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컨트롤타워도 제 역할을 상실했다. 경제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상황에서 ‘남 탓’ 하기에 바쁘다. 정치권은 법인세 등을 쟁점으로 삼으며 힘겨루기에 빠져 민생경제를 뒷전으로 하고, 정부는 단기부양책만 남발하며 근본적인 대응책에 대해서는 차기 정부에 떠넘기고 있다. 국책은행은 연신 정부가 재정을 더 써야 한다며 일찌감치 ‘독자노선’을 선언했다.
대기업들은 올해 하반기가 수난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삼성 갤럭시 노트7은 결국 배터리 폭발 원인을 찾지 못한 채 단종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이로 인한 손실만 약 7조원이 넘는다.
삼성그룹 자체의 손실도 치명적이지만 카메라 모듈과 같은 협력업체의 피해도 막심하다. 삼성의 이번 사건은 그동안 한국경제 성장론이던 대기업을 통해 성장한다는 ‘낙수효과’의 문제점을 드러내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LG전자도 한달 전 추정치(3823억원)보다 훨씬 적은 2832억원의 잠정 실적을 발표했다. 파업 사태를 겪은 현대차(1조4795억원→1조3145억원) 외에 SK(1조3028억원→1조2024억원), SK이노베이션(6010억원→5036억원) 등 주요 기업 추정치가 최근 한달 새 1000억원 가량씩 하향 조정됐다.
대외변수에도 갈팡질팡이다. 정부는 미국 금리인상에 대해 이미 학습효과가 충분하다며 시장은 안심시키는데 주력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 스스로 경기가 회복되지 않아, 금리인상 시점이 명화하지 않다는 점이 시장 불안감으로 작용하고 있다.
중국경제의 경착륙도 한국경제로서는 악재다. 중국경제 성장률이 6%대에 머물면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경제로서는 동반부진이 불가피하다.
이런 총체적 난국에도 불구하고 경제수장들은 연신 정책적 이견차를 보이며 제대로 된 경제좌표를 설정하기 못하고 있다. 재정보강을 놓고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의 경제가치관이 상충하자, 정치권은 성장론에 불이 붙으며 걷잡을 수 없는 혼돈을 거듭하고 있다.
정치권은 일찌감치 박근혜 정부의 ‘동반성장’이 실패했다는 판단이다. 여당인 새누리당은 혁신성장, 더불어민주당은 국민성장, 국민의당은 공정성장 등 경제성장을 내년 대선의 화두로 꺼내 들었다.
전문가들은 정치권이 서둘러 성장론을 내세우는 것은 그만큼 현재 처한 한국경제가 쉽지 않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성장과 분배를 적절히 활용한 경제 모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정식 연세대 교수는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우리나라 경제는 일본이나 미국과 달리 내수 시장이 상당히 작다. 이런 경제 구조하에서는 수출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며 “임금이 지나치게 높아지면 수출 경쟁력이 악화되면서 저성장 국면에서 벗어날 수 없는 문제가 있다”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이어 “지나치게 내수 부양을 강조하면 지금과 같이 부채에 의한 성장을 하게 된다. 소득은 없는데 지출을 늘리게 되니까 결과적으로 부채가 늘어나는 문제가 생기게 된다”며 “정부와 정치권은 우리나라 경제 여건을 고려해서 거기에 맞는 성장 모형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