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류대란 해소가 경제 살리기 첫걸음

2016-11-21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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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필 수 한국종합물류연구원장

한진해운 법정관리 신청을 계기로 허무하게 무너진 해운산업에 대한 신뢰의 벽이 물류대란으로 번지지 않을까 전국민이 노심초사하고 있다. 글로벌물류에 대한 당국의 인식차이로 대응책 마련에서도 미묘한 견해차를 보이고 있다.

무역과 물류는 손등과 손바닥처럼 손이라는 하나의 실체가 보는 방향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것과 같다. 무역에 80%를 의지해 경제성장을 지속하고 있는 우리에게 글로벌물류의 조그마한 차질도 직격탄이 될 수 있다.
그들만의 영역으로 치부하고 항상 그렇듯 잘될 것으로 여겼던 물류산업의 예기치 않은 혼란이 우리 경제성장의 지평을 깨트리는 걸림돌이 될 수도 있어 글로벌 물류와 해운산업의 중요성을 재음미하고자 한다.

◆경쟁 속에 발전하는 글로벌물류

자본, 기술, 노동력 등 전통적 생산요소의 이전이 자유스러운 글로벌 경제체제에서 물류는 공기처럼 존재의 고마움을 평소엔 모르고 지내지만, 수출전선에서 마지막 남은 경쟁력의 원천이 되고 있다.

출발지에서 최종 소비지까지 물품을 바르고 안전하게 운송해 유통과정을 종결시키는 물류활동은 그 과정에서 다양한 주체, 운송수단, 정보통신, 보관 및 포장 등이 협력,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복합 경제활동이다.

대양을 넘나드는 해운은 국내활동에 그치지 않고, 최소한 2개국 이상 지구촌 곳곳에서 연계활동이 이뤄져 확실한 '국제 비즈니스'라고 할 수 있다.

또 선박이라는 고가의 운송수단을 이용하기에 기업 규모가 대형화되고 거미줄 같은 인적, 물적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해 영업활동이 이뤄진다. 

특히 소요자원의 95%를 선박으로 수입하고, 수출상품의 99.7%를 해상으로 운송하는 한국경제에서 항만을 포함한 해운산업은 대동맥과 같은 생명줄이다.

한진해운도 2015년 97척의 컨테이너선(사선 37척, 용선 60척)으로 460만TEU의 컨테이너 화물을 처리했는데 국내화물은 10% 정도에 그치고 대부분의 영업활동이 외국에서 이뤄졌다.

우리는 그동안 글로벌 물류체제의 구축을 위해 매년 1조원 이상을 투자, 항만 등 기반시설을 확충했다.

664만DWT(1091척)의 선박을 보유해 세계 5위의 해운강국, 동북아의 허브항만으로 원양해운의 중심국 위상을 유지해 왔다.

글로벌 물류는 다양한 참여자와 복합적인 수단을 활용해야 하기에 관련 당사자간에 협력과 경쟁이 동시에 이뤄지는 복합성이 특징이다.

특히 세계물동량의 40%를 처리해 뜨거운 오븐으로 불리는 동북아권역 물류체제는 한국, 중국, 일본이 겉으로는 협력하면서도 한치의 양보없는 물밑경쟁을 벌리고 있다. 잠시의 방심도 허용되지 않는 첨예한 경쟁시장인 것이다. 

◆장래가 불투명한 한국 해운산업

세계 정기선해운 시황은 WTO 체제의 확산에 따른 무역의 확대, 중국의 개방과 소련붕괴로 인한 글로벌경제의 성장으로 전례 없는 호황을 맞았으나 2008년 금융위기, EU경제위기, 유가하락 등으로 화물수요가 감소하는 교착상태를 보이고 있다.

호황기에 대량발주한 선박의 취항으로 선복량 공급이 증가했지만, 수요정체로 공급과잉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결국 해상운임이 급락해 다시 장기 불황의 늪에 빠지게 됐다.

정기선 해운선사들은 장기불황에 대응해 선박규모의 대형화, 글로벌 네트워크 확대, 시장 점유 경쟁 등 생존 경영전략을 채택하고 심지어 정기선사간의 합병, 파산, 매수 등을 통한 이합집산도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결과적으로 상위권 선사의 급속한 과점화로 상위 5개선사의 선복량이 전체의 54%를 차지하고, 해운동맹도 4개에서 3개로 재편될 것으로 보인다.

결국 글로벌 해운시장은 적자생존과 강자독식의 살벌한 무한 경쟁터로 변모하고 있다.

WTO체제로 관세장벽 등 제도적 장벽이 제거되는 자유화 바람 속에 한국 해운산업도 자율화, 개방화 파고가 높아져 양적으로 성장했으나 급격한 세계해운 환경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해 국제경쟁력이 약화되고 있다.

부채비율이 높아 취약한 정기선 해운선사는 금융위기 이후 구조조정 과정에서 국내 제조업과 같은 잣대로 재정되는 바람에 국적 정기선 해운선사는 장기적인 경기변동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완충지대를 잃었다.

호·불황기에 유연하게 대처하기 위해 정기선영업 외에 벌크선, LNG선, 로지스틱스사업 등으로 사업을 다각화해야 한다. 그러나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정기선 외의 분야를 차례차례 정리하는 자충수를 뒀다.

근본적으로 호황기에 불황을, 불황기에 호황을 대비하는 장기적 경영능력의 부재가 문제를 키웠지만 장기적 안목에서 기업을 독려할 정책적 지원의 길도 해운산업 자율화, 규제완화의 틀속에 묻혀버렸다.

◆한진해운 사태의 파장

끝이 보이지 않는 장기불황의 계곡에서 한진사태는 잠정적으로 예고된 안전사고였지만, 기업 당사자나 정책 당국의 대응도 안이했다고 할 수 있다.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자사 소유 선박도 매도하고 용선으로 대처, 장기불황을 대처하기에는 정기선사의 재무구조가 허약한 상태에 다다랐음도 내적 아픔으로 작용했다.

부채가 많은 해운기업에 대해 국내 기업과 같은 방식으로 산업구조 조정의 대안을 들이대는 것은 장기간 축적된 귀중한 국제 비즈니스의 우량자산을 흔적도 없이 날려버리는 처사였던 것도 부정할 수 없다.

법정관리 신청 후 이어지는 물류대란의 악몽은 갑작스레 하역작업이 되지 않아 화물이 수입자의 수중에 들어가지 못하는 상태에서 시작됐다.

안전하고 정확하게 운송하겠다던 한진해운의 신뢰가 추락하고 있으며 신용으로 구축된 글로벌 영업망도 여지없이 부서졌다.

영업적자 누적속에 유동성 자금을 조달하지 못해 법정관리를 신청한 한진해운은 시간이 지나며 회생보다는 정리 쪽으로 가닥이 잡혀가고 있다.

다른 해운회사와의 인수·합병 등 가능한 모든 시나리오는 현재의 한진해운의 건실한 영업망과 인력, 노하우가 그대로 존재한다는 전제에서만 가능하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물동량이 정체를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에서 선복량이 많기 때문에 선박의 수를 줄여야 하는 시장상황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어느 정기선사가 먼저 도산되는지 국제적인 눈치작전이 이어지고, 한진해운의 허무한 도산은 외국의 정기선사에게 호재가 되고 있다.

이처럼 8조원 규모의 연매출을 올렸던 한국 대표선사 한진해운의 법정관리 신청은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쓰나미급 파장을 몰고 왔다.

산업구조조정을 총괄하는 금융당국이 글로벌 비즈니스인 해운회사의 법정관리가 몰고 올 높은 파고를 헤아려 주기를 기대할 수 없는 현실이 외적 아픔으로 다가온 것이다.

불행히 최근 들어 쓰나미처럼 찾아오는 연속된 위기속에 국민도 면역력이 강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첨예한 경쟁속에 사활을 건 싸움을 지속하는 글로벌물류 현실 앞에서는 냉정해져야 한다.

일본도 1995년 간사이 대지진으로 물류시설이 파괴되면서 길고 긴 20년 동안의 마이너스 경제성장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한국 해운산업이 나아갈 길

한진해운 사태는 우리에게 귀중한 교훈을 남겨주고 있다. 수출로 경제성장의 아랫돌을 괴고 있는 우리에게 글로벌 물류의 역할은 너무 중요하며 상처 난 글로벌 물류체제를 가능한 한 원만하게 수습하는 일이 첫 과제가 되고 있다.

부산항을 허브항만으로 삼아 운영하는 중국, 동남아, 미주노선의 정기선 항로가 한진사태의 상처 없이 정상적으로 복구, 유지, 발전돼야 할 것이다.

부산항은 이미 최적의 환적화물 처리항만으로 자리매김하여 글로벌 물류체제의 핵심이 되고 있다. 따라서 이곳을 중심으로 처리되는 국제협업의 대표적 본보기인 환적화물이 정상 처리돼야 국내외 관련산업에 미치는 파장이 수습될 것이다.

해운산업은 국제적 비즈니스로 장기간 신용이 축적된 인적, 물적 네트워크가 밑천이라 할 수 있다.

법정관리 상태에서 한진해운 자산 중 미주노선을 매각하는 절차가 진행 중이다. 정기선 운영경험이 없는 해운사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공중분해 될 위기에 처한 국적선사가 지난 60여년에 걸쳐 축적한 인적 네트워크를 부분적으로 승계할 수 있는 길이 열리길 기대하고 있다.

인수자는 한진해운의 1300여명의 인적자산과 114개 항로 중 일부를 인수해 소규모 정기선사로 출범할 것으로 보인다.

한진해운이 구축했던 미주, 동북아, 동남아 항로의 손실도 최소화하려면 우량자산의 인수자가 항로 승계의 기반을 하루 빨리 구축하고 확충해 나가야 할 것이다.

단기적으로 제도적 법적 허점을 보완하는 대책도 강구돼야 할 것이다. 매는 맞으며 자란다지만 한진해운과 유사한 사례의 재발을 막기 위한 대안이 마련돼야 할 것이다.

우선 자구책으로 정기선사가 자금부족으로 혹은 정기선사가 법정관리에 들어갔을 때 당해항차의 화물을 모두 하역할 수 있도록, 정기선사끼리 기금을 마련, 지원하는 방법을 고려해 볼 수 있다.

또 정기선사로 하여금 법정관리에 들어간 항차 화물의 양륙과 인도에 발생하는 비용은 책임보험자로부터 보험금형식으로 수령할 수 있도록 하는 보장계약의 체결을 법률로 강제화하는 방안도 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 돼도 탄탄한 법적 제도적 대응책을 마련하고 국민적 인식을 제고해야 할 것이다.

◆글로벌 안목이 필요한 해운경영

글로벌체제속에서 국제적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고 생존하는 것은 이제 피할 수 없는 우리의 일상이 됐다.

또 해운산업의 장기 경기순환체제를 사전 예측하고 정기선사들이 충분한 여유를 갖고 대응하려면 치밀한 분석과 포괄적인 대응책 마련이 요망된다.

한치 앞을 예측하기 어려운 정기선 경쟁시장에서 생존하려면 해운동맹에 가입해 선복을 공유하는 협력증대 방안과 더불어 효율적인 선대구성으로 비용을 절약하는 스마트 경영전략을 적극 추진해야 할 것이다.

정책 당국도 해운산업이 국민경제뿐 아니라 글로벌 무역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하고 있는 글로벌 비즈니스라는 인식을 새롭게 해야 할 것이다.

물류대란으로 확산되기 전에 뜨겁게 달아 오른 한진해운 법정관리 사태를 현명하게 수습하는 것이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온 국민의 이해와 지혜를 모아야 하는 어려운 대책인 것이 사실이지만 이순신장군이 명량대첩에서 12척의 전함으로 132척의 왜선을 맞아 결사항전의 의지를 불태우며 남긴 명언 “尙有十二隻 微臣不死”(지금도 배가 열두 척이나 있고 의지가 살아있으니 두려울 게 없다는 결기)를 되새기며 해운산업을 육성해야 할 것이다.

한진해운이 청산돼도 국적선이 남아 있고 동북아의 물류중심항으로 우뚝 서겠다는 국민적 의지가 살아 있다면 첨예한 동북아의 물류시장에서 능동적인 위치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는 “尙有國籍船 海運不屈”로 고쳐 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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