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간소비 추이 [자료=한국은행]
아주경제 원승일·노승길 기자 =최근 한국 경제는 ‘수출’에 웃고 ‘내수’에 울고 있는 형국이다.
수출은 5개월 연속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지만, 얼어붙은 소비와 투자(내수)는 좀처럼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실제 2분기 들어 국내 제조업 체감경기가 바닥을 치는 데다, 정체된 소득에 물가까지 치솟아 가계소비는 움츠러들고 있다.
수출은 2분기 첫 달인 4월에도 호조세를 이어갔다.
11일 관세청에 따르면 이달 1∼10일 수출액은 123억 달러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6.1% 늘었다. 이에 따라 수출 증가세가 6개월 연속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특히 한국 수출은 올해 들어 증가 폭이 더 가팔라졌다. 지난 1월 11.2%, 2월 20.2%, 3월 13.7%를 기록하는 등 3개월 연속 두 자릿수 증가세다. 3개월 연속 두 자릿수 증가율은 2011년 9월 이후 5년 6개월 만이다.
분기별 성적표 역시 나무랄 데 없다. 올해 1분기 수출액은 1324억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4.9% 늘었다. 2011년 3분기 이후 22분기 만에 최대 증가율이다. 또 2014년 4분기 이후 9분기 만에 2분기 연속 수출 증가를 기록했다.
다만 산업부 관계자는 "4월과 2분기 수출이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는 등 회복세가 공고화되고 있다"면서도 "보호무역기조 강화, 미 금리 인상 등 글로벌 금융시장 변동성 확대에 따른 하방리스크도 상존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내수는 여전히 어렵다.
2분기 들어 국내 제조업체의 체감경기가 11분기 연속 기준치를 밑돌았다. 최근 대한상공회의소가 2200여개 제조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올해 2분기 경기전망지수(BSI)는 89로 100을 넘기지 못했다.
BSI는 100 이상이면 다음 분기 경기가 이번 분기보다 좋아질 것으로 예상하는 기업이 더 많다는 의미다. 100 미만이면 반대다.
수출 증가가 내수에도 긍정적 영향을 주는 낙수효과가 사라진 지 오래고, 수출 호조세도 반도체·석유제품 등에 국한돼 경제 전반으로 확산되기 어려울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실제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2월 들어 공장이 돌아가는 것을 뜻하는 제조업 평균가동률은 전월(72.4%)보다 낮은 70.9%를 기록했다. 전반적인 생산 활동이 여전히 부진하다는 의미다.
민간 소비는 최근 들어 ‘반짝’ 증가세를 보이고 있지만, 정체된 소득에 가계 빚만 늘다 보니 반등세가 미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민간 소비를 뜻하는 소매판매액은 1년 전보다 0.5% 증가했지만 전월(4.2%)에 비해 증가폭은 줄어들었다. 이마저도 설 명절 특수 등 일시적 요인의 영향이 컸다.
지난해 가계의 월평균 실질소득도 전년 대비 0.4% 감소하는 등 한국의 실질소득 증가율은 2000년대 이후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을 밑돌고 있다.
그럼에도 기획재정부는 '4월 경제동향(그린북)'을 통해 "5개월 연속 수출이 증가해 생산·투자의 개선 흐름이 이어지고 부진했던 소비도 반등했다"고 밝혔다.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이날 반도체 수출 현장인 경기 이천 SK하이닉스 공장을 찾아 "수출과 생산, 투자가 동반 회복세를 보이는 등 1분기 경기가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개선되고 있다"고 말했다.
반도체의 경우 올해 1분기 수출 실적이 사상 최대인 202억 달러로 수출 증가와 경기 회복을 떠받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유 부총리는 이날 "반도체 수출 증가세가 다른 부문으로도 확산될 수 있도록 본격적인 경기 회복을 견인하는 역할을 해 줄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이는 지난 6일 “최근 국내 투자와 수출이 개선되고 있지만 민간소비가 여전히 부진하고, 제조업 가동률도 낮아 전반적인 경제 회복세가 더디다”는 KDI의 진단과 대조된다.
KDI 관계자는 “최근 수출 호조세와 민간소비의 일시적 반등만으로 경제 회복을 운운하기에는 때가 이르다”며 “저출산·고령화 심화, 높은 가계부채 등은 여전히 한국 경제의 성장 잠재력을 위협하고 있는 요소”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