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장칼럼] 실손보험 손해율에 ‘고객 신뢰’ 버린 보험사

2017-04-09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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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경제 전운 기자 = 실손의료보험(이하 실손보험)은 국민건강보험과 보장범위가 연계되면서 2003년 공보험의 보충형으로 도입됐다. 현재 국민 10명 중 6명꼴인 3200만여명이 실손보험에 가입했다. 사실상 제2의 국민건강보험이나 마찬가지다.

이런 실손보험을 두고 최근 말이 많다. 도수치료, MRI, 비타민 주사 등 비급여 의료비에 대한 청구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보험사들은 계속되는 손해율 때문에 과잉진료 등에 대해 지급이 힘들다는 입장이고, 일부 소비자와 관련 단체들은 보험사들이 약관대로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다며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실손보험의 손해율은 2011년 93.6%였으나 2012년 100.2%로 증가했고, 2015년에는 129.0%를 기록했다. 손해율 증가의 가장 큰 요인은 ‘비급여 의료비의 급속한 증가’다.

지난 2009년부터 2013년까지 연평균 의료비 증가율을 보면, 총 의료비는 7.7% 증가했다. 이 중 급여 의료비 증가율은 6.7%인 반면 비급여 의료비는 10.2%로 상대적으로 높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지급금을 줄이기 위한 보험사들의 꼼수도 가지각색이다. 문제는 순수 치료가 목적인 소비자한테도 ‘과잉진료’를 내세우며 지급을 꺼리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허리통증을 느껴오던 김모씨(38)는 추간판 탈출증(디스크) 진단을 받은 뒤 도수치료를 1년간 받아왔다. H보험사의 실손보험에 가입해 있던 김씨는 도수치료도 보험금 청구가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수차례에 걸쳐 보험금을 수령했다.

하지만 어느날 H사의 보상과 직원에게 전화를 받은 김씨는 당황함을 감추지 못했다. 3개월간 청구 금액 약 100만원에 대해 현장심사를 진행하게 하겠다는 전화였다. 장기간 치료 중이니 현장에 나와 심사를 하겠다는 것인데, 김씨가 당황한 이유는 보상과 직원이 늘어놓은 이야기들 때문이다.

H사 보상과 직원은 “실손보험을 놓고 요즘 말이 많다. 최근 금융감독원에서도 도수치료 등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고, 실제로 어떤 소비자들은 과잉진료·보험사기 등이 적발돼 기존에 지급받았던 보험금까지 모두 반납했다. 고객 같은 경우는 보험사기는 아니지만, 장기 치료는 사실상 치료의 개념으로 보기 힘들기 때문에 보험금 지급이 어려울 수 있다. 그리고 솔직히 말씀드리는데, 현장심사를 하게 되면 지급이 거의 힘들다고 봐야 한다”며 으름장을 놨다.

1년간 지급받았던 보험금까지 모두 반납한 사례가 있다는 이야기에 겁을 먹은 김씨는 이번까지만 보험금을 지급해줄 테니 다음번에 또 청구하면 현장심사를 나간다는 합의서에 서명하라는 제안에 응했다. 현재 김씨는 자비로 치료를 받고 있다.

보상과 직원의 말처럼 장기간 치료를 받은 것은 과잉진료라고 볼 수도 있다. 크게 아프지도 않은데도 한번에 수십만원의 치료비를 들여가며 보험금을 청구하는 소비자도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마사지 같은 근육 뭉침 해소 등을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김씨는 실제로 척추질환으로 고통을 받고 생활에서 크게 불편을 느끼자, 이를 벗어나기 위해 도수치료에 의지했다. 보험사들은 마사지는 통증완화를 위한 행위일 뿐이라고 주장하지만 김씨 입장에서는 극심한 고통을 벗어나는 치료임이 분명했다.

누구의 주장이 맞는지 갑론을박을 펼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순수한 치료 목적을 갖고 병원을 찾았고, 보험 약관대로 보험금을 청구한 소비자들이 보험사기·과잉진료자로 취급받아 보험 계약자로서 청구의 권리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비급여 항목이 치료 개념인지 아닌지를 논하는 것은 보험업계와 금융당국이 의료업계·보건복지부 등과 해야 할 일이다. 이를 통해 과잉진료인지 단순 치료인지를 구분 지을 수 있는 명확한 잣대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그러지 않고 ‘치료다, 치료가 아니다’라는 논리를 괜한 고객에게 들이대며 보험금을 주지 못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면, 순수하게 치료를 위해 병원을 찾는 소비자들에게도 피해가 갈 수 있다.
 

상품 판매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지난 2009년부터 추간판탈출증(디스크) 및 선천성 질환을 보장대상에 포함시켜놓고 이제 와서 손해율이 높아지자 꼼수를 부린다면, 앞으로 보험사를 믿고 보험에 가입할 소비자는 없을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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