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경을 마주하며 느릿느릿 걷고 싶어서 가벼운 옷차림으로 충주 여행을 떠났다.
◆가을의 정취가 성큼…종댕이길
두 번째다. 종댕이길을 찾은 것은.

종댕이길에서 바라본 충주호[사진=기수정 기자]
종댕이길의 종댕이는 근처 상종·하종 마을의 옛 이름에서 유래됐다. 충청도의 구수한 사투리가 섞인 어원이다. 종댕이길이 둘러싸고 있는 심항산을 종댕이산이라고도 불렀다.
2년 전, 겨울의 쌀쌀함이 물러나면서 봄기운을 받아 꽃망울이 하나 둘 씩 움트기 시작할 즈음 이곳을 찾았었다. 살랑이는 봄바람 따라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고 트레킹 열풍 대열에 합류하고도 싶었다. 이왕이면 남들이 많이 찾지 않는 곳이었으면 했다. 그렇게 이곳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가졌다.

종댕이길에서 바라본 충주호. 수위가 낮아 물이 가득 차진 않았지만 그 자체로 잔잔한 충주호의 모습이 아름답다.[사진=기수정 기자]
걷는 내내 펼쳐진 충주호의 아름다운 풍광, 여기저기서 말벗이 돼 주는 소박한 봄꽃 덕에 이곳에서 보낸 시간은 아직까지 깊은 여운으로 남아 있다.
2년이 지나고 가을에 접어든 지금, 다시 찾은 종댕이길은 여전히 소박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었다.
충주호의 아름다운 경관을 벗 삼아 여유를 부리며 걸을 수 있는 이 길은 계명산 줄기인 심항산의 아름다운 호수 풍경을 따라 느리게 걷기도 하고 운동도 할 수 있도록 총 6.2km에 걸쳐 조성됐다.
물론 종댕이길의 모든 코스를 샅샅이 둘러보려면 세시간도 족히 걸리지만 알짜배기 코스만 둘러봐도 충분하다. 1시간 30분이면 종댕이길의 백미 '출렁다리'까지 충분히 다녀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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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댕이길 끝자락에 있는 출렁다리는 종댕이길의 백미다. 충주호의 풍광이 한눈에 펼쳐지고 세게 흔들면 출렁이는 다리를 오가며 즐기기에도 제격이다. [사진=기수정 기자]
내륙의 바다로 불리는 충주호의 아름다운 경관이 종댕이길과 나란히 펼쳐져 걷는 내내 힘든 줄을 모르게 하고 경사도 비교적 완만해 트레킹 초보자가 탐방하기에도 더없이 좋다.
종댕이길의 출발점에 자리 잡은 종댕이 연못을 지나 태양산의 변화를 가장 잘 지켜볼 수 있는 태양지 전망대는 물론 삼형제 나무, 모자(母子)나무, 종댕이 정자, 참나무 연리목, 거북돌, 다이아몬드 문양의 아카시나무, 소원바위 등 볼거리 풍부한 종댕이길을 걷다 보면 어느새 출렁다리가 눈앞에 등장한다.
거대한 몸집을 자랑하진 않지만 충주호의 잔잔한 물결을 바라보며 찰나의 휴식을 취하기에 충분하다.

종댕이길 끝자락에 있는 출렁다리는 종댕이길의 백미다. 충주호의 풍광이 한눈에 펼쳐지고 세게 흔들면 출렁이는 다리를 오가며 즐기기에도 제격이다. [사진=기수정 기자 ]
종댕이 전망대도 잊지 말아야 할 휴식 포인트다.
충주호를 가장 가까운 곳에서 가장 넓게 볼 수 있는 종댕이 전망대에서는 탁 트인 호수의 정취를 느끼며 가슴을 펴고 따뜻한 햇볕과 신선한 공기를 마음껏 마실 수 있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풀고 마음의 안정을 가져온다고 해 이곳을 ‘가슴을 펴라 전망대’라고도 부른다.
◆손 뻗으면 하늘에 닿을까…하늘재길
종댕이길에서의 여유로운 트레킹을 마무리하고 하늘재로 향했다.

거대한 규모의 미륵대원지. 여관의 규모가 얼마나 큰지 짐작케 한다. [사진=기수정 기자]
계립령(鷄立嶺), 대원령(大院嶺)으로 불렸다는 하늘재는 '하늘과 맞닿는 재'라는 뜻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해발 525m에 불과하다.
이를 증명하듯 고개를 넘는 순간 마주하는 하늘이 멋지고 불어오는 바람이 청량하기 그지없다.
이 하늘재로 향하기 전에는 꼭 거쳐 가야 할 곳이 있다. 미륵대원지다. 이곳에 영남에서 한양으로 가던 객들이 묵어가던 객사가 있었다고 한다. 여관을 뜻하는 ‘원’, 이곳이 일대에서 가장 크다 보니 대원이라는 이름이 붙었고 지금은 터만 남아 대원지로 불린다.
북쪽을 바라보고 있는 미륵리사지에 도착하면 당간지주·귀부·오층석탑·석등·석불입상을 차례로 만날 수 있다.

비석을 받치던 받침으로 활용된, 거대한 거북 모양의 석조귀부(石造龜趺). [사진=기수정 기자]
거대한 거북 모양의 석조귀부(石造龜趺)도 눈길을 끈다. 비석을 받치던 받침으로 활용됐다. 귀부가 북극성이 있는 진북(眞北)을 가리키고 있어 천문관측 용도로 사용됐을 것이라는 주장도 최근 제기됐다.

인적이 드물어 더 조용한 아침 미륵대원지. 아쉽게도 지금은 석실을 해체한 뒤 복원하는 공사가 진행 중이라 미륵불의 근엄한 자태를 한눈에 감상하긴 어렵다. [사진=기수정 기자]
인적이 드물어 더 조용한 아침 미륵대원지. 아쉽게도 지금은 석실을 해체한 뒤 복원하는 공사가 진행 중이라 미륵불의 근엄한 자태를 한눈에 감상하긴 어렵다.
미륵대원지에서 보낸 짧은 시간을 뒤로하고 이제 본격적으로 하늘재에 올랐다.
고즈넉한 오솔길, 가파르지 않고 완만해 산책하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었다.
북쪽 포암산과 남쪽의 주흘산 부봉 사이에 발달한 큰 계곡을 따라 1.5km 정도 울창한 숲길이 비포장도로로 남아 있어 옛길의 정취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이곳은 산책 시간도 왕복 1시간에 불과하고 매력적인 옛 절터와 자연관찰로까지 있어 가족 나들이 코스로 적격이다.
백두대간 월악산의 수림이 울창할 뿐 아니라 맑은 하늘까지 바라볼 수 있는 산책길이 또 있을까. 그간의 근심과 걱정, 몸과 마음에 가득 쌓인 피로감을 씻어내려고 걷고 또 걸었다.

신록이 우거진 하늘재길[사진=기수정 기자]
‘영원한 경쟁자, 소나무와 참나무’, ‘나무의 일기장, 나이테’, ‘숨 쉬는 보약 창고 산림욕’ 등 웃음이 절로 나는 안내판의 내용을 하나하나 읽으며 걷는 재미가 쏠쏠하기 때문이다.
안내판의 개수만도 무려 22개다. 자칫 무료할 수 있는 산책길에 훌륭한 길라잡이이자 말벗이 돼 주었다.

피겨스케이팅 스파이럴 자세와 똑같은 모양의 소나무가 마치 김연아와 같다고 해서 이름붙여진 연아나무[사진=충주시청 제공]
하늘재는 최근 연아 닮은 소나무로 더욱 유명세를 탔다. 피겨스케이팅 스파이럴 자세와 똑같은 모양의 소나무가 마치 김연아와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하늘재 길을 걷다 보면 어느새 ‘하늘재 정상석’ 전망대가 보인다.
왜 하늘재일까 걷는 내내 물음표를 머릿속에 그렸다면 전망대에 오르는 순간 그 해답을 얻을 수 있다.
하늘재 정상석 앞에 서면 문경 방향으로 시원하게 트인 절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덕이다.
맑은 공기 한 모금, 물 한 모금 마시며 휴식을 취한 후 내려오는 길에 ‘역사 자연관찰로’를 찾아보는 것도 좋겠다.