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라는 특이한 이름과 함께 첫인상에서 온화하고 이지적인 외모에다 겸손함까지 몸에 배인 그에게서 묘한 친근감을 느꼈다. 우리나라 인구의 2배, 면적의 1.6배에 달하는 중국의 대성(大省) 중의 하나인 산둥성 1인자의 목과 어깨와 얼굴 근육에는 전혀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닌하오, 장 코리아(你好, 張高麗)”
프로토콜 경계선에서 10㎝쯤 넘어선, 필자의 발칙한 인사를 장고려는 환하게 웃으며 두 손을 모아 내민 손을 감쌌다. 그의 손바닥은 유난히 두껍고 따뜻했다.
'중국 중앙정부가 얼마나 닦달을 해대면 한국기업들을 더 많이 산둥성에 유치하려고 지방정부 1인자까지도 저런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는구나. 저 따위 속보이는 감언이설에 또 속아서는 안 되지.' 라고 필자는 다짐하며 한 쪽 귀로 흘리려 애썼다.
그러나 어찌된 영문인지 나머지 연설은 하나도 기억에 남은 게 없다. 한 쪽 귀로 흘리려 했던 "이름이 고려라서 모태 지한파"라는 광고카피같이 달콤한 미사여구만 꿈결처럼 필자의 귀속 달팽이관에 깊이 남아 있다.
필자는 그리고나서 장고려라는 실존인물을 오랫동안 잊어버렸다. 그런데 2012년 11월 시진핑(習近平) 총서기 체제가 들어서면서 장고려는 중국 정계의 핵심중의 핵심 7인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등극했다.
그리고 이듬해 3월, 7인의 중국 정치 거두들은 역대 정치국 상무위원들처럼 각자 국가권력의 최고위직을 골라 맡듯 한 자리씩 차지했다. 시진핑은 국가주석, 리커창(李克强)은 국무원 총리, 장더장(張德江)은 전인대 위원장, 위정성(俞正聲)은 정협주석, 류윈산(劉雲山)은 당서기처 서기, 왕치산(王岐山)은 당기율조사위 서기, 장고려는 상무(경제)부총리를 맡았다. 그런데 시진핑 정부 1기 최고위직 포진은 역대 포진과는 달리 유별난 부분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상무부총리에는 지고지상의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국가부주석에는 정치국 상무위원보다 한 등급 낮은 정치국위원으로 포진한 부분이다.
중국 공산당이 중화인민공화국을 영도하는 중국 정치체제상 당직이 정부직보다 우선한다. 따라서 정치국 상무위원 장고려가 맡은 경제부총리의 지위는 정치국위원 리위안차오(李源潮)가 맡은 국가부주석보다 당 서열뿐만 아니라 당 등급이 더 높다. 비유하자면 정치국위원이 중장이라면 정치국 상무위원은 대장인 셈이다.
중국의 국가부주석은 영문으로 'vice president', 부통령으로 번역된다. 총리라면 몰라도 부총리가 부통령보다 높은 경우는 세계 각국은 물론 최근 20년 중국 정치사에도 없는 매우 이례적인 현상이다.(아래 표 참조).
장쩌민.(江澤民) 시대부터 후진타오(胡錦濤) 시대까지 국가주석은 주로 정치를, 총리는 주로 경제를 맡는 역할분담 체제를 유지해왔다. 그래서 장쩌민-주룽지(朱鎔基) 정부, 후진타오-원자바오(溫家寶) 정부로도 별칭됐다.
현 시진핑 시대도 시진핑-리커창 정부로 부르긴 하지만, 시진핑 주석의 1인 카리스마가 워낙 빛나는 반면, 리커창 총리는 역대 총리에 비해 친화력도 떨어지고 경제수장으로서의 제 역할을 충분히 못하고 있다는 게 각계의 중론이다.
또 주석과 총리가 상호조화와 보완, 힘의 균형 관계를 이루어 온 역대 정권과 달리 시 주석과 리 총리는 상호 갈등모순과 힘의 불균형 현상을 노정하고 있다.
이러한 이례적 상황을 이례적으로 국가부주석보다 당등급과 당서열이 높은 장고려 경제부총리가 타개하고 있음이 감지된다.
한발 더 나아가 역대 총리가 맡아온 경제총수로서의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고 분석된다. 특히 시진핑 시대의 대표적 국가 전략사업인 ‘일대일로(一帶一路)’를 입안, 주도하고 있는 장고려 경제부총리의 위상을 감안하면 현재 중국을 이끄는 실질적 쌍두마차는 '시진핑-리커창 팀'이 아니라 '시진핑-장고려 팀'이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2)편에 이어서…]
강효백 경희대학교 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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