뺏겼지만, 사물인터넷을 활용한 똑똑한 화분은 뺏기지 않기를 바란다. 식물자원도 우리의 소중한 자원이지만, 과학기술도 우리와 미래세대를 먹여살릴 결코 빼앗길 수 없는 산업이기 때문이다.

[성제훈 농촌진흥청 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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