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르미 그린 달빛 홍라온, 민란 일으킨 홍경래의 여식?…'홍경래의 난'이 뭐길래

2016-09-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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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KBS 2TV '구르미 그린 달빛' 영상 캡쳐]
 

아주경제 전현정 기자 = KBS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 홍라온(김유정)이 홍경래의 여식일지도 모른다고 추측이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홍경래의 난'이 주목을 받고 있다.

'홍경래의 난'은 조선 후기에 발생한 민란으로, 평안북도 출신의 홍경래가 중심이 되어 1811년(순조 11) 12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약 5개월간에 걸쳐 일어난 농민항쟁을 일컫는다.
19세기 초 조선은 국가 재정의 주류를 이루던 전정·군정·환정의 세 가지 수취체제가 변질되어 부정부패가 나타나고 세도정치가 강해지자, 국가기강이 많이 흔들리면서 불만을 품은 백성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평안도의 평민출신으로 알려진 홍경래는 평양 향시를 통과하고 유교와 풍수지리를 익힌 지식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입신양명을 위해 한양에서 대과에 응시하였으나 낙방하고 만다.

당시 한양에서 치뤄지는 대과는 시골선비에 대한 차별이 심해 과거를 통해 관직에 나가기가 어려웠으며, 특히 평안도 및 서북출신들은 고려의 유민으로 구분되어 관직에 등용되지 못하고 천한 신분으로 여겨졌다.

홍경래는 이런 현실에 낙담해 세상을 바꿀 결심을 하고, 봉기 10년 전부터 곳곳을 다니며 사회 실정을 파악해 동료들을 모으기 시작한다.

봉기를 위해 모인 사람들의 신분과 생업은 매우 다양하고 복잡했지만, 용력을 갖춘 지식인이 총지휘를 하고 저항적 지식인이 참모를 맡았으며 부호가 봉기 자금을 대고 뛰어난 장사들이 군사 지휘를 담당하는 등 체계적인 형태를 띠게 된다.

이렇게 모인 이들은 청천강 이북의 8개 고을을 모두 점령하며 승승장구 했으나, 지도층의 내분과 관군의 반격으로 정주성으로 퇴각해 들어가 전략상 수세에 몰리게 된다.

열악한 상황에 직면한 봉기군은 도성에서 파견한 군사와 지방에서 동원된 관군의 연합에 맞서 전투를 계속하며 정주성을 지켰으나, 땅굴을 파고 들어가 성을 파괴한 관군에 의해 성이 함락당하면서 이듬해 4월 19일 난은 끝이 난다.

이때 2983명이 체포돼 여자와 소년을 제외한 1917명 전원이 일시에 처형되고, 지도자들은 전사하거나 서울로 압송되어 참수된다.

홍경래의 난은 반란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토지문제 등 사회 개혁에 있어서 구체적인 내용을 제시하지 못해 일반 농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내지 못한 점이 한계점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지역차별과 정치적 모순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점을 내세운 봉기로써, 당시 지배체제의 외부에서 성장한 지식인과 장사들이 주체적으로 봉기를 주도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한편, '구르미 그린 달빛' 6회에서 옥에 갇혀있다가 중국 사신에게 끌려가는 홍라온에게 한상익(장광)은 가족에 대해 질문하고, 홍라온은 "난리통에 어머니와 헤어져 키워주신 분이 있는데 지금은 어디있는지 모른다"고 대답한다. 

이에 놀란 표정을 짓는 한상익은 홍라온에게 "올해가 몇살이냐"고 묻고, 18살이라는 말에 뭔가를 눈치채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이는 홍경래의 여식이 홍라온이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의미하는 장면으로 보인다.

박보검 김유정 주연의 KBS 월화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은 매주 월, 화요일 오후 10시에 방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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