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국회 청문회에 출석한 대기업들이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 납부에 대해 "대가성은 없었다"고 한목소리로 내면서 과연 특검에서 뇌물죄를 적용할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8일 복수의 법조 관계자들에 따르면 뇌물죄 성립은 뇌물공여자 본인의 대가성 인정 여부와 별 관련이 없다. 20여 년전 전두환·노태우 뇌물수수사건에서도 돈을 준 재벌 총수들은 '대가관계가 없었다'고 항변했지만, 법원은 '포괄적 뇌물죄'를 적용해 처벌했다.
당시 법원은 "기업체의 활동에 대해 법령상 직접적 또는 간접적으로 방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대통령의 직무권한을 기업인들이 의식한 상태에서 금원이 수수된 사실을 인정할 수 있어 대통령 직무와 관련성 및 대가성을 부인하는 주장은 이유없다"고 설명했다.
이번에도 20년 전과 마찬가지로 대가성에 대한 입증은 크게 어렵지 않다는 전망이 나온다. 대통령이 기업들의 애로사항을 직접 면담해 듣거나 전경련을 통해 서류로 접수받은 사실이 확인됐고, 이 사항들이 실제 추진되는 과정에서 미르와 K스포츠재단 모금이 이뤄졌다는 점이 명백하기 때문이다.
다만 이번 사건은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돈을 받지 않았다는 문제가 있다. 하지만 대통령이 직접 돈을 받지 않았더라도 두 재단을 사실상 지배하고 있었다면 이를 통한 출연금 모금이 뇌물수수에 해당할 수 있다.
지난달 30일 임명된 박영수 특별검사는 미르·K스포츠재단에 대한 대기업 출연금과 관련, 검찰이 적용한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가 아닌 뇌물죄 적용을 적극 검토하겠다는입장을 천명했다. 뇌물죄나 제3자 뇌물제공죄는 수뢰액이 1억원이 넘으면 가중 처벌돼 징역 10년이상 중형을 선고할 수 있다.
특히 삼성은 최씨 모녀가 소유한 독일 법인 코레스포츠(이후 비덱스포츠로 개명)에 280만유로(약 35억원)를 직접 지원하고, 최씨 딸 정유라의 말 구입비 명목으로 319만유로(약 43억원)를 또 송금한 사실이 드러나 뇌물죄 적용의 일차 타깃이 되고 있다.
두 재단에 대한 출연금(204억원) 등에 더해 300억원에 가까운 지원이 그룹 현안이었던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국민연금이 찬성표를 던지도록 한 대가가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검찰 관계자는 “박 특검이 파견 검사로 중앙지검 특수1부 소속 검사를 지목해 요청했다는 사실만 봐도 삼성에 대한 수사 의지를 엿볼 수 있다”고 말했다. 검찰 역시 기업수사 전담팀과 별도로, 특수1부 검사를 편성해 관련 수사에 집중해왔다.
그러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 6일 ;최순실 게이트'' 국회 국정조사특위 청문회에서 "단 한번도 무엇을 바라고 출연하거나 지원한 적이 없다"고 제기된 의혹을 강하게 부인했다. 특히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이 "경영권 승계와 관계가 없다"고 선을 긋는 한편, 대통령과의 독대 자리에서 "합병 얘기가 없었다"고 해명했다.
롯데는 지난해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주관 모금을 통해 최순실씨가 설립을 주도한 K스포츠재단과 미르재단에 각각 17억원(롯데케미칼)과 45억원(호텔롯데)을 출연했고, 이어 5월 말 K스포츠재단의 ‘하남 엘리트 체육 시설 건립’ 계획에 75억원을 추가로 기부했다가 검찰 압수수색(6월10일) 하루 전인 6월9일부터 13일까지 5일에 걸쳐 돌려받았다.
또한 이 시기 지난해 12월 면세점 특허권에 탈락한 롯데면세점이 서울시내면세점 신규사업자 추가 선정이 발표(4월29일)되면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나 ‘대가성이 아니냐’는 의혹이 계속해서 제기되고 있다.
한화그룹은 계열사 한화와 한화생명을 통해 미르·K스포츠재단에 약 25억원을 출연한 뒤 매출 4000억~5000억원 규모인 서울시내 면세점 사업권을 취득했으며, 김승연 회장은 개인적으로 박 대통령과 초등학교 동창이기도 하다. 아울러 CJ는 해당 재단에 13억원을 출연한 뒤 1,600억원대 배임·횡령·탈세 혐의로 수감된 이재현 회장이 광복절 특별사면을 받았다.
뇌물죄 수사는 통상적으로 돈을 준 사람이 인정을 하고 이를 근거로 돈을 받은 사람을 추궁한다. 뇌물죄를 적용할 경우 돈을 준 기업들도 처벌을 받기 때문에 앞으로 진행될 특검 조사에서도 이날 발언을 바꿀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분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