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품없는 강철 박스가 물류 역사를 다시 썼다. ‘화물을 담은 용기’에 불과한 강철 박스는 세계 화물 운송량을 5배나 증가시켰다. 해상운송비는 60%가 감소했고, 화물이 항구에 체류하는 시간을 4분의 1로 줄였다.
선박이 세계 물류를 지배하는 이유는 바로 컨테이너 때문이다.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는 컨테이너를 “세계경제사를 바꾼 대혁신적 발명품”이라고 극찬했다. 컨테이너 창안자는 말콤 맥린(Malcom McLean). 그는 2차 대전에 사용됐던 유조선(T2 탱크선)을 개조해 ‘아이디얼 X호’라는 컨테이너선을 만들었다. 이 선박은 1956년 4월 26일 뉴저지 뉴어크항에서 휴스턴까지 35피트 규모의 컨테이너 58대를 싣고 운행에 성공한다. 2007년 “포브스”지는 맥린을 세계 경제사를 움직인 인물로 추켜세웠다.
한국 전쟁은 컨테이너를 대량 생산하는 계기가 된다. 미국은 군수물자를 이송하면서 절도와 훼손을 방지하려고 ‘Conex(Container Express) 컨테이너를 만들었다. 1960년대 중반까지 전 세계 운송량의 10%를 넘지 않았던 컨테이너는 베트남 전쟁(1967년)에서 막대한 전쟁 물자를 컨테이너로 운송하면서 보편화 됐다. 지금은 전체 물동량의 60% 이상이 컨테이너로 운송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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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선박용 컨테이너는 규격화되어 있다. 20피트(6.1m)와 40피트(12.2m) 단 두 가지이다. 유럽에는 30피트, 45피트와 육상용 48피트, 미국에는 48피트와 철도운송용 53피트 등을 사용하기도 한다.
항공기에도 화물 컨테이너를 사용한다. B747은 약 300~400명의 승객을 태우고도 100t의 화물을 더 싣는다. 엄청난 적재량은 항공컨테이너가 있어서 가능한 일이다. 747용 메인데크 M1 컨테이너는 길이 3.15m, 폭 2.44m, 높이 2.44m이다. 747은 이 컨테이너 31개를 실어 나른다.
컨테이너를 안전하게 수송하기 위해선 트레일러나 화물선에 튼튼히 고정해야 하는 핀이 절대적이다. ‘트위스트락’을 말한다. 이 핀은 ‘텐틀링거’가 개발했다. 그는 컨테이너 여덟 귀퉁이에 고정용 고리를 달고, 그 수평면 구멍에 잠금장치를 90도로 끼워 돌리는 결박 장치를 개발해서 오늘날 화물 컨테이너 만능시대를 만든 인물이다.
한국은 세계 최대의 컨테이너 생산국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이제 더 이상 수출용 컨테이너를 생산하지 않는다. 한적한 길가 모퉁이나 논밭 가운데 설치된 하우스용 컨테이너는 국내 군소제작업체들이 만든 것들이다. 이들 업체가 생산하는 컨테이너는 99%가 하우스용이다.
수출용 컨테이너의 95%는 중국에서 생산한다. 우리나라는 1974년 흥명공업이 미국(리스업체) ICS에 처음 컨테이너를 수출하면서 국내 컨테이너 제조 산업을 세계 1위로 성장 시켰다. 1980~1990년대초만 해도 국내에는 현대정공, 진도, 흥명공업, 광명공업, 대성산업, 동국중기, 효성금속, 신우산업기기 등 여러 컨테이너 제작업체가 있었다. 한국컨테이너공업협회가 구성될 정도였다. 현대그룹 정몽구회장의 독자적인 첫 사업도 컨테이너 사업이었다. 이 사업으로 선대 정주영 회장으로부터 사업 능력을 인정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부터 중국에 밀려 공급 과잉 상태를 보이더니 흥명공업, 대성산업이 폐업(1993년)하고, 다음해에는 현대정공, 진도 두 업체만 남았지만 국내에서는 냉동컨테이너 등 특수 컨테이너만 생산했다. 결국 2000년도에 국내 컨테이너 시장은 막을 내렸다. 현대정공은 현대모비스로 상호를 변경하여 자동차부품업체로 전환했다.
컨테이너는 ‘팝업 컨테이너 쇼핑몰’로도 유명하다. 스위스 취리히 웨스트의 ‘프라이닥’ 매장은 화물용 컨테이너 박스를 쌓아서 만들었다. 트럭 지붕을 덮는 천, 자동차 안전벨트, 자전거 바퀴 등 튼튼한 가방을 생산하는 이미지와 컨테이너 건물과의 조화 때문에 젊은이들에게 인기가 높다.
2009년 2월 서울 홍대거리에 컨테이너 박스로 꾸며져, 하루~한 달 정도 운영되는 '떴다 사라지는(pop-up)'팝업 스토어가 등장했었다. 국내 최초, 세계 최대의 팝업 컨테이너 쇼핑몰은 건대 입구에 설치된 ‘커먼그라운드’(코오롱인더스트리)이다. 1600평의 대지위에 200여개의 컨테이너로 구성된 이색복합쇼핑몰 ‘커먼그라운드’는 국제디자인상 ‘IDEA’를 비롯한 세계3대 디자인상을 싹쓸이 했다.
물류혁신을 일으킨 강철 박스가 주택산업에까지 번져, 어떤 경이적인 혁신을 일으킬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