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유명을 달리한 고(故) 하일성 전 한국야구위원회(KBO) 사무총장은 한국이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9전 전승으로 우승했을 당시 대표팀의 단장이었다. 하 전 총장의 물심양면 지원이 있었기에 한국은 금메달을 딸 수 있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최선을 다한 ‘올림픽 금메달 단장’이었다.
베이징 올림픽 전 한국 야구는 위기에 빠졌다.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한국은 일본 사회인 야구팀과 대만에 져 3위에 머문다. ‘도하 참사’라고 불리며 큰 충격을 줬다.
하일성 전 총장은 귀국하자마자 두 가지를 바꿨다. 우선 프로와 아마의 스트라이크 존 차이가 난다는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했다. 대한야구협회 심판부를 지원해 스트라이크 존을 통일했다.
베이징 올림픽이 열릴 당시에도 하 전 총장은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협회 관계자는 선수촌에 입촌할 수 없는 상황. 하 전 총장은 불펜 포수 등 지원단과 함께 한 달동안 민박에서 지내며, 대표팀을 보좌했다. 단장으로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제 역할을 한 하 총장 덕분에 한국야구는 최고의 순간을 맞이할 수 있었다.
또한 2006년 프로야구 격동의 시기에 KBO 사무총장으로서 제 역할을 했다. 현대 유니콘스의 해체로 7구단으로 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당시 농협, STX, KT와의 협상이 결렬된 상황에서, 하 전 총장은 히어로즈가 8구단을 창단하는데 역할을 했다.
이 과정에서 야구 기금 운용 등으로 비난을 받았지만, 되돌아보면 2016년 현재 KBO리그가 10개 구단으로 운영되고, 최초의 800만 관중 시대를 바라보는 것은 당시 8구단으로 리그가 유지됐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인기 해설가 출신인 하일성 전 사무총장은 현장과의 소통을 통해 한국야구가 발전할 수 있는 길을 꾸준히 모색했다.
고인의 공로와 과실에는 이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고인의 야구에 대한 열정과 사랑에 대해서는 모두 같을 생각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