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윤세미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서명한 반이민 행정명령의 부활을 거부했다. 결국 최종 판단이 대법원에서 결정될 가능성이 높은 가운데 연방 대법원에서 대법관 과반이 트럼프 행정부의 손을 들어주지 않을 경우 반이민 행정명령은 법적 효력을 잃게 된다. 취임 20일 만에 트럼프의 정책 추진은 급제동이 걸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이라크, 시리아, 이란, 수단, 리비아, 소말리아, 예멘 등 '테러위험' 이슬람권 7개국 국민의 비자발급과 입국을 90일간 금지하고 모든 난민 프로그램을 120일간 중단한다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행정명령을 둘러싼 법정공방도 시작됐다. 워싱턴 주는 행정명령의 집행 금지 가처분을 신청했고 지난 3일 시애틀 연방지법의 제임스 로바트 판사는 워싱턴 주의 요구를 받아들여 미국 전역에서 무슬림 입국금지를 잠정 중단하라는 결정을 내렸다.
트럼프는 즉각 반발했고 법무부는 행정부를 대표하여 시애틀 연방지법의 결정에 항소했다. 트럼프는 공개적으로 로바트 판사를 “소위 판사”라고 비하하고 사법부가 “정치적”이라고 공격했다.
그러나 9일 연방 항소법원 3명의 판사는 만장일치로 이슬람권 7개국 국적자들의 입국이 계속되어야 한다고 판단해 또다시 트럼프의 반이민 행정명령에 제동을 걸었다.
재판부는 국가안보라는 공익과 자유 이동 간의 충돌이 있다는 점을 인정하지만 연방정부가 이 행정명령이 부분적으로만 이행될지 충분히 소명하지 못했다며 하급법원(시애틀 지방법원)의 결정을 유지한다고 설명했다.
트럼프는 즉각 반발하며 대법원 상소 의지를 나타냈다. 트럼프는 항소법원의 판결이 나오자 즉시 트위터로 "법정에서 보자. 우리나라의 안보가 위험에 처했다!"라고 적었다. 아울러 그는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것은 정치적 판결이다. 법원에서 만나길 기대한다”며 상소 의지를 드러내고 “쉽게 이길 수 있을 것 같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 최종 결정은 대법원 손에
결국 반이민 행정명령을 둘러싼 최종 결정은 대법원 손에 넘어갈 전망이다. 지금 상황으로서는 반이민 행정명령 반대측에 다소 유리한 상황이지만 이를 장담하기는 어렵다.
현재 대법관은 총 8명으로 보수와 진보가 4:4로 팽팽하게 균형을 맞추고 있다. 1석은 공석인데 트럼프가 지명한 보수 성향의 닐 고서치 판사가 상원에서 인준을 통과할 경우 대법원은 보수 우위 구도로 회귀하게 된다. 그러나 민주당의 강력한 반발로 쉽게 인준이 난항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대로 대법관 8명이 판결을 진행해 4:4의 결과가 나올 경우에는 하급법원의 판단이 준용되어 무슬림 7개국 국적자의 입국은 계속 허용된다. 사실상 트럼프 행정명령이 법적 효력을 잃게 되는 것으로 반이민 행정명령 반대측에 유리한 상황이다.
그러나 판사들이 자신의 이데올로기를 그대로 고수할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워싱턴포스트(WP)는 대법관들이 종종 이민과 국가 안보 문제에 있어서는 대통령의 의견을 따르곤 했다고 밝혀 무슬림 입국금지 처분의 부활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했다.
한편 고서치 판사의 인준이 신속하게 처리되어 행정명령 부활이 결정될 수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핵옵션(인준을 위한 상원 의결 정족수를 현행 60명에서 51명으로 줄이는 것)’을 내세우면서 고서치의 인준을 독촉하고 있다.
다만 고서치 판사는 트럼프의 거듭되는 판사 공격 발언이 사법부의 사기를 꺾는다고 비판하면서 행정부와 선을 긋는 모습을 보였다.
지난해 공화당 경선에서 트럼프와 맞불었던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은 "반이민 행정명령은 난민심사 과정을 개선할 수 있도록 4개월 동안 입국을 중단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찬성 의사를 밝히면서도 대법원이 하급법원과 같은 결론, 즉 반이민 행정명령의 중단을 유지하라는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