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사장은 최근 '박근혜ㆍ최순실 게이트' 국조특위 청문회에 참고인으로 나왔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과대평가된 제일모직과 과소평가된 삼성물산을 합병하는 게 기가 막혔다. 우리나라에 발언권 있는 모두가 입을 닫는 거 보고 기분이 안 좋았다. 한국인으로서 창피했다." 실제 삼성물산에 투자했던 가장 큰 기관투자자인 국민연금은 외부 전문가로 이뤄진 의결권행사전문위를 열지 않은 채 합병에 찬성했다.
주진형 전 사장은 2013년 9월부터 올해 2월까지 한화투자증권 수장이었다. 제일모직ㆍ삼성물산이 2015년 합병할 때 증권업계에서 유일하게 반대 의견을 내놓은 곳이 한화투자증권이다. 당시 한화투자증권은 "삼성물산 주주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합병비율"이라며 "합병기준가가 적정가치보다 낮아 주주는 합병 무산을 원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과정에서 주진형 전 사장은 한화그룹이나 삼성그룹으로부터 압력을 받았다는 얘기도 국회에 나와 털어놓았다.
주진형 전 사장은 청문회에서 "재벌은 조직폭력배와 똑같다. 재벌 총수는 기업가치보다 지분과 세습에 관심 있다"고 말했다. 이 자리에는 주진형 전 사장이 몸담았던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뿐 아니라 삼성그룹 이재용 부회장, 현대차그룹 정몽구 회장을 비롯한 주요 재벌 총수 9명이 증인으로 나왔었다. 주진형 전 사장은 이번 청문회로 많은 국민으로부터 응원을 받았다. 여야 국회의원을 제치고 청문회 스타로 떠올랐다.
지인을 회사에 채용한 것도 문제 삼았다. 그는 "(다른 증권사에는) 없는 자리를 만들어서까지 자기 사람을 외부에서 대거 채용했다"며 "자신에게 반대하는 기존 임원은 모두 해임했다"고 전했다. 없는 자리를 만든 대표적인 예로는 리서치센터 안에 뒀던 편집국을 들었다. 실제 신문사가 아닌 증권사에서 편집국이라는 부서를 두는 경우는 한화투자증권이 유일했다.
회사가 산 소프트웨어와 외부 경영진단도 일감 몰아주기로 지적됐다. 그는 "S 채터라는 소프트웨어를 정보기술(IT) 담당자를 통해 16억원에 도입했고, 담당자는 퇴사 후 S사에 입사했다"고 주장했다. 외부 자문에 대해 그는 "경영진단 컨설팅을 한다면서, 이마저도 지인이 있는 회사를 썼다. 수억원을 들인 컨설팅 효과는 없었다"고 말했다.
견주어 보건대 주진형 전 사장을 김용철 변호사처럼 큰 위험을 무릅쓴 내부고발자로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비슷한 역풍을 맞고 있다. 루머 속에서 주진형 전 사장은 마치 줄기차게 비선인사만 챙긴 비도덕적인 최고경영자로 묘사됐다.
동의하기 어렵다. 루머가 맞더라도 최고경영자가 공개적으로 잘 아는 전문가를 채용하거나, 업계에 없는 새 부서를 도입하는 실험을 하는 게 문제인가. 회사가 적자를 냈던 것은 사실이다. 그렇더라도 직원이나 고객이 두고두고 쉴 수 있는 공간을 회사에 만든 것을 잘못이라고만 봐야 하나. 결정적으로 위법 소지가 있다면 여승주 현 한화투자증권 사장은 주진형 전 사장을 이미 제소했어야 한다. 여승주 사장도 배임 혐의를 받는 사안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돈을 많이 못 번 최고경영자일 수는 있으나, 재직 시절과 청문회 때 주진형 전 사장이 보여준 소신까지 악의적으로 보이는 루머에 가려져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