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최신형 기자 =삶의 스토리가 있다. 시대가 요구한 과제를 외면하지 않았다. 서울대 운동권 시절, 김대중(DJ) 내란음모사건 등으로 제적당했다. ‘빈민의 성자’ 고(故) 제정구 전 의원을 정치적 스승으로 모셨다. 지난 1990년 3당(민주정의당·통일민주당·신민주공화당) 합당으로 어수선한 정국 속에서 꼬마 민주당 부대변인(1991∼1994)을 맡았다. 국민통합추진위원회(통추) 조직위원회 부위원장도 지냈다. 차기 대권 도전을 천명한 김부겸(4선·대구 수성갑) 더불어민주당 의원 얘기다.
제도권 정치 입문 후에도 그는 기득권에 안주하지 않았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지역주의와 맞섰다. 이른바 ‘바보 노무현’의 길을 걸은 셈이다. 19대(2012년) 총선 때 4선이 보장된 경기 군포를 버리고 대구로 내려갔다. 40.42%로 석패했다. 2014년 대구시장 후보에 나섰으나, 또다시 낙선했다. 20대(2016년) 총선에서 62.3% 득표율로, 마침내 TK(대구·경북) 아성을 무너뜨렸다.
그는 “개헌은 촛불민심의 명령”이라고 말했다. 이어 “국정농단 사태로 한국 사회 곳곳에 숨어 있던 모순과 적폐가 드러나고 있다”며 “한계를 드러낸 ‘87년 체제’를 새로운 헌법에 기초한 새 공화국으로 넘어가자는 욕구도 커지고 있다. 이 하나하나가 다 엄청난 과제다. 촛불에서 드러난 민심을 잘 받들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호헌파인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를 겨냥, “현 지지율은 신기루와 같다”라며 “야권의 공동 개헌 공약을 통한 공동정부 구성이 안 되면 문재인 대세론은 불안정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의원과의 인터뷰는 지난달 27일 서울 마포의 한 호텔에서 본지 박원식 부국장 겸 정치부장과의 대담형식으로 진행됐다.
다음은 김부겸 민주당 의원과의 일문일답.
-2017년 정유년(丁酉年)이 밝았다. 4당 체제의 현실화 및 조기 대선 등으로 정국이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안갯속 정국이다. 제1의 대선 후보이자, 한국 정치를 대표하는 중진 의원으로 마음이 무거울 것 같다.
“국민들이 정치권을 바라보는 시선이 준엄하다. 결국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 비롯된 촛불집회가 정치권에 영향을 준 것이다. 새누리당은 어떤 형식이든 해체 절차가 필요했다. 보수도 극단적 우파를 배제한 제대로 된 보수가 등장해야 한다. 야권도 마찬가지다. 지금 야권은 이념보다 정치하는 방식(Attitude)의 문제 때문에 두 당으로 나뉘어 있다. 그래서 한국 정치사에 유례를 찾기 힘든 다당 구조가 현실화됐다.”
-조기 대선의 막이 올랐다. 1987년을 기점으로 시작된 겨울 대선 대신 이르면 ‘벚꽃 대선’, 늦으면 ‘여름 대선’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조기 대선이 한국 정치사에서 지니게 될 정치적 의미는 무엇이라고 보나.
“87년 6월 항쟁의 성과로 그해 12월에 대통령 직선제 대선이 있었다. 30년 만에 상반기에 대선이 치러지는 것이다. 이 상황이 정치권에 던져준 역사적 의미를 잘 이해해야 한다. 87년 체제 이후 대한민국의 정치와 사회를 새롭게 혁신하고 근본적으로 개혁할 시기가 왔다. 지금 이 기회를 놓치면 또다시 수십 년을 기다려야 할지 모른다.”
◆“김부겸의 정치는 ‘공존 정치·공생 경제”
-19대 대선 출마를 천명했다. ‘왜 김부겸인가.’ 특히 대선에서 중요한 것은 그 인물의 ‘삶의 궤적’이다. 타 후보들과 비교할 때 삶의 궤적이 다르다고 보나.
“대학 때부터 ‘운동권’이었다. 선명한 진보를 내세우고 정치활동을 할 수 있었겠지만, 어느 순간부터 정치는 운동과 다르다는 생각을 했다. 책임이 따르는 것이 정치다. 운동권과 달리 정치는 책임과 의무가 따른다. 정치인은 책임질 수 있는 만큼만 말을 하고, 한 번 한 말은 반드시 지키는 게 도리다. 때문에 일부의 오해를 받으면서까지 소신을 갖고 ‘상생과 통합’을 외쳤다.”
-‘김부겸’하면 지역주의 타파에 나선 ‘바보 노무현’을 떠올리는 분들이 많다.
“정치권을 들어와 직접 겪어보니 우리 사회와 민주주의 발전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벽이 지역주의라는 확신을 느꼈다. 정치를 그만둘 수 있다는 각오를 하고, 경기도 군포를 떠나 대구로 내려갔다. 세 번의 도전 끝에 대구에서 성과를 얻었다. 아직 미완이기는 하나, 영호남 지역주의에 작은 금을 냈다고 자평한다. 김부겸의 정치는 ‘공존의 정치’다. 젊었을 때 제도정치권에 입문하면서 가지게 된 평생의 꿈이다. 진영을 넘어 공존의 정치를 만들고 더불어 성장할 수 있는 공생의 경제를 통해 ‘공존의 공화국’을 만들고자 한다.”
-중도층 포섭 등 외연 확장력으로 본선 경쟁력이 타 후보 대비 앞선다는 평가다. 하지만 탄핵 정국에서 주목을 받은 것은 이재명 성남시장이었다. 다크호스 포지션을 뺏긴 상황인데, 당내 경선 통과를 위한 승부수가 있나?
“아직 몇 차례 변화가 더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촛불이라는 격변 뒤에는 반드시 속도와 정도를 정비하는 안정된 리더십을 원하게 된다. 당원을 포함해 일반 국민이 선거인단이 되는 국민참여경선 제도가 도입되면 그런 욕구가 우리 당에도 흘러들어올 것이다.”
◆“이번 대선 시대정신은 ‘국가대개혁’…개헌 필수”
-역대 대선마다 시대정신이 있었다. 이승만 때는 ‘건국’, 박정희 때는 ‘산업화’, 김영삼부터 노무현까지는 ‘민주화’가 시대정신이었다. 2017년 대선의 시대정신은 무엇이라고 보나.
“불공정과 불평등, 부정부패를 척결하는 ‘국가대개혁’이다. 소위 ‘87년 체제’, 즉 제왕적 대통령제를 해체할 기회가 왔다. 우리 사회와 국민의 수준에 현저하게 뒤처진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한다. 지방분권과 국민기본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개헌 논의를 빨리 시작하자는 입장이다. 대선 전이라도 국민적 합의를 내오고, 그 성과로 다음 대통령 임기 초반에 개헌을 추진해야 한다.”
-구체제 타파의 핵심인 ‘개헌’이 화두다. 그간 ‘지방분권형’ 개헌을 주창했다. 당위성 및 시기와 내용 등 구체적인 각론을 말해 달라.
“개헌은 광장에서 터져 나왔던 1천만 촛불의 분노를 법률과 제도 개혁으로 승화시키는 것이다. 사회적 부조리와 기득권의 갈등 등을 걷어내기 위한 최종적 합의가 개헌이다. 대통령 권력의 분산과 함께 중앙과 지방 간 분권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지방 경제가 사실상 죽어가고 있다. 중앙정부의 권력을 지자체 연합 또는 연방 수준으로까지 분권화해야 한다. 주민 자치권을 국민기본권으로 하고 자치입법권과 재정적 자립을 보장하는 조세구조가 완성돼야 한다. 지방분권은 국민주권을 실현하는 것이다.”
-현재 개헌 구도는 ‘개헌파 vs 호헌파’ 구도다. 동시에 임기단축 개헌론도 나오는 상황이다. 임기단축 개헌에 대한 입장이 궁금하다.
“헌법재판소에서 탄핵 결론이 날 때쯤 어느 정도 합의가 되면 차기 대통령 임기 초반에 개헌을 완료하고 바뀐 헌법으로 2020년 20대 국회가 끝나는 시점에 맞춰 제7공화국이 출범하길 바란다.”
-대선 주자 간 합의가 가능할까, 의문이 든다.
“(이 문제는) 2020년에 대통령 임기를 줄이고 할 것이냐, 2022년에 국회의원 임기를 줄이고 하자고 할 것이냐다. 단순하게 보고 싶다. 대선 주자는 많아야 10명이다. 10명이 약속을 하는 게 쉬운가. 300명이 약속하는 게 쉬운가. 개헌이 역사적 과제라면 정치인들이 조금은 내려놓는 게 국민에 대한 예의다.”
◆“文 개헌 논의 나서면, 주도권 野로 넘어올 것”
- 대선 전 개헌이 불발된다면, 일각에서 나오는 2018년 지방선거 때 국민투표 안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논의는 빨리 시작할수록 좋다. 광장 민주주의의 열기가 유지되는 지금부터 개헌을 추진해야 국민 기본권 강화나 강력한 지방 분권 확대 같은 개혁에 어떠한 정치세력도 감히 반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개헌 논의를 정권교체 이후 하자고 하는 입장도 있다. 정권이 바뀌면 개헌이 자동으로 되는가. 역대 모든 대통령이 개헌을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공수표였다. 보다 강한 구속력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대선 전부터 논의하고 범야권(후보)이 합의할 수 있는 수준까지 합의해야 한다. 이런저런 이유를 붙여 시기를 자꾸 뒤로 미루려고 하는 것은 사실상 (개헌)하지 말자는 얘기랑 매한가지다.”
-당내 가장 앞선 주자로 평가받은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대표적인 호헌파다. 문 전 대표 등의 반대로 개헌 논의가 진척 없이 용두사미로 끝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문 전 대표가 개헌 자체를 반대한다고 보지는 않는다. 하되 대선 이후에 하자는 입장인 것 같다. 문 전 대표가 정략적인 계산으로 국가의 중대사를 결정하는 건 아닐 거다. 그래서 지난번에 문 전 대표에게 개헌 논의에 앞장서 달라고 요구했다. 문 전 대표가 나서면 개헌의 주도권이 야권으로 넘어올 것이다. 아무리 선량한 사람이라도 한 사람에게 모든 권력이 집중되면, 언제든지 권력 남용이나 호가호위, 비선실세의 준동이 벌어질 수 있다.”
-‘문재인 대세론’은 존재한다고 보나.
“야권의 강력한 주자인 것은 맞다. 그러나 문 전 대표로 정권교체를 확실히 이루어낼 수 있다고 보기에는 아직 이르다. 무엇보다 범야권이 단결할 수 있는 기반을 줘야 한다. 그래야 일 대 일 구도가 될 수 있다. 일 대 일이 안 되면 계속 불안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야권 후보 간 공동의 개헌 공약을 만들어보자는 것이다. 그리고 그 개헌안을 갖고 공동정부의 기틀을 만들어보자. 문 대표가 야권 단결의 구심이 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렇게 안 되면 문 전 대표는 계속 안심할 수 없을 것이다.”
◆“野 촛불에 도취하면 潘 지지율 더 오를 것”
-비박계 발(發) 탈당으로 개헌 깃발을 든 제3 지대 논의가 본격화할 전망이다. 개헌이 정계개편의 도구로 전락했다는 비판도 있는데, 이에 대한 견해를 말해 달라.
“민주당이 개헌을 주도하면 인위적인 정계개편은 설 자리가 없을 것이다. ‘개헌 대 반(反)개헌’으로 전선을 그어주지 않으면 된다. 야권 주자들이 모두 개헌하자고 하면 새누리당이든 누구든 무슨 수로 정계개편 하자고 할 수 있겠느냐. 국민적 명분이 없으면 신당은 모두 실패했다. 더욱이 국정농단에 책임져야 할 세력이 개헌을 정략적으로 이용하려고 시도한다? 국민들이 웃을 일이다. 야권이 개헌을 선제적으로 치고 나가면 개헌은 야권의 의제가 된다. 구더기 무서워 장을 못 담글 게 아니라 파리 쫓으며 장은 담가야 한다.”
-개헌 정국에 한정해서는 비박 신당인 개혁보수신당(가칭) 내 개헌파와 공조 행보에 나설 의향이 있나.
“개헌을 국면전환용이나 위기탈출용으로 이용하려는 세력과는 단호한 선을 그을 것이다. 비박 신당이 어떤 개헌 지향성을 가질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지금 공조를 얘기하는 것은 너무 앞서가는 것이다. 비박신당의 자기반성과 변화 의지가 제일 중요하다.”
-임기를 마친 반기문 유엔(UN) 사무총장의 귀국이 임박했다. 탄핵 정국을 거치면서 지지율이 하락했지만, 여전히 대선은 물론, 제3 지대 변수다. ‘반기문 대망론’의 실체는 있다고 보나.
“실체를 부정하기 어렵다. 박근혜 대통령 지지층을 중심으로 반 총장에게 새로운 기대를 걸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야당이 촛불 민심에 안주하여 오만해지면 반 총장의 지지율은 더 오를 것이다. 야당이 탄핵 민심에 취하지 말고, 집권 비전과 수권 능력을 보여주면서 국민들에게 안정감을 심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차기 대선 구도가 ‘3자 구도(다자 구도 포함)로 가느냐’, ‘양자구도로 가느냐’도 관전 포인트다. 이는 야권연대 및 통합론과 궤를 같이한다. 이 복잡한 셈법을 어떻게 풀어야 할까.
“촛불 민심 속의 지지율을 갖고 3자 구도로도 승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고 안일한 판단이다. 촛불 민심이 일상으로 복귀할수록 보수 지지자들의 정치적 성향이 복원될 것이다. 지금의 지지율은 신기루와 같을 수 있다. 정권교체를 위해서 여전히 중요한 것은 야권 연대를 이루는 것이다. 야권 공동의 개헌안을 마련하고, 결선투표제나 야권 공동의 경선을 통해서 단일대오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대선 후보’ 김부겸의 슬로건이나, 핵심 정책이 있다면 소개해 달라.
“이제는 대결의 정치, 적대의 정치를 끝내야 한다. 공존의 공화국으로 가야 한다. 약탈 경제를 넘어 공존의 경제로 가야 한다. 경제적 불평등 해소, 한반도 평화, 국민 안전을 위한 국가를 만들어야 한다. 공존과 상생, 평화와 정의의 제7공화국을 만들겠다. 국가의 미래를 책임질 리더십을 누가 가졌는지 국민들이 판단해주실 것으로 믿는다. 일시적 인기 영합이 아니라, 새로운 대한민국 100년을 설계하고 주춧돌을 놓을 사람이 누구인지 조만간 검증될 것이다.”
대담=박원식 부국장 겸 정치부장
정리=최신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