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주진 기자 =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실세’ 의혹을 받고 있는 최순실씨가 대통령의 연설문 44개를 파일 형태로 사전에 받아보고 뜯어고치기까지 한 정황이 JTBC보도로 드러나면서 파문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청와대는 25일 즉각 유출자에 대한 색출 작업에 나섰다. 부속실과 연설기록비서관실, 연설문 작성 과정에 관여했던 전직 참모 등 광범위하게 경위를 파악 중이다.
청와대는 지난 20일 최씨의 최측근이자 박 대통령의 가방 제작자로 알려진 고영태씨가 "최씨가 제일 좋아하는 건 대통령 연설문을 고치는 일"이라고 말했다는 보도가 처음 나간 후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반박했었다.
그러나 최씨가 박근혜 대통령의 연설문과 국무회의 말씀 자료 등을 미리 받아봤다는 JTBC 보도는 최씨의 국정개입 의혹의 구체적인 물증인 셈이어서 청와대로선 궁색한 처지에 놓이게 됐다.
대통령의 연설문은 국정 운영 방향을 제시하는 기밀문건이어서 연설 전까지 사전에 받아볼 수 있는 사람은 핵심 참모 몇몇 뿐이라는 점에서 이번 보도는 가히 충격적이다.
특히 최 씨가 미리 받은 것으로 보도된 문건들을 보면 공개 연설문이나 회의 모두 발언은 물론 취임 전 2012년 대선 유세 과정에서의 각종발언 자료들이 포함돼 있어 핵심 인사가 유출했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2012년 8월 고(故) 육영수 여사 추도식에서 한 유족대표 인사말이나 같은 해 12월 4일 대통령 후보자 토론회 준비자료와 같은 내부 문건까지 최 씨에게 사전에 파일 형태로 전달됐다는 것이 뒷받침하는 대목이다.
따라서 연설문 등을 최 씨에게 건네준 장본인은 청와대에서 연설문 작성과 수정 등에 관여하는 핵심 참모이면서, 당선 전부터 박 대통령 지근거리에 있던 인사일 개연성이 있어 보인다.
연설문 유출 시점인 2012년 12월~2014년 3월 사이 연설기록비서관은 조인근 전 비서관이었다. 대통령의 1·2부속비서관은 이른바 '문고리 3인방'에 속하는 정호성·안봉근 비서관이었다.
청와대에서는 박 대통령의 주요 연설이나 국무회의, 수석비서관회의 발언을 앞두고 수석실별로 자료를 올리면 관련 수석비서관 등 참모 회의를 거쳐 연설기록비서관이 초안을 만든다. 이렇게 작성된 연설문은 정호성 제1부속실 비서관을 통해 박 대통령에게 전달되고, 대통령이 최종 수정을 하게 된다.
청와대 전현직 참모들에 따르면 그동안 비서실에서 올린 초안과 박 대통령의 수정을 거쳐 나온 최종본에 큰 차이가 있었던 경우가 많았다. 박 대통령이 직접 수정했을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최씨가 관여했을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청와대 내에서 누가 최씨에게 연설문이나 국무회의 등 내부 문건 자료를 전달했는지가 의문이다.
JTBC 보도대로 박 대통령의 최측근 참모가 연설문 등을 사전에 최 씨에게 보내준 것이 맞는다면 박 대통령이 이 사실을 인지했는지도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는 박 대통령의 인지 여부에 대해 "경위를 파악하는 중"이라며 구체적인 답변을 하지 않고 침묵을 지켰다.
청와대는 박 대통령이 '임기 내 개헌' 카드를 내놓은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아 최씨의 연설문 수정 의혹 파문이 커지자 당혹감 속에서 대웅책 마련에 부심하는 모습이었다.
야당은 물론 여당 내부에서도 '국기 문란'을 운운하며 박 대통령의 직접적인 해명과 사과를 촉구하며 십자포화를 퍼부었다.
야당은 특검을 통해 '최순실 게이트' 의혹을 엄정하고 철저하게 수사한 뒤 국회가 주도하는 개헌안을 논의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사상 최저치를 경신하며 곤두박질치고 있는 국정 지지율에다 콘크리트 지지율을 뒷받침했던 보수와 대구경북(TK) 지지층 균열과 이탈도 가속화되면서 집권 후반기 국정동력은 크게 떨어지고 있다.
'최순실 게이트' 의혹 파문은 박 대통령의 조기레임덕을 더욱 가속화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면서 박 대통령과 청와대의 고심도 커지는 상황이다. 연설문 유출에 대해 '개인 일탈'로 '꼬리자르기'에 나설 경우 국민적 의혹은 더욱 더 커질 수 있다는 판단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여권 일각에서는 사안의 폭발력을 감안할 때 박 대통령이 어떤 형식으로든 최순실 국정개입 의혹에 대한 대국민메시지를 내놓으면서 정면돌파를 모색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