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곳곳을 둘러보다 한 식당에 들어설 때다. 무슬림(이슬람교도) 관광객으로 보이는 한 무리가 식당입구에서 종업원과 심각한(?) 얼굴로 얘기를 주고받았다. 얼핏 들어보니 ‘할랄음식이 있냐’는 질문이었고 해당종업원은 ‘없다’며 난처해하는 상황이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주변 식당 어디를 가도 할랄인증 마크가 새겨진 음식점을 거의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더군다나 우리사회가 할랄, 무슬림에 대한 관심을 크게 가져본 적도 없는 듯하다.
‘신이 허락한 것’이라는 뜻의 아랍어인 할랄(Halal)은 무슬림이 먹고 쓸 수 있는 제품을 통칭한다. 육류를 예로 들면 단칼에 정맥을 끊는 방식으로 도축한 양·소·닭고기가 할랄식품에 해당된다. 동물을 가장 고통없이 죽게한다는 이슬람의 신념이 깃든 특유의 이슬람식 문화인 셈이다.
최근 중국의 사드보복 조치로 유커(遊客 중국 관광객) 수가 점차 줄어들자 공교롭게 무슬림 관광객과 할랄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실제 무슬림 관광객은 올 들어 처음으로 100만명을 돌파할 것이 기대되는 만큼 ‘제2의 유커’로 부상했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방한한 무슬림 관광객은 98만명으로 2015년(77만명)보다 33% 증가했다. 이는 지난해 전체 외국인 관광객 증가율(30.3%)보다 높은 수준이다. 특히 전 국민의 90% 가량이 이슬람교도인 인도네시아 관광객은 2013년 18만9189명에서 지난해 20만8329명으로 10.1%나 증가했다.
문제는 이처럼 무슬림 관광객이 증가 추세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국 내에선 할랄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종교적으로 독실한 무슬림들은 해외여행 중에도 하루에 5번 기도시간을 가져야 하고 종교적으로 인정된 할랄음식만 섭취하는 경향이 짙다.
하지만 국내에 이런 무슬림들의 식사와 종교를 만족시키는 곳은 전무하다. 실제 할랄 전문가들 사이에선 현재 전국적으로 무슬림 관광객들이 이용할 수 있는 할랄레스토랑은 고작 140여곳에 불과하다고 토로한다. 일부에선 공식적인 할랄인증을 거친 음식점은 40곳도 채 안된다는 뒷 얘기도 나온다.
이렇다보니 서울의 이태원이나 경기도 남이섬 등 식사와 기도 시설을 갖춘 일부 관광지를 중심으로 무슬림 관광객들이 몰려다니는 게 현실이다. 오죽했으면 최근 한국관광공사가 무슬림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한 만족도 조사에서도 “다시 찾고 싶다”는 의견이 72.4%나 나왔지만 음식 만족도에서는 70점이하(3.46/5.00점)로 낮았다.
할랄푸드는 이미 전세계적으로 유망산업 중 하나로 떠올랐다. 문화체육관광부 조사에 의하면 세계 이슬람 식품시장 규모는 2016년 기준 1조880억달러(한화 약 1100조원)에 이른다. 이는 중국, 미국, 일본 식품시장 규모보다 더 큰 수치다.
할랄푸드를 주식으로 하는 이슬람 인구만 해도 2010년 16억으로 세계인구의 4분의 1이나 된다. 오는 2020년에는 19억명, 2050년에는 세계인구의 3분의 1까지 무슬림이 장악할 것이란 예측도 있다.
한국사회와 우리기업들, 특히 관광업계가 무슬림 관광객을 위한 할랄 인프라 구축에 더 적극성을 띠어야 하는 이유다.
이미 해외기업들은 오래전부터 할랄푸드시장에 귀를 기울였다. 글로벌 식품기업 네슬레는 전 세계 85개 공장에서 150여가지 할랄푸드를 생산하고 있고 코카콜라, 맥도날드 등 할랄과는 다소 거리가 멀어 보이는 식품기업들 역시 할랄 기준에 부합하는 제품을 만들고 있다.
물론 우리기업도 농심이 할랄인증 제품 전용시설을 갖춰 ‘할랄 신라면’을 생산하는가 하면, 교촌치킨이 미국에서 소스류 3종을 할랄 인증받는 등의 성과를 내긴 했다. 하지만 일부 식품기업의 노력일 뿐 국가차원의 할랄 인프라 구축 노력은 그리 크지 않다.
동남아시아에서의 한류열기를 타고 지난해 100만명에 가까운 무슬림들이 한국을 찾았다. 이제라도 그들이 마음 편하게 먹고, 기도하고, 종교적 의식을 치를 수 있는 '무슬림 관광인프라' 확대에 우리사회가 다같이 나서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