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 경험 전무한 아마추어 금융수장들 … 한진해운 법정관리 등 부작용 속출

2016-09-04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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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임종룡 금융위원장, 진웅섭 금융감독원장,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 [사진=각사 및 연합뉴스]
 

아주경제 이정주 기자 = 한진해운의 물류 대란 사태가 일파만파 퍼지는 가운데 금융당국의 미숙한 조치가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구조조정에 관여하는 금융당국과 국책은행의 수장들이 구조조정 경험이 없거나 부족한 인사로 채워지면서 각종 부작용이 터져 나오고 있다는 분석이다.

4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1일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가 개시된 한진해운은 사상초유의 물류대란 속에 선박의 압류 등으로 인해 정상적인 운항을 못하고 있다. 싱가포르에서 컨테이너선 1척이 선주사에 의해 압류됐고, 연료 고갈 등으로 멈춘 배 등을 포함하면 총 41척이 운항을 멈춘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신규지원 자금을 중단한 정부가 이같은 혼란을 제대로 예측하지 못하고, 대응책을 마련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조선·해운업을 비롯된 취약업종 구조조정에 개입하는 금융당국의 수장들이 구조조정 경험이 적거나, 없는 비전문가들이 대다수를 차지한 부분이 가장 큰 원인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일각에서는 구조조정 전문가로 지난 1997년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한 이헌재 전 부총리와 지난 2011년 저축은행 사태를 신속하게 마무리한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을 아쉬워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 임종룡 금융위원장, 경험은 있지만 지나친 보신주의와 소통 부족

먼저, 이번 구조조정에서는 실질적인 실무책임을 맡고 있는 임종룡 금융위원장만이 구조조정에 몸담은 경험이 있다. 임 위원장은 1981년 행정고시 합격 후 사무관으로 80년대 중반 재무부 산업금융과에서 기업 구조조정 업무를 맡았다. 이후 1998년 외환위기가 닥치자 재정경제부 소속 금융기업구조개혁반 반장으로 대규모 빅딜과 구조조정 업무를 처리한 경험이 있다.

그러나 구조조정 과정에서 지나친 보신주의 행태로 국회에 허위보고 등의 논란이 된 바 있다. 임 위원장은 지난 6월 국회 업무보고에서 '국책은행 자본확충펀드' 설립과 관련해 신용보증기금, 기업은행 등과 사전 협의를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후 열린 전체회의에서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서근우 신용보증기금 이사장에게 질의 결과, 서 이사장은 "6월 8일 발표 이전에 공식적으로 협의를 하지는 않았다"고 답했다. 다만 "실무자 수준에서는 사전 논의가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권선주 기업은행장 역시 "도관은행 역할에 관해 사전 협의가 있었느냐"는 박 의원 질문에 "도관은행 역할을 맡는다는 것을 6월 8일 발표를 보고 알았다"고 답했다.

이에 앞서 임 위원장은 전날 "신용보증기금 등 관계기관과 충분한 협의를 거쳤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임종룡 위원장이 국회에 허위로 보고한 것"이라며 "자본확충펀드는 관계기관과 충분한 사전 협의 없이 관계장관회의에서 졸속으로 결정되고 일방적으로 통보된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언론과 소통하는 양상도 이헌재 전 부총리와 사뭇 다르다는 지적도 있다.

이 전 부총리는 당시 매주 주기적으로 구조조정 상황을 브리핑 했다. 또 후일 그는 “기자 100명과 관료 50명, 150명이 힘을 합해 구조조정을 진행했다”고 회고했다.

이에 반해 현재 금융위는 지난 5월 ‘임종룡 위원장은 5월 26일부터 행사장이나 이동 중에 별도의 인터뷰를 하지 않을 예정이오니 협조 부탁합니다’라고 소통을 차단하는 모습을 보였다. 행사장에서 이뤄지는 언론과의 소통을 구조조정 브리핑 무대로 활용했던 이 전 부총리와 대비되는 부분이다.

◆ 진웅섭 금융감독원장, 실무경험 부족 시장혼란 야기

금융위원장과 함께 양대 금융수장이라 불리는 진웅섭 금융감독원장은 구조조정 실무 경험이 전무하다. 지난 1984년 행정고시 합격 후 재무부 장관비서관과 국제관세과, 중소금융과 등을 거치며 이후 공보과 및 기획 등에 이력이 집중됐다. 구조조정 관련 경력을 굳이 꼽으라면 재무부 산업금융과에 잠시 몸담은 게 전부다.

부실 논란의 핵심으로 꼽히는 대우조선해양의 여신등급을 두고 진 원장의 발언은 그래서 더욱 논란이 됐다.

시장에서 이미 부실채권으로 판단한 ‘대우조선 여신’에 대해 금감원 수장이 개입하면서 오히려 신속한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진 원장은 지난 5월 12일 KEB하나·농협·우리은행 행장을 부른 비공개 간담회에서 “구조조정 추진 과정에서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과 협조해 달라”고 요청한 바 있다.

시장에서 이를 두고 대우조선 여신에 대해 산은의 기준에 맞추라는 압박으로 해석했다. 그러나 최근 완전자본잠식 상태에 이른 대우조선에 대한 회계보고서가 나오자 그동안 ‘정상’ 등급을 유지하며 끝까지 버티던 산은마저 지난달 24일 대우조선의 여신등급을 ‘요주의’로 하향 조정했다.

이에 앞서 시중은행들은 위기를 감지하고 대우조선의 여신등급을 내린 바 있다. KB국민은행은 지난 3월, 신한은행은 5월에 강등조치를 취했다. KEB하나은행과 농협은행도 곧바로 강등조치에 합류했고, 지난달 24일 산은도 등급을 하향조정하자 우리은행도 다음날 동참했다.

현재는 수출입은행 한곳만 ‘정상’ 등급을 유지하고 있지만 이 또한 강등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 홍기택 전 회장과 다를 바 없는 낙하산

구조조정의 대상이 되는 기업들에 가장 많은 여신을 보유한 산업은행의 수장 이동걸 회장도 구조조정 경험이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회장은 1970년 한일은행에 입행 후, 신한은행 홍콩법인 사장과 인사부, 부행장, 신한캐피탈 대표이사 등을 거쳤을 뿐이다.

박근혜 대통령과의 친분을 빌미삼아 ‘낙하산’으로 내려온 홍기택 전 회장과 크게 다를 바 없다는 게 중론이다.

이 회장은 박 대통령이 이사장을 역임한 영남대 출신이다. 지난 2012년 새누리당 당사에 금융인사들이 모여 박 대통령의 후보 지지를 선언할 때 주도적으로 참여한 부분을 인정받았다는 평가다.

◆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 구조조정 소방수로 전문성과 정무감각 갖춰

이에 반해 과거 구조조정 사태를 진두지휘한 금융당국의 수장들은 전문성과 더불어 정권, 언론과의 소통을 기반으로 위기를 돌파했다는 평이 주를 이룬다.

외환위기 당시 금융당국을 진두지휘한 이헌재 전 부총리는 비상경제대책위원회 실무단장으로 기업 구조조정 5원칙을 제정하며, 1998년부터 2년간 금융감독위원장으로 기업과 은행의 구조조정을 마무리했다. 외환위기 당시 구조조정에서 이 전 부총리는 가장 먼저 전문 인력을 모으고 태스크포스(TF) 조직을 만들었다.

후일 ‘이헌재 사단’이라는 용어가 탄생하기도 했지만, 구조조정을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정부의 상시 조직 외에 전문적으로 구조조정만을 맡아 빠르게 처리할 별도의 조직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였다.

이 전 부총리는 자신의 회고록에서 “한국의 외환 금고는 물이 들어찬 소금창고 같고, 두 달 사이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신용등급이 10단계나 추락했다”며 “외국인들은 앞다퉈 돈을 빼갔기에 외환보유액을 확인하는 것은 응급조치의 시작이었다”고 기록했다.

또 “런던 외환시장이 문을 닫는 밤 12시에 숫자를 받아 새벽 3~4시에 보고서를 마무리 후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 집으로 보냈다”며 “새벽 4시30분께 비서가 그 종이 한 장을 침실 문틈으로 밀어 넣으면 어김없이 불이 켜지며 김대중 대통령이 새벽마다 일어나 숫자를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 신속한 판단으로 저축은행 사태 수습

저축은행 사태를 말끔히 수행한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도 마찬가지 이유에서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김 전 위원장은 지난 2012년 10월 열린 국정감사에서 “개별 저축은행의 부실 징후를 미리 파악해 증자와 인수합병 등 자체 정상화 기회를 주고, 그것이 곤란하면 법과 원칙을 따라 구조조정하겠다”고 말했다.

금융위는 당시 2011년부터 2012년 5월까지 총 세 차례에 걸쳐 20개 저축은행의 문을 닫게 만들었다. 김 전 위원장의 전문성에 기반한 신속한 판단이 시장에 미치는 충격을 최소화했다는 분석이다.

이번 구조조정 과정을 바라 본 한 금융권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대우조선 부실이 드러나면서 이미 곳곳에 징후가 가득했는데도 결국 대통령이 나서지 않다보니 구조조정이 각 부처의 눈치싸움 양상으로 흐르고 말았다”라며 “이번처럼 규모가 큰 구조조정일수록 전문성 있는 인사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정권이 힘을 실어주면서 진행해야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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