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논리가 지배한 세상이 있었다. 한 나라를 움직이는 최고 권부의 입맛에 따라 예술인들은 자신도 모르게 흑백의 낙인이 찍혀 살아야했던 암흑시대가 있었다.
박영수 특별검사가 6일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박 특검은 이와 함께 1. 최순실과 그 일가의 불법적 재산형성 및 은닉 의혹 2. 세월호 침몰사고 당일 대통령의 행적 관련 의혹 등 두 가지 의혹에 대한 조사 결과도 발표했다.
박 특검은 그동안 제기됐던 대부분의 혐의 사실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번 수사 결과 발표에서 특히 주목되는 것이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이다.
검찰 수사 단계에서는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아 국회의 탄핵소추 사유에도 포함되지 않았지만 국회 소추단은 이후 헌법재판소에 참고자료로 제출한 바 있다.
박 특검은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은 “대통령비서실 주도의 권력형 범죄의 성격”이라고 규정하고 “헌법의 본질적 가치에 위배되는 중대 범죄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박 특검이 발표한 블랙리스트 사건의 개요를 길지만 그대로 인용한다. 청와대의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본 건은 노태강 전 문체부 체육국장에 대한 사직 강요 등 문체부 관련 의혹에 대해 검토하던 중, 문체부 관계자로부터 소위 ‘문화계 블랙리스트’와 관련한 진술을 청취하고 관련 자료를 제출받아 수사에 착수하게 됨.
헌법과 법률에서 규정하는 대통령 등 고위공직자들의 문화·예술 분야 책무와 권한에 착안하여, 문체부 차원을 넘어 청와대 최고위층의 지시에 따라 조직적으로 이루어진 범행이라는 점을 확인함.
시장 원리만으로는 달성하기 어려운 문화·예술의 다양성 구현을 위한 핵심 정책수단으로서, 공공재의 성격을 가지는 연간 약 2,000억 원 규모의 문예기금 등 국가 문화 보조금을 정파적 지지자에게만 공급하고, 견해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지원을 배제하여 예술의 본질적 영역인 창작의 자유를 침해하는 한편, 문화적 다양성을 잃게 함으로써 문화예술인 뿐만 아니라 문화예술 소비자인 국민들에게 피해를 입힌 사안임.
나아가 이를 달성하기 위하여 직업공무원제를 붕괴시키면서까지 문체부 공무원들을 최순실 등 비선실세와 일부 편파적 정파성향을 갖는 정치인들의 하수인으로 전락시키는 등 본건은 대통령 비서실 주도의 권력형 범죄의 성격을 지니고 있음”
수사 결과 자료에 따르면, “안보 이슈 등 정치적 입장에 따라 대립될 만한 것이 아니라, 세월호 참사와 같이 학생들이 포함된 선량한 국민의 희생을 추모하자는 의견을 밝힌 것만으로 탄압의 대상이 되었다는 점에서 ‘이념’이 이유가 아님이 명백하다”고 블랙리스트의 본질이 드러나고 있다.
이 자료에는 또 “그밖에도 대상 문예작품의 성격을 떠나 대선 때 박근혜 후보의 반대편을 지지했다는 이유로 지원을 차단하기로 결정했다는 점은 이미 기록상 여러 관련자들의 진술 및 물증에 의하여 확인되며, 이러한 움직임은 이념적인 것이 아니라, 정파적인 것”이라고 못박았다.
이 자료는 결론적으로 “결국 본건은 정부, 청와대의 입장에 이견을 표명하는 세력은 ‘반민주’ 세력으로 규정한다는 인식을 기반으로 하여, 정권에 대한 일체의 비판을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흔들려는 행위로 바라보는 시각에 기인한 것으로서 헌법의 본질적 가치에 위배되는 중대 범죄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향후 재판과정에서 또 어떤 변수가 등장할지 모르지만, 반(反) 헌법적 작태가 민주화 시대에 자행된 것이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임이 명백해졌다.
이번 수사 결과 자료에는 이른바 ‘화이트리스트’에 대한 사항이 나와 대조를 보였다. 청와대가 나서 전경련과 대기업들이 특정단체에 대한 활동비를 지원토록 했다는 것이다. 2014년부터 2016년까지 모두 68억 원이 특정 단체에 지원됐다고 한다. 특정단체가 어디인지는 이미 언론을 통해 다 드러난 적이 있다.
청와대가 만든 흑백 논리의 기준이 정파성이었다는 것은 권력이 얼마나 추악해질 수 있는 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블랙리스트 사건 하나만으로도 탄핵 사유는 충분하다고 촛불시민들은 목소리를 높일 것이다.
[박원식 부국장 겸 정치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