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개봉한 영화 ‘더 킹’(감독 한재림·제작 우주필름·제공 배급 NEW)은 무소불위 권력을 쥐고 폼나게 살고 싶었던 태수(조인성 분)가 대한민국을 입맛대로 좌지우지하는 권력의 설계자 한강식(정우성 분)을 만나 세상의 왕으로 올라서기 위해 펼치는 이야기.
이번 작품에서 정우성은 대한민국을 주름잡는 권력 설계자이자 권력의 정점인 검사장 후보 한강식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품위 있고 우아한 체하는 모습, 사리사욕에 가득 찬 그 자리에 맞지 않는 남자를 망가뜨리기 위해 노력했어요. 그를 철저하게 망가트리기 위해 군데군데 가벼운 한강식의 모습을 표현했죠. 한강식의 접근법은 이전 캐릭터들과는 달랐어요. 애정보다는 분노로 다가갔죠. 그를 마음껏 비웃었으면 좋겠고, 그의 마지막을 보면서 짜릿함과 통쾌함을 느꼈으면 했어요.”
20대 초반에 사시 패스에 성공하고 노태우 정권 시절 ‘범죄와의 전쟁’을 통해 목포를 평정한 남자. 대한민국을 쥐락펴락하는 실세 중의 실제 한강식에 대한 정우성의 접근법은 실로 놀라웠다. 그의 외피 격인 정우성은 캐릭터에 대한 애정보다는 분노와 마뜩잖음으로 그림을 그려나갔고 캐릭터와의 간극을 좁히기보다는 객관적으로 관찰하고자 했다.
“한강식이라는 인물이 이해는 되지만 그냥 싫었어요. 하하하. 그러므로 더 객관화되어서 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분노로서 다가가려고 했던 건, 제가 그를 보고 분노했기 때문이에요.”
그가 철저히 무너지는 과정을 그리기 위해서는 위압적인 한강식을 완성하는 것이 중요했다. 높을수록 더욱 추락하는 속도, 과정이 처절하기 때문. 이는 한강식의 첫 등장과도 관계가 깊었다.
“첫 등장신에서 한강식이 전하는 일장연설 때문에 제가 한강식을 선택했다고 봐도 무방해요. ‘아, 이 자식을 무너트려야겠구나’ 싶었어요.”
압도적인 첫 등장 이후 한강식은 철저하게 우스운 면모들을 보인다. 자신에게 심취한 한강식의 모습은 가까이서 보았을 땐 화려하지만, 멀리서는 초라하고 민망하기 마련. 특히 펜트하우스에서 춤을 추고 노래하는 장면이 그랬다. 정우성은 이에 대해 “한강식의 자아도취 신”이라 평가했다.
“한강식의 춤은 자아도취 그 자체죠. 자기만족이 큰 사람이니까 모든 액션에 주저 없는 자신감이 그려지길 바랐어요. 그래서 더 열심히 연습하기도 했었죠. 하하하. 인간의 무궁무진한 점은 ‘연습하면 된다는 것’ 아니겠어요? 춤추는 장면 외에도 밥 먹는 장면에서 한강식의 초라함이 드러나길 바랐어요. 식사라는 건 나누고 공감하고 교류하는 건데 그는 늘 혼자 밥을 먹으니까. 자각하지 못하는 초라함이 드러난다고 생각했어요.”
누군가 영화 ‘더 킹’을 데칼코마니라고 표현했다. 마치 현실을 찍어낸 듯, 군데군데 펼쳐지는 상황들은 어떤 인물들을 연상시키거나, 어떤 상황들을 떠올리게 한다. 지난 30년간의 현대사를 담아낸 ‘더 킹’이지만, 이렇게까지 현실적일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다들 참고한 캐릭터가 있는지 묻곤 해요. 다들 어떤 인물을 염두 해서 물어보는 건데 실상 한강식의 모델은 없어요. 정권이 거듭되면서 우리가 보는 불합리한 실세들의 행동들, 즉 검찰 조직이나 권력자들을 전체적으로 그려내고자 했어요. 어떤 분노나 불합리함의 표상이 한강식이라고 생각했어요.”
아무리 “모델이 없다”, “염두에 두지 않았다”고 했지만, 개봉 시점에 관객들은 한강식을 두고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을 떠올렸다. 그들이 저질러온 일련의 행동들은 한강식과 데칼코마니를 이뤘기 때문이다.
“시국이 이렇게 되다 보니까 그런 거겠죠?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나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을 모델로 한 게 아니라 상황을 빗대려던 거겠죠. 예컨대 故 노무현 대통령 탄핵 당시 커피를 마시던 검사의 모습 같은 거요. 하지만 상황을 묘사하려고 한 거지 그들을 모델로 한 건 아니에요. 그런 부정 검사들을 통합해서 한 인물로 그려내자고 한 거죠.”
거침없이 쏟아내는 기득권 세력에 대한 비판들. 언젠가부터 이런 비판이나, 상식에 대한 이야기들은 쉬쉬해야 할 일로 치부됐다. 배우 정우성 역시 마찬가지였다. 최근 그는 박근혜 정부 문화계 블랙리스트에까지 이름을 올렸고 소신 발언에 대한 제재를 받곤 했다.
“제가 말하는 것들이 정치적 발언이라고는 생각지 않아요. 제가 ‘진보적인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하는 게 아니니까요. 다만 상식선에서 느끼는 불합리함, 휘둘림 같은 것들을 이야기하는 거죠. 그런 말들을 평가하는 것이 잘못된 세상이라고 봐요. 저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당연한 것들을 말하는 건데 그것에 정치색을 씌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봐요.”
본질에 대한 것들. 정우성은 ‘정치색’이 아니라, ‘상식’에 관한 것들을 말하고 싶다고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쌓여가는 상식들을 후배들과도 나누고 싶다면서. 그는 “외면이 아닌 내면”에 대한 것들을 이야기하곤 했다.
“잘생긴 건 사실 잠깐이에요. 내면에 대한 가치나 생각, 확립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향기는 얼굴에서 풍기는 게 아니라 내면에서 나오는 거니까요. 나라는 사람을 발견하기 위해 의심하고, 집중하고 찾아 나가는 것들을 중점적으로 하고 있어요. 적립된 생각들을 잘 표현하는 것도 중요하고요. 그랬을 때 온전한 아름다움으로서는 거니까요.”
그는 후배들 역시 “외모에 치중하기보다는 내면을 닦아나가기를” 바랐다. 그것이 “진정한 매력”이라고 덧붙이면서. 그래서, 정우성에게 물었다. 현장에서 바라본 조인성과 류준열은 정우성에게 어떤 후배였느냐고.
“인성이는 소속사 후배였고 멀리서 바라보는 관계였었죠. 친분은 따로 없었어요. 이후에 작품으로 만나게 되었고 조인성스러움, 그의 해석과 표현에 감탄했죠. 또 주인공으로서 작품에 어떻게 임해야 하는지 노력하고 행동으로 보여주려는 걸 보게 되어 기뻤어요. 멋진 후배로 성장했죠. 준열이는 부딪치는 신은 적었지만 자기의 개성을 표현하려는 방법을 아는 것처럼 보였어요. 앞으로가 기대되는 친구죠.”
어른다운 단단함. 정우성이 쌓아온 시간은 현재의 그를 완성해냈다. 2017년 역시 단단한 내실과 필모그래피를 쌓아나갈 예정.
“다음 작품은 ‘강철비’가 될 것 같아요. 늘 규정짓지 않고 시나리오를 만나려고 하고 있어요. 시대 정서와 맞닿았는지, 너무 자기감정에 치우친 것은 아닌지 냉정하게 생각하고 작품을 고르려고 해요. 여러 가지를 염두에 두고 그 안에서 밸런스를 맞추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