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대법원은 소멸시효가 지난 자살재해사망보험금은 보험사가 지급할 의무가 없다는 최종 판결을 내렸다. 이번 소송은 교보생명이 계약자 A씨를 상대로 제기한 채무부존재 확인소송의 상고심이었다. 대법원은 “A씨의 자살보험금 청구권은 소멸시효가 지나 존재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자살보험금 논란은 생명보험사가 표준약관을 개정하기 전인 2010년 4월까지 판매한 상품의 재해사망 특약에서 비롯됐다. 이 특약에는 '가입후 2년이 지나면 자살 시에도 특약 보험금을 지급한다'는 조항이 있다. 업계에선 2001년부터 약 10년간 재해사망 특약이 포함된 보험이 280만건이나 팔려나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분쟁이 본격화된 건 2005년에 금감원에 관련 민원이 접수되면서 부터다. 보험가입자는 보험사가 약관에 명시된 보험금을 주지 않았다고 주장했고, 보험사는 특약 조항이 일본의 보험약관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생긴 실수라며 보험금 지급을 거부했다. 자살은 재해에 포함되지 않는게 원칙이라는 이유다.
가입자는 보험사가 소멸시효를 고지하지 않아 청구권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소멸시효는 유효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보험사는 대법원 판단에 따르겠다는 입장이다.
금감원은 소멸시효가 지난 미지급 자살보험금 규모를 약 2000억원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특약이 아니라 주계약에서 자살을 재해사망으로 보장해주는 보험까지 포함하면 미지급 자살보험금이 5000억원이 넘는다는 게 업계 예상이다.
교보생명과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는 삼성생명, 한화생명 등 대다수의 생보사들은 이번 판결문을 공통의 판례로 볼 수 있는지 검토한 뒤 입장을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A생보사 관계자는 "판결문이 공개되면 이를 각 사에 적용할 수 있을 지 살펴봐야 한다"며 "판결과 별개로 금감원과의 입장차이가 여전하기 때문에 아직 조심스러운 분위기"라고 말했다.
한편, 금융감독원은 소멸시효에 관계없이 보험사들이 자살보험금을 모두 지급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대법원 판단과 상관없이 보험사가 약속한 보험금을 모두 지급해야 한다는 기존 입장에는 변화가 없다"며 “주요 생보사에 대한 현장조사가 끝난 만큼 보험업법 위반행위에 대해 제재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치권에서도 이번 판단으로 보험사들의 자살보험금 지급 의무가 없어지는 건 아니라는 지적이 나왔다. 김선동 새누리당 의원은 이날 소멸시효가 완성된 자살보험금 지급을 위해 소멸시효 특례를 적용하는 ‘재해사망보험금 청구기간 연장에 관한 특별법안’을 대표발의 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원은 "대법원 판례 취지와 금융당국의 입장, 보험금을 이미 지급한 보험회사 등 모든 사항을 고려해 볼 때 아직 지급하지 않은 보험사가 재해사망보험금을 지급하는 것이 사회 정의를 바로 세우는 일"이라며 “특별법이 제정되면 생명보험회사는 배임죄 우려를 해소할 수 있고, 보험계약자들도 또 다른 소송을 진행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신속히 입법을 완료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