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장칼럼] 제2 대우조선 사태 땐 국민연금 빠져야

2017-04-19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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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경제 김부원 기자= "너는 내가 라면으로 보이니?"

대우조선해양 채무 조정안을 확정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생뚱맞게 이 대사가 떠올랐다.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배우 이영애가 연인인 유지태에게 "라면이나 끓여"라고 퉁명스럽게 내뱉자, 유지태가 짜증 섞인 투로 던진 말이다. 이 영화에선 "라면 먹고 갈래요?"란 유행어도 나왔다. 라면은 두 사람이 가까워지도록 한 매개체였다. 그러나 어느 순간 라면이 애틋한 상징물이 아니라, 상대방에 대해 잘못된 기억을 만든 물건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경험, 습관 그리고 전례는 이처럼 무서운 것이다. 한두 번 또는 여러 차례 라면을 끓여주다 보면 언제부턴가 당연히 내가 라면을 끓여줘야 하는 사람으로 인식될 수도 있다. 누군가를 도와주면 처음에는 고마운 마음을 전달하겠지만, 그 일이 반복되면서 어느 순간 당연히 도와줘야 하는 것으로 잘못 인식할 수도 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가 지난 17일 열린 투자위원회에서 보유 회사채의 50%를 출자전환하고 나머지 50%의 만기를 연장하는 대우조선 채무 재조정안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그러자 대우조선은 물론이고 금융당국, 국책은행 등이 국민연금의 결정을 환영하고 감사의 마음도 전달했다. 그러나 대우조선 살리기에 동참한 국민연금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부정을 저지른 기업을 돕는 데 국민들의 자금을 사용해선 안 된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분식회계를 저질러 수많은 투자자들에게 막대한 손실을 초래한 기업을 살리자고 국민들의 노후자금을 사용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국민연금에 항의전화를 한 연금 가입자도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온라인 상에서의 반응도 호의적이지 않았다.

정부는 번번이 부실 기업을 살리기 위해 공적자금을 투입했다. 그때마다 국민들의 불만이 적지 않았다. 더군다나 국민연금의 자금은 국민 개개인이 은퇴 후 돌려받아야 할 돈이기 때문에 반발이 더욱 거셀 수밖에 없다.

대우조선 회사채를 보유한 개인투자자들도 정부의 채무 조정안과 국민연금의 선택을 우려스런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전환사채 투자자들이 모인 한 인터넷 카페에선 "사실상 산업은행의 승리, 국민연금의 패배"라거나 "사채권자 출자전환 비율을 50%가 아닌 30%로 낮췄어야 한다"라는 등의 비판이 쏟아졌다.

정부가 채무 조정안에 찬성하도록 국민연금을 지나치게 압박한다는 느낌도 들었다.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측이 "국민연금이 찬성할 것으로 보인다"면서 다소 과하게 언론플레이를 하는 모습도 보였다.

물론 국민연금 입장에선 불가피한 선택이란 견해도 많다. 최악이 아닌 차악을 선택한 셈이다. 여러 연기금과 개인투자자들을 대리해 대우조선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진행 중인 한 변호사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양자 택일의 기로에 선 국민연금 입장에선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것"이라며 "채무 조정안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손실 회복을 기대할 수도 없이 확정 손실 규모만 커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 외국계 자산운용사의 펀드매니저 역시 "어떤 선택을 하든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국민연금이 쉽지 않은 결정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그는 "다만 전례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나중에 이와 비슷한 사태가 재발될 경우 난처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맞는 말이고, 많은 사람들이 걱정하는 부분이다. 

정부와 대우조선 측도 소중한 국민의 노후 자금을 기업 살리기에 투입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만큼 신중한 모습이다. 그러나 이와 비슷한 사건이 또 발생할 경우 전례를 들어 국민연금에 다시 손을 내밀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제2의 대우조선 사태가 일어나서는 안 된다. 만에 하나 유사한 사건이 다시 발생한다 해도, 국민의 돈으로 부실 기업을 살리는 악순환은 막아야 한다. 전례를 악용하지 말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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