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창] 재계 '공포 마케팅' 없이 상법개정 반대해라

2017-02-1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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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경제 조준영 기자= 공포 마케팅은 잘 먹힌다. 이탈리아 사상가인 니콜로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 이렇게 썼다. '공포는 사랑보다 안전하다. 사람은 지나치게 이해에 얽매이고, 불리하면 사랑을 저버린다. 그러나 공포는 벌에 대한 두려움으로 유지되고, 언제나 효과적이다.'

국회가 경제 민주화 법안으로 불리는 상법 개정안을 논의하고 있다. 양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이 법안 발의를 주도했다. 큰 줄기는 다섯 개다. 다중대표 소송제 도입과 대표소송제 개선, 집중투표제 강화, 일반이사ㆍ감사위원 분리선출, 전자투표제 의무화가 개정안에 담겼다. 이름이 제각각이고 어렵다. 하지만 취지는 하나다. 재벌을 견제하기 위해 소액주주 참여를 늘리자는 것이다.

재벌은 반기지 않는다. 공포 마케팅이 어김없이 등장한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얼마 전 이틀에 걸쳐 연찬회를 열었다. "정치권이 국민을 가난하게 만드는 법만 내놓고 있다. 기업을 그렇게 때리면 다 죽는다." 연찬회에서 나온 얘기다.

더 무서워야 한다. 보수 성향 단체인 자유경제원은 경제 민주화 법안에 가면을 쓴 파시즘이라는 딱지를 붙였다. 법안 알맹이가 아돌프 히틀러가 만든 나치스(국가사회주의독일노동자당) 강령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강령을 보면 '대기업 이익 분배를 요구한다'거나 '대규모 소매점은 공유화한다'는 조항이 있다. 자유경제원은 경제 민주화 법안도 이런 포퓰리즘에 기댄 것이라 말한다.

너무 나갔다. 자유경제원은 중립적이기 어려운 단체다. 박근혜ㆍ최순실 게이트로 해체 위기에 놓인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돈을 대 만든 곳이다. 전경련은 20년 전인 1997년 자유경제원에 126억원을 출연했다. 지금도 이승철 전경련 부회장이 자유경제원 비상임 이사를 맡고 있다. 한마디로 재벌 편만 들 수밖에 없는 곳이 자유경제원이다.

물론 경총이 걱정하는 기업을 다 죽이는 일은 없어야 한다. 상법 개정안에 담긴 집중투표제만 보자. 재계는 1인 1표 원칙에 어긋난다고 말한다. 말 그대로 집중투표제는 주총에서 선임하는 이사 수만큼 의결권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이사를 3명 뽑는다면 1주에 3표가 주어진다. 이를 후보 1명에 모두 몰아주고, 나머지 2명에 대해서는 기권할 수 있다.

결국 집중투표제는 지분 비율대로 이사회를 만든다. 큰 선거에서도 번번이 논란거리인 사표를 없애준다는 얘기다. 예를 들자. 주식을 총 10주 발행한 A사가 있다. B와 C는 A사 주식을 각각 7주와 3주씩 가지고 있다. 이사 후보가 주총에 3명 나왔다. 이런 상황에서 1인 1표를 적용하면 후보마다 7대 3이다. C가 원하는 이사는 뽑힐 수 없다. 반면 집중투표제는 가능하다. C는 1명에게만 총 9표를 던질 수 있다. B가 모두 21표를 가지고 있지만, 후보 3명에 각각 10표씩 줄 수는 없다.

그럼 재계가 우려하는 것처럼 C가 뽑은 이사 1명은 기업을 죽일까. 있을 수 없는 일이다. C도 주주다. 이사회에 참여해 기업가치를 떨어뜨리는 주장을 할 이유가 없다. 회사와 C가 바라는(바라야 하는) 이익은 똑같다는 얘기다. 되레 줄곧 말썽을 일으킨 쪽은 회사일지도 모른다. 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사장은 네 달 전 국감에 나와 말했다. "재벌 총수는 기업가치보다 세습에만 관심 있다."

재계는 그래도 죽겠다고 얘기한다. 삼성물산ㆍ제일모직 합병에 반대했던 헤지펀드 엘리엇을 번번이 이유로 꼽는다. 이런 헤지펀드가 먹튀라도 한다면 경제에 큰 손실이라고 경고한다. 이사회에 참여해 기업이 재투자하기 어려울 만큼 과도한 배당을 챙기고, 주식을 팔아치울 수 있다는 것이다.

반대 주장도 있다. 헤지펀드 소버린은 2003년 SK 주식을 15% 가까이 확보하고, 경영진 퇴진을 요구했다. 하지만 소버린은 2005년 주총에서 졌다. SK그룹은 2007년 지주체제를 도입했다. 이런 과정에서 주가가 치솟았고, 경영권은 더 단단해졌다.

경제 민주화인지, 기업 옥죄기인지 아직 단정할 수 없다. 그렇더라도 상법 개정안이 2월 국회에서 꼭 처리돼야 한다는 얘기가 많다. 시간이 흐를수록 모든 이슈가 대선에 빨려들어갈 것이다. 하지만 쫓길 이유는 없다. 대통령 탄핵 국면이 길어지면서 의견 수렴에 소홀했을 수 있다. 법은 다음 정부에서 고쳐도 된다. 물론 공포 마케팅은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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