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개혁개방 총설계사' 덩샤오핑(鄧小平)은 단 한번도 국가주석이나 국무원 총리를 맡지 않았다. 정치 9단, 경제 10단 덩샤오핑이 3전 3기에 성공하는 순간부터 앉았던 정부 최고위직은 ‘상무(常務)부총리'였다. 덩샤오핑 이후 상무부총리는 제1부총리이자 경제부총리로서 중국 경제의 컨트롤타워의 수장을 의미한다(이하 상무부총리를 ‘경제부총리’로 칭함). 덩샤오핑과 그의 후임 역대 경제부총리들은 개혁개방 노선을 진두지휘하면서 경제건설을 당차게 밀고나가면서 오늘날 'G2'(주요2개국) 중국의 초석을 다져나갔다.
경제부총리는 중국경제라는 경기장의 야구의 에이스 투수, 미식축구의 쿼터백 같은 핵심 포지션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경제에 가장 중요한 핵심인물(Key Man)은 누구일까? 장고려 경제부총리이다.
만약 미국 국무장관의 이름이 ‘코리아(KOREA)’이거나, 일본 부총리의 이름이 ‘고라이(高麗)’라면, 우리나라 관∙언∙학계가 그냥 넘어갔겠는가?
중국의 경제부총리를 우리나라의 기획재정부 장관겸 경제부총리 쯤으로 여기고 지나쳐서는 곤란하다. 특히 현직 장고려 경제부총리는 시진핑 시대 중국 슈퍼 메가 프로젝트인 ‘일대일로(一帶一路·One Belt, One Road)’ 를 총지휘하는 중국 최고 총사령관이다.
개혁개방 총설계사 덩샤오핑이 국가주석과 국무원 총리 자리를 한사코 거부하고 맡았던 자리가 경제부총리였다. 경제부총리는 덩샤오핑의 왼팔과 오른팔로서 실세중의 실세로 불리던 완리(萬里 1982~88년, 괄호안은 재임기간), 야오이린(姚依林 1988~93년)이 덩의 뒤를 이어 차례로 맡았던 직위이다.
장쩌민 시대의 주룽지(朱鎔基 1993~98년)와 리란칭(李岚清 1998~2003), 후진타오시대의 황쥐(黃菊 2003~07년)(필자주7), 리커창(李克强 2008~13년), 그리고 현재의 장고려(张高丽) 경제부총리는 모두 중국 당·정 고위인사 중 '에이스 중의 에이스'로만 명맥을 이어 내려온, 카리스마의 아우라가 광휘로운 영광의 자리이다.
인걸은 간데없으나 제도는 유구하다. 특별한 돌변상황이 발생하지 않는 한 현 제8대 경제부총리 장고려의 임기 종료는 2018년 3월로 예상된다.
이제 장고려 개인보다 상무부총리 직위에 중점을 두어 살펴보도록 한다. 상무부총리 휘하에는 국무위원(부부총리) 5인중 1인(현재 왕융王勇 전 국유자산관리감독위원회 주임)을 비롯해 상무부, 재정부, 국가발전개혁위원회, 공업및정보화부, 인력자원및 과학기술부, 국토자원부 등 국무원 각 부와 위원회 25개 중 15개 주요부서가 “명령만 내리소서” 하듯 상시 대기하고 있다. 상무부총리는 국무원 직속 특설기관이자 중국의 모든 국유기업을 관리감독하여 전 세계에서 가장 돈 많은 부서라고 정평이 난 국유자산감독관리위원회도 직속에 두고 있다.
어디 그 뿐인가, 경제부총리는 세무총국(국세청)등 국무원 직속기관 14개중 5개, 은행업감독관리위원회(금융감독원) 등 국무원직속사업단위 13개 중 4개를 총괄하는 지위와 권한, 지휘책임을 아울러 부담하는 핵심중의 핵심 직위이다. 요컨대 상무부총리는 중국경제라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이다.
'정신일도 하사불성(精神一到 何事不成)'이라, "정신을 한 곳으로 모으면 어떤 일을 이루지 못하겠는가"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개혁개방의 총설계사, '정치 9단, 경제 10단' 덩샤오핑이 1978년부터 상무부총리를 맡은 후, 2016년 현재까지 근 40년을 한결같이 중국은 정치권력 핵심 중의 핵심인 정치국 상무위원 중에서도 최고의 경제통으로 검증된 자를 상무부총리로 발탁해 중국경제 컨트롤 타워를 맡아 중국경제를 성장시켰다. 오늘날 중국이 미국과 더불어 글로벌 경제를 쥐락펴락하는 G2국가로 웅비하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강효백 경희대학교 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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