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박성준 기자 = 신동빈(61) 롯데그룹 회장이 20일 검찰 청사에 출석하면서 사실상 롯데그룹 비리 수사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수사 후 오너가의 구속여부에 따라 경영권 분쟁의 양상이 혼란에 빠질 가능성도 열려있다.
신 회장은 이날 오전 9시20분께 피의자 신분으로 서울중앙지검 청사에 출석했다. 혐의는 2000억원 규모의 배임·횡령에 관한 것이다. 혐의를 인정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는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 수사에 성실히 협조하겠다"는 말만 반복하며 조사실로 향했다.
신 회장은 롯데그룹의 주요 계열사에서 발생한 손실을 다른 계열사에 떠넘기거나 자산을 특정 계열사로 헐값에 이전시켰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지적되는 사안은 △중국 홈쇼핑업체 럭키파이 등 해외 기업 부실 인수 △호텔롯데의 롯데제주·부여리조트 저가 인수 △롯데피에스넷 유상증자 과정에서의 부당 지원 △롯데시네마 등 계열사를 통한 친인척 기업 일감 몰아주기 등이다.
아울러 롯데건설이 최근 10년간 300억원대 비자금을 조성하는 과정에 신 회장이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는지도 조사 대상이다.
검찰은 신 회장이 일본 롯데 계열사에 등기이사로 이름을 올리고 별다른 역할 없이 매년 100억원대 급여를 수령한 점에 대해서도 횡령 혐의가 있는지 검토 중이다.
검찰이 파악한 신 회장의 전체 횡령·배임 혐의 액수는 2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수사의 내용을 파악해 신 회장과 부친 신격호(94) 총괄회장, 형 신동주(62) 전 부회장, 신 총괄회장의 사실혼 부인인 서미경(57)씨 등 총수일가를 모두 기소할 방침이다.
다만 신 회장의 구속 가능성도 제기되는 만큼 그에 따른 경영권의 향배도 혼란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
만약 신 회장이 구속된다면 경영 공백에 따른 일본 내 비상경영 체제의 전환이 점쳐진다. 전문경영인 중 신동빈 회장의 공백을 메울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앞서 그룹 2인자였던 고(故) 이인원 부회장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소진세 정책본부 대외협력단장, 노병용 롯데물산 사장, 황각규 정책본부 운영실장은 모두 검찰에 구속되거나 소환된 상태다.
롯데그룹은 현재 일본 롯데홀딩스가 사실상 그룹의 지주회사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 롯데그룹의 지주회사격인 호텔롯데의 지분 19%를 롯데홀딩스가 보유해 최대주주로 올라있다. 나머지는 광윤사와 L투자회사 등 일본 주주가 대부분을 쥐고 있다.
이 때문에 상황에 따라 일본인이 롯데그룹의 경영전반을 쥐게될 수도 있다. 홀딩스에서 롯데 오너가의 지배력은 그리 크지 않다. 신씨 오너일가의 10% 가량 지분율과 가족회사인 광윤사를 더해도 40%에 그친다. 종업원지주회(27.8%)와 관계사 및 임원지주회(20.1+6%)가 등을 돌리면 과반 이상을 차지한 다른 조직이 롯데의 경영권을 넘볼 수 있는 구조다.
한편, 검찰은 이날 신 총괄회장의 세번째 부인인 서씨의 재산을 압류 조치했다. 압류 대상에는 롯데 관련 주식, 부동산 등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압류 조치는 서씨의 탈세 혐의와 관련한 추징과 세액납부 담보 목적이다.
현재 일본에 체류하는 서씨는 검찰의 소환 요구에 불응하는 상태다. 검찰은 서씨가 끝내 입국하지 않을 경우 소환 조사 없이 곧바로 재판에 넘기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기소된 뒤 무단으로 재판에 두 차례 이상 출석하지 않으면 구속영장이 발부돼 수배자 신세가 될 수 있다.
롯데그룹은 이날 신 회장의 검찰 소환에 대해 "우선 깊이 사과드리며 고객과 협력사의 피해 방지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며 "이번 사태를 통해 더욱 큰 책임감을 가지고 신뢰받는 롯데가 되기 위해 뼈를 깎는 심정으로 변화하겠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