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창] 국감서 뺨 맞고 운용사에 눈 흘긴 금감원

2017-01-3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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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경제 조준영 기자= 금융감독원이 외국환거래법을 몰랐다. 국감에서 혼쭐이 났다. 그런데 금감원은 화풀이를 자산운용업계에 했다.

외국환거래법은 해외펀드를 운용하는 자산운용사도 규제한다. 자산운용사는 기획재정부 등록을 거쳐 외국환 취급 자격을 얻어야 해외펀드를 굴릴 수 있다. 이렇게 법이 바뀐 지 10년도 넘었다. 하지만 기재부나 금융위원회, 금감원은 자산운용사에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 자산운용사 20여곳이 뒤늦게 법을 어긴 사실을 알았다. 줄곧 법을 지키고 있다고 생각했으니 억울할 수밖에 없다.

"내가 문제를 제기하기 전까지 기재부, 금융위는 물론 금감원조차 몰랐다." 박용진 정무위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세 달 전 금감원 국감에서 이렇게 말했다. 진웅섭 금감원장은 "안내와 지도를 강화하겠다"고 답했다. 그런데 새해 들어 말이 바뀌었다. 금감원은 안내하고, 지도하는 대신 자산운용사 수십 곳을 무더기로 검찰에 고발했다. 금감원 외환감독국 관계자에게 책임전가 아니냐고 물었다. 그는 "법이 외국환거래 비밀을 보장하도록 해 어떤 얘기도 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잘 지키는지 파악조차 안 됐던 법 뒤로 숨은 것이다.

한 자산운용사 대표인 A씨는 쌓인 불만을 얘기했다. "한두 곳이 어겼으면, 욕을 먹어도 안 억울하다. 수십 곳이 뒤통수 맞듯이 위법 사실을 알게 됐다면, 당국이 1차적으로 문제 아니냐." 그는 "해외펀드를 만드느라 금감원 사람을 자주 봤다. 기재부에 등록해야 한다는 얘기는 한 번도 못 들었다"고 말했다.

고발 조치로 자산운용사가 안아야 할 짐은 무겁다. 한동안 새 일감을 못 만들지도 모른다. A씨는 초조하다. "무혐의로 결론이 나기를 바라지만, 기소유예만 받아도 좋겠다." 약식으로라도 기소가 이뤄지면 많든 적든 벌금을 낼 수 있어서다. 자산운용사는 벌금만 물어도 당국에서 새로운 영업을 막는다. 그는 "금감원이 고발한 자산운용사 대부분이 재간접펀드만 운용해 온 것도 논란거리"라고 지적했다. 재간접펀드는 말그대로 다른 금융사 상품에 투자만 할 뿐 직접 외환을 취급하지 않는다. 수십 곳이 고발을 당했지만, 피해자는 단 한 명도 없는 것으로 알려진 이유다.

이번 고발은 박용진 의원 쪽에서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면피하느라 급급해 내린 과도한 조치라는 것이다. 박용진 의원실 관계자는 "나도 자산운용사에서 3년 일했고, 얼마나 영세한지 잘 안다"며 "국감 때도 자산운용사에 대해서는 선처를 부탁했다"고 말했다. 자산운용사가 무더기로 고발을 당해야 할 사안이라면, 당국도 장기간에 걸쳐 직무에 태만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박용진 의원 측은 당사자 문책뿐 아니라 내부 감사, 나아가서 감사원 감사까지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참에 외국환거래법을 고치자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무더기 고발 사태를 부른 재간접펀드에는 법을 적용하지 말자는 것이다. 기재부는 아직 난색을 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용진 의원실 관계자는 "직접 운용하는 해외펀드는 금융업권간 형평성 차원에서 빼기 어렵지만, 재간접펀드는 들어가야 할 이유가 없다"며 "연내 법 개정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애초 문제는 기재부와 금융위에서 국제금융과 국내금융을 각각 나눠 맡는 바람에 생긴 것이다. 자산운용사는 해외펀드 하나 때문에 기재부와 금감원에 따로따로 등록하고, 신고해야 한다. 이러니 기재부와 금감원이 서로 책임을 미뤘고, 현황 파악이 제대로 안 됐다. 박용진 의원실 측은 해법도 소개했다. 자산운용사가 외환 취급을 위해 기재부에 등록한다. 기재부는 다시 금감원 외환감독국에 통보해준다. 외환감독국은 같은 금감원에 있는 자산운용감독국에 알린다. 자산운용사는 자산운용감독국에 해외펀드를 신고할 때 기재부 등록 사본을 첨부한다. 끝이다. 결국 당국이 조금만 신경을 썼어도 국감에 불려나와 혼날 일은 없었다는 얘기다.

자산운용사 수십 곳이 검찰만 바라보고 있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 흘기는 바람에 자산운용업계가 멍들어서는 안 된다. 그나마 금융투자협회가 수십 개 자산운용사를 대신해 나서주고 있는 점은 다행스럽다. 금투협은 법무법인 세종을 법무대리인으로 내세웠다. 긍정적인 결과를 기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제 당국도 면피할 생각은 버려야 한다. 검찰 조사에서 만큼은 업계에 책임을 떠넘겨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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