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수가 세 번이나 필요하다는 건 정상적으로 바둑을 둘 수 없을 정도로 형세가 나빠 판세를 도저히 뒤집기 힘든 비관적 국면이라는 의미다.
묘수가 돌을 살리거나 죽이기도 하고, 부분적으로는 전세를 역전시키기도 하지만 묘수를 연발해서 바둑을 이기는 경우는 거의 없다. 최고의 승률로 세계 바둑계 최강자로 군림했던 이창호 사범은 화려한 묘수는 없지만 합리적인 포석으로 매판을 승리로 이끌었다. 그래서인지 아마추어 기사들에겐 인기가 많지 않았지만 기보를 본 프로기사들은 "어떻게 바둑을 이렇게 쉽세 이길 수 있는가"라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격랑치는 정국에 지난달 말 박근혜 대통령은 세 번째 담화를 통해 국민들을 다시 한 번 분노하게 하고 있다. 이날 박 대통령이 '판'을 흔들기 위해 던져놓은 말들은 결국 야3당과 비박계가 탄핵을 향해 단일대오로 뭉쳤던 연대를 순식간에 깨뜨렸다.
박 대통령이 묘수를 아무리 내려해도 더 이상 빠져나갈 구멍이 없는 막다른 골목까지 몰린 것이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터진 지 어느덧 한 달 반이 되어가고 있지만 성난 민심은 추위에도 식을 줄 모른다. 지난 2일 서울에서만 무려 170만명(주최 측 추산), 전국적으로 232만명이 거리로 쏟아져 "박근혜 대통령 즉각 퇴진"을 외치며 한 주 만에 '단군이래 최대시위' 기록을 다시 한번 갈아치웠다.
탄핵의 최대 분수령이 될 이번주가 운명의 시간을 마주하고 나면 토요일인 10일에도 대규모 도심 촛불집회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규모와 강도는 전날 탄핵 표결 결과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가결이면 후폭풍, 부결이면 핵폭풍을 만날 것이라는 점에서 박 대통령은 무거운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주요 외신들도 사그라들지 않는 '촛불 민심'을 긴급 뉴스로 타전했다. 영국 가디언은 "수만명 규모의 박 대통령 퇴진 시위가 한달여 넘게 점점 강해지고 있다"며 "박 대통령의 사임 의사 발표에도 불구하고 여섯 번째 시위대가 얼어붙을 정도로 추운 기온에 맞섰다"고 보도했다. 중국 신화통신은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이 인간 사슬을 만들어 청와대를 포위했다"라며 "사익을 추구하지 않았고, 잘못이 없다는 박 대통령의 3차 담화가 국민을 더욱 화나게 만들었다"라고 전했다.
복수불반분(覆水不返盆)이라고 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은 주워 담을 수 없다. 하지만 엎지른 사람이 책임지고 닦으면 더 큰 화는 면할 수 있다. 탄핵열차가 속도를 내는 이시점에서 또 다른 선택지가 있을 수 없다. 좌고우면할수록 그나마 남아 있을지도 모를 최소한의 자존마저 무너질 뿐이다. 박 대통령이 좋아하는 말대로 ‘법적인 절차에 따라’ 탄핵을 받으면 된다. 그리고 그에 따른 형사상 책임을 지면 되는 것이다.
장진 감독의 '대통령'을 소재로 만든 영화 '굿모닝 프레지던트'에서는 3명의 최고 통치자가 펼치는 3가지 에피소드로 상상하지 못했던 대통령을 만난다. 다소 엉뚱하고 유쾌한 시선으로 권위의 상징인 대통령을 친근한 존재로 끌어내린다. 비록 영화 속 허구의 세상이지만 청와대 안에서의 삶에 대한 궁금증을 그려내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최근 미국 오바마 대통령의 지지율이 60%에 가깝다는 언론보도를 접했다. 내년 1월 임기만료를 앞두고 지난 7년간 지지율의 최고치를 기록했다는 것이다. 레임덕이라는 단어로도 포장할 수 없는 대한민국의 현실과는 참으로 다른 모습에 마음이 씁쓸하고 안타깝기만 하다. 우린 과연 언제쯤 행복한 임기말 대통령을 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