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베이징특파원 조용성 기자 = 지난달 중국내 핫이슈였던 영화배우 왕바오창(王寶強)과 그의 부인인 마룽(馬蓉)의 이혼소식으로 인해, 여러 곳에 불똥이 튀었다. 이 중 하나는 엉뚱하게도 허난(河南)성으로 튀었다. 왕바오창이 어렵사리 일궈놓은 모든 것을 앗아갔다는 이유로 전 중국인이 마룽을 손가락질하던 그 때, 후웨이(胡偉)라는 CCTV 아나운서가 자신의 SNS에 올린 한문장의 글이 문제였다. 그는 지난달 14일 "마룽은 참 파렴치한 여자로, 허난성 사람처럼 악랄하다"고 썼다. 이 한마디로 중국내 뿌리깊은 허난성 멸시의 감정이 다시 한번 격발됐다. 후웨이의 SNS에는 수많은 찬반댓글이 달렸고, 순식간에 인터넷 핫이슈로 떠올랐다. 후웨이는 결국 문제의 댓글을 삭제했다.
하지만 격분한 허난성 출신 네티즌들은 후웨이가 과거에도 허난사람을 멸시하는 글을 많이 올렸다는 사실을 알아냈고, 이를 대량으로 유포하기 시작하면서 논란은 재점화했다. 후웨이가 그동안 올렸던 문제의 글은 이렇다. "허난에는 좋은 사람이 한명도 없다. 그들은 아이를 낳고, 강도질하고, 허풍떠는 것 밖에 모른다" "절대 허난성 여인을 여자친구로 삼으면 안된다. 너무도 무섭다" "허난 사람들은 왜 이렇게 교양이 없는가" 등이다. 후웨이는 과거의 글들을 모두 삭제하고 사과의 글을 게재했지만 분노는 가라앉지 않았다.
◆4대문명 발상지가 어찌하여
"10명의 허난성 주마뎬(駐馬店)시 사람은 9명이 사기꾼이고 나머지 한명은 설계꾼(조직사기를 설계하는 사람)이다. 9명의 허난 정저우시 사람중에 8명은 소매치기이고 나머지 한명은 소매치기를 연습하고 있다. 8명의 허난 뤄양(洛陽)시 사람 중 7명은 강도이며 나머지 한사람은 보초를 서고 있다." 허난성을 비하하는 이 표현은 1990년대 중반부터 유행했다고 하는데, 아직도 가끔씩 회자되고 있다. 중국 특유의 과장법이라고는 하지만, 허난성 사람들이 들으면 결코 유쾌할 수가 없다.
지난해 8월에는 허난성이 뉴욕 타임스퀘어 전광판에 지역이미지광고 동영상을 내보냈었다. 10만달러의 비용으로 1주일동안 하루 80차례 방영됐었다. 동영상에는 용문석굴과 송악사탑, 태극권, 소림사, 서예 등 지역의 상징물이 등장한다. 하지만 이 소식이 중국내에 알려지자 누리꾼들은 "허난성이 도둑질의 세계화를 준비하는 모양"이라며 비꼬았다. 또 다른 누리꾼들은 "가짜제품, 에이즈 등으로 유명한 허난성이 쓸데없는 데 돈을 지출하고 있다"고 비아냥댔었다. 허난성을 비하하는 감정이 여전히 존재함을 알 수 있다.
허난성은 세계 4대 문명발상지인 황허(黃河)문명의 태동지다. 중국 중에서도 '중원'이라 불리던 곳이 바로 허난성이며, 갑골문이 만들어진 곳도 이곳이다. 하(夏)왕조, 상(商)왕조, 주(周)왕조가 이곳이었으며, 동한, 송(宋)나라 등 20여개의 왕조가 이 곳에 도읍을 뒀다. 세상의 중심으로 여겨지며 문명을 꽃피웠던 허난성이지만 지금은 멸시의 대상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가짜약, 매혈, 에이즈
허난성에 부정적인 이미지가 덧씌워진 것은 1990년대부터라고 한다. 캘리포니아대학의 불프람 에버하드 교수가 1960년대에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허난사람들의 이미지는 '예의가 바르고 솔직하다'는 것이었다. 또한 허난 사람의 표상은 춘추시대의 명재상 관중(管仲)이었다.
하지만 개혁개방 이후 개발에 뒤쳐지면서 허난성에서는 온갖 사건이 발생했다. 1990년대 들어서면서 허난성의 가짜약 제조업체가 연달아 적발됐다. 아스피린 등 유명 의약품들의 가짜상품을 제조해 대규모로 유통시킨 이들의 본거지가 허난성의 안양(安陽)시, 신양(新陽)시 등지였다. 최근까지도 허난성에서 비아그라, 시알리스 등의 가짜약이 제조되고 있다는 뉴스가 나오곤 했다.
가장 충격적인 사건의 허난성의 에이즈사건이었다. 1990년대 후반 중국의 혈액공급업자들은 매혈자들의 혈액을 체취한 후, 혈액에서 혈장을 뽑아내고 나머지를 다시 매혈자에게 주입했다. 모인 혈장은 제약업체에 판매했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당시 허난성에는 매혈이 대유행이었다.
허난성의 채혈인들은 비용절감을 위해 체취한 수백명의 혈액을 한데 모아 한꺼번에 혈장을 뽑아낸 후 이를 수백명의 매혈자에 다시 주입했다. 어처구니없게도 이같은 과정이 반복되면서 에이즈가 광범위하게 전염됐다. 1990년대 허난성에서만 100만명이 에이즈에 감염됐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사건은 당시 중국인들의 뇌리속에 강한 기억을 남겼다. 허난성의 에이즈사건은 아직까지도 중국에 비극으로 남아있다.
◆배고픔에 타향으로 떠났으나
허난성은 인구가 많은 곳으로 개혁개방이후 농민공의 주요 공급지였다. 내륙의 다른 지역 역시 막대한 수의 농민공을 타지로 유입시켰지만, 허난성의 농민공 이주는 타지와 다른 뚜렷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 허난성은 지리적으로 중국의 중앙부에 위치한 탓에 농민공들이 동서남북 각지로 이주해갔다. 안후이(安徽)성 사람들은 상하이(上海)로, 후난(湖南)성 사람들은 광둥(廣東)성으로, 장시(江西)성 사람들이 푸젠(附件)성으로 갔다면, 허난사람들은 전국 각지로 흩어져갔다.
안후이, 후난, 장시성 사람들은 새로 이주해 간 곳에서 강한 커뮤니티를 형성해 연착륙에 성공했다면, 허난성 사람들은 현지인에게 배척당하고 외지인사회에서도 발언권을 형성하지 못했다. 일용직 노동자로 근무해도 월급을 떼먹히기가 일쑤였다. 타지에서조차 발붙일 곳을 못찾은 허난성 사람들은 쉽사리 범죄의 길에 접어들었다. 때문에 대도시 사람들에게는 주변의 외지인 중 문제를 일으키는 이는 허난성 사람일 가능성이 가장 높았다. 이같은 상황에 허난성 사람들에 대해 좋은 이미지가 형성될 리가 없다.
허난멸시가 극에 달했을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에는 열차가 허난성에 들어오면 승무원들이 '열차가 허난에 들어가니 모든 승객들은 조심하기 바랍니다'라고 소매치기를 조심할 것을 주의줬다고 한다. 또한 "베이징과 톈진(天津)의 거지 중 대반은 허난성 사람이다" "집이 막아야 할 세가지는 화재, 도둑, 그리고 허난사람"이라는 말도 이때 유행했다. 구인광고란에 '허난사람은 사절합니다'라는 문구가 등장했으며, 여러 곳의 파출소에 '허난출신 사기꾼을 색출하자'는 현수막이 걸려 사회문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경제발전 이뤄지며 편견 옅어져
리커창(李克強) 총리가 허난성 지도자로 착임했을 1998년이 허난멸시현상이 최고조였을 때라고 한다. 리 총리는 1998년부터 2002년까지 허난성장을 역임했으며, 2002년말부터 2004년까지 허난성 서기를 지냈다. 당시 리 총리는 외자유치 혹은 중국기업유치를 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번번이 허난멸시의 벽에 부딪혔다고 한다.
그는 2002년초 '투자환경우량화'를 위한 대규모 조치를 내놨으며 분위기를 일신했다. 그리고 그해 4월에 허난성경제무역상담회를 정저우에서 개최했다. 행사는 허난성 역대 최대규모로 진행됐으며, 당시 차기 지도자로 각광받고 있던 리커창의 손에 이끌려 외국기업인 1800명이 운집했다. 이후 허난성 투자의 물꼬가 틔였다.
경제발전이 이뤄지면서 허난성 사람들이 하나둘 빈곤한 삶을 탈피했으며, 허난멸시의 분위기도 차츰 가라앉게 됐다. 지난해 허난성의 인구는 9480만명이었으며, GDP는 3조7010억위안(한화 약 630조원)이었고, 1인당GDP는 3만9040위안(670만원)이었다. 올해에는 허난성 정저우가 자유무역구로 선정되는 등 경제발전이 지속되고 있다.
올해 춘제(春節)를 앞둔 허난성 고위급 회의에서 당시 허난성 서기였던 궈겅마오(郭庚茂)는 "과거 허난성의 발전은 상대적으로 낙후했었고, 세인들로부터 놀림의 대상이었다"며 "외지에 나가서는 허릐를 곧게 펴지 못하고 다녔으며, 일부 사람들은 스스로가 허난사람인 것을 부끄럽게 여겼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제 중국인은 물론이고 세계인들이 허난사람들을 다시 보고 있으며, 우리는 허난성을 더욱 사랑하게 됐다"고 말해 허난인들의 자부심을 북돋았다.
*허난성 개요
면적 16만㎢
인구 9480만명
GDP 3조7010억위안
인당GDP 3만9040위안
성도 정저우(鄭州)
당서기 셰푸잔(謝伏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