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 365]냉정심 되찾고 미래를 고민할 때

2016-11-28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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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명석 산업부 차장

2014년 4월 16일. TV와 인터넷을 통해 뉴스 속보가 쉴 새 없이 올라왔다. 전 국민은 안타까움에 몸서리를 쳤다. 전날까지 멀쩡하던 기자의 노트북PC가 다운 되어 저장해 둔 데이터들이 모두 날아갔다.

가라앉는 배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고, 머릿속은 잔상이 계속해서 맴돌았다. 그렇게 며칠 동안 혼란 상태가 지속됐다.

20여일 뒤였다. 출근 준비를 하고 있는 기자에게 어머니는 고대안산병원 장례식장 가는 길을 물었다. 이종사촌 누나의 아들의 시신이 수습돼 이날 빈소가 마련됐다고 했다. 그동안 누나는 끝까지 아들이 살아오리라고 믿고 주변에 연락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얼굴 한번 본적 없는 조카였다. 누나는 웃으며 떠날 수 있게 해 달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첫 인사이자 마지막 인사를 하고 나왔을 때의 답답함과 먹먹함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기자라는 직업을 갖게 된 후에 참으로 많은 사건을 접했다. 항상 냉정함을 잃지 않으려 노력 했다. 하지만 당시는 정말로 감정을 조절하기가 어려웠다. 되돌아보면 뉴스에서 눈을 못 떼고, 노트북PC까지 다운됐던 일은 마치 그 아이가 자신을 잊지 말아달라는 메시지가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이후 집안 행사에서 한두 번 정도 누나와 매형을 뵐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누구도 그 일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친척 어른들은 누나와 매형을 생각해서, 누나와 매형은 아픈 기억을 떠올리지 않기 위해서다.

말하지 못하는 슬픔은 말할 수 없기 때문에 더욱 크다. 가슴에 묻는 일을 빼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은 살아있는 동안 평생을 안고 가야 할 큰 짐이자 한(恨)이 된다. 누나와 매형, 친척들 모두 그런 슬픔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믿을 수 없는, 정말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던 일들이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 그런 이들이 더 빨리, 더 많이 벌어져 무섭다. 좌절과 분노, 절망, 슬픔 등과 같은 부정적인 단어들이 휩쓸고 있는 현재의 한국에서는 어떤 희망도 가질 수 없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아픔을 먼저 겪어본 어른들은 조심스레 말을 꺼낸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고. 그래야 떠난 이의 마음이 덜 아프지 않겠느냐고. 잊을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과거에 발목을 잡혀 있을 수만은 없지 않겠느냐고. 앞으로 살 방도를 찾아야한다고. 살아있는 게 미안하고 고통스럽지만, 살아서 더 오래 그리워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흉터는 남겠지만, 시간이 가면 상처는 치유가 될 것이라는 마음으로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어렵겠지만 이럴 때일수록 냉정을 되찾고 우리의 살길을 생각해야 한다. 슬퍼하되, 앞으로 나가야 할 길을 고민하자는 것이다. 비통에 빠져 있는 사이, 우리 앞에는 ‘생존’을 담보한 경제활성화 관련 과제가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이 과제들을 지금 해결하지 못하면 앞으로의 삶을 보장할 수 없다. 그 과제들은 절대 권력자가 아닌 국민들이 뜻을 모아 해결해야 한다.

190만 촛불의 힘으로 미래를 헤쳐 나가야 한다. 조카를 떠나보낸 빈소에서 기자는 조카의 여동생을 만났다. 처음 보는 아저씨에게 웃으며 인사를 했다. 그 조카마저 앞으로 슬픔 속에 살게 할 수는 없다. 그 아이들에게 좌절을 안긴다면, 어른들은 잘못을 반복하는 것이다. 그들을 위해 미래를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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