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窓]배가 산으로 간다고, 산에 물을 채워야 하나

2017-04-0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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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재천 아주경제 금융부장

[임재천 아주경제 금융부장]

얼마 전 서민지원 기관 관계자를 만났다. 그는 취약계층의 채무조정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10년 넘게 1000만원을 갚지 못해 추심에 시달리는 서민들은 구제해줘야 한다는 게 골자였다. 대신 지원대상은 명확한 원칙에 입각해 잡음이 일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하지만 그는 이 같은 서민지원 업무가 생각처럼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정부의 빚 탕감 정책을 악용하는 서민들의 모럴해저드가 많아질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문득 대우조선해양이 오버랩됐다. 10년 넘게 1000만원의 빚을 갚지 못한 서민들에게는 모럴해저드라는 멍에를 씌워 지원 여부를 다투면서 정작 수십 조원을 지원하는 대우조선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쓴 소리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대우조선을 자세히 살펴보면 어떻게 이런 회사가 존재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다. 단순히 숫자로만 보면 지원이 아닌 '정리'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대우조선의 몰락은 지난 2015년이 돼서야 비로소 수면 위로 떠올랐다. 정성립 대우조선 사장은 당시 해양플랜트 쪽에서 대규모 손실이 파악됐다며 2분기 실적에 반영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 사장 발표 2개월 후인 지난 2015년 8월, 대우조선은 3조원대의 누락 손실을 회계에 반영했고 영업손실이 무려 3조339억원에 달했다. 주가는 14만원에서 6만원대으로 곤두박질쳤다.

사태가 심상치 않자 정부는 서별관회의를 긴급 소집했다. 2015년 10월에 열린 이 회의에서 금융당국은 4조2000억원을 긴급 지원키로 결정했다. 구조조정은 타이밍이 중요하다며 산업은행이 2조6000억원, 수출입은행이 1조6000억원을 부담토록 했다.

천문학적인 자금지원으로 숨통이 트였다고 판단한 것일까. 대우조선은 불과 1개월 후인 2015년 11월에 200억원에 가까운 주식을 임직원에게 상여금으로 지급했다. 분식회계 논란 중에도 자신들의 배만 채운 것이다.

결국 대우조선은 2015년 한 해에만 무려 5조5051억원이라는 영업손실을 기록했고, 이는 8년간의 영업이익을 모두 더한 금액과 맞먹었다. 대우조선을 지원한 산업은행도 17년 만에 최대 적자를 기록했다. 1조8951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6개월 후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의 부실을 대비해 자본확충 펀드를 조성할 수밖에 없는 빌미가 제공된 것이다. 혈세가 본격적으로 투입된다는 의미였다.

금융당국의 대규모 지원으로 몇 개월 동안 대우조선은 정상화가 진행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후 들려온 소식들은 모럴해저드의 끝판이었다. 회삿돈 179억원을 빼돌린 직원이 구속됐고, 2013년~2014년 2년 동안 대규모 부실을 숨긴 채 임직원 성과급 명목으로 2049억원을 지급한 사실도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분식회계를 주도한 대우조선 CFO가 구속되고, 남상태·고재호 전 대우조선 사장도 구속됐다. 결국 대우조선의 주식은 2016년 7월 거래 정지됐고, 주주들은 패닉에 빠졌다.

최초 4조2000억원을 지원하기로 결정한 지 1년 6개월 만인 지난 2016년 10월. 정부 관계자들은 다시 한자리에 모여야 했다. 대우조선이 살아날 기미는커녕 상황이 더 악화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존 서별관회의가 이번에는 '산업경쟁력 강화 관계장관회의'로 명칭만 변경됐다. 이 자리에서 정부는 '조선해운 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을 확정하고 또다시 선박발주를 지원키로 결정했다. 두 번째 지원안이 발표된 것이다.

이번에는 주주들의 희생도 요구됐다. 주식을 10대1로 감자키로 한 것이다. 산업은행은 대우조선 지분 49.7% 가운데 22%를 소각하고, 4000억원의 유상증자도 실시했다. 유상증자로 보유한 지분(27.7%)도 10대1로 감자됐다. 물론 일반 주주의 주식도 10분의1토막이 났다. 2016년 12월에는 수출입은행도 대우조선 살리기에 동참했다. 1조원대의 전환사채를 수출입은행이 매입해 준 것이다.

정부가 수십 조원을 투입하면서까지 대우조선을 살리기로 한 이유는 명확했다. 바로 '수주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다. 하지만 2017년 3월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또다시 힘든 고백을 했다. 믿고 있었던 대우조선의 수주 예측이 애초에 잘못됐다는 것이었다. 대우조선에 2조9000억원을 또다시 긴급 수혈해야만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대로 방치했다가는 59조원에 달하는 사회적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이번에도 역시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 각각 1조 4500억원씩 신규 자금을 지원해야 한다고 발표했다.

임 위원장의 말이 끝나자 자리에 있던 관계자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4조2000억원의 지원 자금이 바닥났다는 뜻이고, 기존 2조8000억원의 출자전환도 의미가 없었다는 얘기였기 때문이다.

결국 이번에 지원하는 자금을 포함하면 그동안 대우조선에 신규 지원된 자금만 7조1000억원, 출자전환 5조7000억원 등 총 12조8000억원이 밑 빠진 독으로 들어갔다. 그럼에도 회생 여부를 장담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책임을 지겠다는 사람이 없다는 뜻이다.

그동안 대우조선에 투입된 국민 혈세를 생각해보니 문득 1000만원이 없어 10년 넘게 채권추심에 시달리는 서민들이 떠올랐다. 만약 이 돈(12조8000억원)이 서민들에게 지원됐다면 어땠을까 궁금하다. 서민들의 채무 1000만원도 조정해 주지 못하는 정부가 대우조선에는 어떤 명분으로 수십 조원을 지원했는지도 이해할 수 없다. 배가 산으로 간다고 해서 산에 물을 채우는 꼴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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