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시장 등 해외진출 전략이 모두 빠졌다는 것도 정부가 내년에 정책방향을 얼마나 소극적으로 잡았는지 가늠할 수 있는 부분이다. 뒤늦은 4차 산업혁명 육성도 현재 정책방향으로 봐서는 구체적 윤곽이 나오지 않았다.
그나마 눈에 띄는 부분은 1분기에 20조원 규모의 재정을 집행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20조원의 사용처를 분명하게 하지 않아 실효성은 지켜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특히 조기 대선 등 정치적 이슈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정부의 정책집행이 계획대로 이뤄질지 미지수다. 박근혜 정부 국정과제를 마무리하는 수순이지만, 한국경제가 처한 현실이 녹록치 않아 안정적으로 정책을 펼치는데 버거운 모습이다.
정부는 내년 경제전망을 2.6%로 잡았다. 한국경제연구원의 2.4%보다 0.2%p 높다. 그간 정부의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0.3~0.5%p 갭을 보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내년 한국경제는 2%대 초반에 머물 가능성이 높아졌다.
문제는 정부조차 내년 경제성장률 방어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3년 연속 2%대 성장이라는 최악의 성적표를 받을 공산이 커졌다. 한국경제가 2%대 이하 성장률을 기록한 것은 2008~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가 전부다.
연초에 터질 변수도 쉬운 부분이 없다. 대외적으로는 미국 금리인상과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보호무역주의가 관건이다. 중국이 내수시장 중심의 정책으로 선회한 것도 걸림돌로 꼽힌다.
내부적으로는 10월부터 시작된 기업구조조정 한파로 인해 기업의 사기가 바닥을 치고 있다. 여기에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며 기업들의 투자심리는 잔뜩 움츠러들었다.
박근혜 정부 들어 심각해지는 고용시장은 내년이 최대 고비다. 최근 감소로 돌아선 자영업자가 3분기 들어 5만2000명 증가로 반전하면서 고용의 질이 오히려 나빠졌다. 청탁금지법은 당장 설 대목을 앞두고 내수시장 위축을 가져올 ‘태풍의 눈’으로 자리 잡았다.
정부 관계자는 “내수 회복세가 둔화하면서 경기 회복 모멘텀이 약화할 가능성이 있다”며 “유가상승과 가계부채 상환부담, 구조조정 영향, 부동산 활력 약화 등이 중첩되며 성장 제약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틈만 나면 추경…시한부 정부의 한계
정부의 내년 경제정책이 소극적으로 일관된 것은 중장기 정책을 펼칠만한 여력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상반기에 성과를 내려다보니 조급한 마음이 정책에 고스란히 담겼다.
결국 1분기 초반 정부가 구상한 계획이 어그러지면 다시 추가경정예산(추경) 카드를 꺼내들며 단기처방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일단 정부는 내년 경제정책방향에서 추경 카드를 아꼈다. 다만 상황에 따라 추경도 검토할 수 있다며 가능성의 여지를 남겼다. 아직 올해 편성한 추경 집행이 끝나지 않아서 재원 사용처 등이 불명확하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전문가들은 정책 마무리도 좋지만 획기적인 대책이 실종됐다며 6개월 시한부 정부의 한계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길어야 6개월 남은 정책이다. 내년 하반기부터 새 정권이 시작된다고 가정하면 다음 경제팀을 고려한 정책은 딱히 눈에 띄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4차 산업혁명은 내년 경제정책 키워드 중 하나다. 민관합동으로 구성된 4차 산업혁명 전략위원회도 신설된다. 본격적인 4차 혁명산업 추진에 고삐를 당기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마무리되지 못한 구조개혁도 차기 정부의 몫으로 넘어갈 공산이 커졌다. 신혼 한쌍당 최대 100만원을 지급하는 혼인세액공제 도입, 출산율을 끌어올리기 위한 각종 방안, 노인연령기준 재정립 등 은 한국사회 변화를 의식한 정책이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부문장은 “4차 산업혁명의 실효성을 높이려면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명확해야 한다”며 “내년 중 정부가 바뀔 가능성이 있는 만큼 차기 정부와 정책적 연속성이 중요하다. 자칫 정책 초기단계에서 중단돼 예산을 낭비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