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기획재정부]유일호 부총리 겸 기재부장관이 지난달 20일 설 명절을 앞두고, 기획재정부와 자매결연 시장인 공주산성시장을 방문, 물가점검 등 상인들의 애로사항을 청취했다.
물가만 봐도 스태그플레이션 조짐이 곳곳에서 감지된다. 경제지표상으로는 1%대 물가를 보이고 있지만, 실제 체감경기는 바닥을 치는 상황이다. 지난해 말부터 각종 생필품이 인상됐고, 서민 지갑은 좀처럼 열리지 않으면서 물가상승을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현 단계가 스태그플레이션까지는 아니라면서도, 서민물가 상승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다.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이런 흐름을 의식한 듯 8일 재래시장 현장방문 등을 통해 분위기 파악에 나섰다.
유 부총리는 서울 수유시장 상인과 만난 자리에서 “민생경제 전반에 회복의 온기가 돌 수 있도록 민생안정 대책을 이달 중 발표하겠다”며 “소비 등 내수경기를 활성화하는 한편 가계소득을 확충하고, 서민생활과 직결되는 생계비 부담을 경감하기 위한 체감도 높은 과제를 포함하겠다”고 언급했다.
밥상물가는 이미 한계치를 넘어섰다. 생필품뿐 아니라 대표 서민품목으로 꼽히는 맥주, 라면, 빵 등 공산품 물가 상승이 무서운 기세로 소비자를 압박하고 있다.
정부가 우물쭈물하는 사이, 공식지표와 체감지표 격차는 12배 차이로 벌어졌다. 주요 경제전문가들이 지난해까지 스태그플레이션은 ‘시기상조’라는 분석에서 ‘우려된다’로 급격히 선회한 것도 이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지난 2일 정세균 의장실에서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실제 우리나라 국민이 느끼는 체감경기와 공식적인 경제지표 사이의 격차가 점차 늘고 있다. 이들 두 지표간 12배 차이가 난다는 결과도 나왔다.
지난해 소비자물가가 1년 전과 견줘 1.0% 상승했지만, 체감물가 상승률은 공식지표의 9배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공식 실업률은 4%인 반면 체감 실업률은 11%가 넘었다.
두 지표 사이에 격차가 커지다보니 경제적 삶의 어려움을 계량화한 경제고통지수는 공식지표보다 12배 큰 것으로 조사됐다.
경제고통지수는 물가상승률과 실업률의 합에서 국민소득 증가율을 제한 것이다. 체감 경제고통지수가 공식 경제고통지수보다 큰 이유는 물가상승률 및 실업률의 체감 지표가 공식지표보다 크고, 체감 경제성장률은 공식지표보다 작기 때문이다.
체감 지표만 보면 경제성장률은 마이너스이고, 물가는 상승하는 스태그플레이션 상태인 셈이다. 체감 경제고통이 크면 국민 삶의 만족도는 낮아지고, 소비 심리가 위축돼 경제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정 의장실 관계자는 “청년·고령층 체감 실업률을 낮추기 위한 일자리 대책이 시급하다”며 “체감물가 안정을 위해 정부 비축분을 통해 식료품 가격을 안정화하고, 중장기적으로 유통구조를 효율화해 농산물 가격상승 폭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스태그플레이션이 불황의 시작이라는 견해도 있다. 미국의 경우 1970년대 경기불황의 전조가 스태그플레이션에서 왔다. 당시 미국의 1974~1975년 소비자 물가는 12% 상승했다. 1979년에는 소비자물가가 13%나 상승했다.
상품 가격이 상승하며 소비자가 지갑을 열지 않으니 재고가 급증하고, 생산은 위축되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결국 공장은 조업을 중단하거나 문을 닫았다. 경기가 침체되고, 실업자의 수가 급격히 늘어났다.
미국은 스태그플레이션과 함께 1973년 5% 수준이던 실업률이 1975년 중반에 9%로 급증했다. 대공황 이후 최악의 실업률이다. 1975년 3월 산업생산지수는 13%나 하락했다. 격심한 인플레이션의 와중에서 경기가 침체된 것이다.
전문가들은 스태그플레이션에서 벗어나려면 단기 처방보다 장기적 관점에서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조언한다. 시장에 자금지원도 중요하지만 기술혁신 등으로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견해도 나온다.
김철환 아주대 경제학과 교수는 “스태그플레이션에서 벗어나기 위한 가장 좋은 길은 기술혁신”이라며 “기술혁신에 따른 생산성 증대는 상품 생산원가를 감소시켜 상품가격 인하를 가져온다”고 설명했다.
이어 “가격이 하락하면 수요가 증대한다. 상품재고가 줄고, 공장이 다시 돌아가면서 일자리가 늘어난다”며 “1990년대 후반 미국의 신경제는 기술혁신으로 스태그플레이션을 벗어난 사례”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