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 “전자제품의 소리를 만드는 일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은 ‘객관화’입니다.”
삼성전자에서 ‘청각 경험 디자인(Auditory User Experience)’ 업무를 맡고 있는 김성민 무선사업부 UX혁신팀 선임의 말이다. ‘청각 경험 디자이너’는 쉽게 말해 모든 소리를 전체적 콘셉트에 맞게 구성하는 사람을 말한다.
또한 소리는 사람의 감성을 불러일으키는 수단 가운데 하나다. 때문에 삼성전자 뿐만 아니라 전자·IT 제조업체들은 ‘제품·브랜드 만의 소리’를 만드는 일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짧은 소리로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 유명 작곡가와 연주가까지 동원한다.
김 선임은 딱딱하고 차가운 이미지로 대변되는 디지털 전자제품의 특성에 맞춰 아날로그 소리를 덧씌워 줌으로써 부드럽고 따뜻한 도구로 바꿔주는 일을 한다.
그의 대표작은 역시 ‘갤럭시’ 스마트폰이다. 갤럭시 스마트폰을 사용하다보면 실제 소리와 유사한 효과음을 들을 수 있는데 이런 소리를 그가 제작했다. 그를 '갤럭시 만의 소리를 만들어낸 음악 마술가'라고 칭하는 이유다.
김 선임은 “갤럭시 노트7의 개발 당시 별칭이었던 ‘그레이스(Grace)’를 활용, ‘그레이스 노트(Grace Note, 꾸밈음)’란 테마로 우아하면서 품격 있는 소리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이어 “기어 시리즈의 시계 초침 소리, 태엽 돌아가는 소리는 실제로 녹음한 소리다. 아날로그 시계 느낌을 주기 위해 내린 결정이었다"며 "갤럭시 스마트폰 카메라 셔터 효과음도 실제 카메라 소리를 녹음한 후 그 결과물을 바탕으로 제작했다”고 설명했다.
김 선임은 JYP엔터테인먼트에서 ‘A&R 디렉터’로 근무했던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아티스트를 발굴하고 각 아티스트에 맞는 콘셉트를 기획했던 그는, 삼성전자로의 이직이라는 인생의 대전환을 결심했다. 김 선임은 “평소 관심 있던 IT 기술 분야와 기존에 해왔던 음악을 함께 다루고 싶어서였다"고 했다.
소리라는 공통된 주제로 하는 일이지만 음반 업계와 전자회사는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김 선임은 “모두에게 공감을 얻는 소리를 만들려 관련 논문을 참고하고 사용자 의견을 반영하는 등 오랜 기간에 걸쳐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제품은 전 세계에 판매되고 있다. 나라마다 언어와 문화가 제각각이듯, 선호하는 소리의 성격도 다르다. 김 선임은 “예를 들어 인도는 혼잡하고 시끄러운 공간이 많아서인지 대다수의 사용자가 '소리가 아름다운’ 기기보다 ‘음량이 큰’ 기기를 원한다”며 “각 나라에 맞는 소리를 만들어내는 것도 청각 경험 디자이너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김 선임은 강력한 모바일 작곡 환경을 제공,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삼성전자의 작곡 애플리케이션(이하 앱) ‘사운드캠프(SoundCamp)’ 개발 과정에도 참여했다. 그는 “사운드캠프는 실제 전문가들과 협업해 만든 앱으로 ‘현존하는 작곡 앱 중 가장 고도화된 제품’이란 평을 받고 있다”며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기간 중 운영된 ‘갤럭시 스튜디오’를 찾은 현지인들이 사운드캠프를 직접 조작해보며 흥겹게 춤추던 모습은 아직도 생생하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