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현장] 식인종의 사회

2017-02-06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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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윤주혜 기자 ]

아주경제 윤주혜 기자 = 이제 갓 서른을 넘긴 친구의 학자금 대출은 무려 2000만원이 넘는다. 서울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그가 처음 맞닥뜨린 건 수천만 원에 이르는 빚이었다.

좋은 직장을 구하기 위해 취업 준비를 할 여유 따위는 애초에 없었다. 중소기업에서 첫발을 내디딘 그는 시간을 쪼개 이직 준비를 했고, 최근 연봉 3000만원 중반을 주는 기업으로 옮겼다. 친구는 “올해는 죽어라 학자금 대출을 갚을 거야”라고 말했다. 여자 친구에게는 미안하지만 결혼에 대한 꿈을 접은 지 오래라고 통보도 했다.

예전에 읽었던 책의 내용 중에 '잡아먹기보다 노예로 부리는 게 낫다'라는 구절이 생각났다. 인류학자 마빈 해리스는 식인 풍습이 사라진 원인에 대한 답을 이렇게 풀어냈다. 식인종들은 원래 포로를 먹었지만 먹기보다는 노예로 삼는 게 훨씬 더 효율적이라는 사실을 깨닫고부터 식인 풍습이 점차 사라졌다는 설명이다.

친구의 말을 듣고 마빈 해리스의 말이 갑자기 떠오른 이유는 잘 모르겠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가 식인종의 사회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잡아먹거나 아니면 노예로 부리는 비정한 모습이.

신용정보원에 따르면 25세 청년 10명 중 4명꼴(37%)로 부채를 안고 있다. 1인당 평균 부채액은 1900여만원이다. 정상 상환 중이던 대출자가 연체에 빠지는 비율이 가장 높은 나이는 25세(2.3%)다. 전체 연령대 평균 연체 발생률(1.2%)의 두 배다.

배호중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전문 연구원이 발표한 '학자금 대출과 노동시장 이행 성과, 4년제 대학 졸업 여학생을 중심으로'에 따르면 학자금 대출 경험이 있는 여대생들은 졸업 후 첫 직장을 빨리 구하기는 했지만 일자리의 질은 그렇지 않은 학생들보다 확연히 낮았다.

다른 조건이 일정하다면 학자금 대출 경험이 있는 대학생들의 첫 직장 임금 수준은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12%나 적었다. 또 대출 받은 학기가 한 학기 증가할수록 첫 직장의 임금 수준도 평균적으로 3.4%가량 줄었다.

사회초년생. 이 말에서 미래를 향한 희망과 포부가 아닌 무거운 짐이 느껴지는 건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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